평소 2시간이면 가는 거리가 7시간이 되어도 추석이면 사람들은 각자의 가족을 만나러 간다. 미디어는 추석에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이들을 쓸쓸하게 비추고, 행복한 명절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내보낸다. 그런 미디어 속에서 가족은 내 편, 끈끈하게 묶인 혈육이며 나의 평범함을 증명해주는 수단이다. 그리고 여기, 1994년 서울 강남에 누구보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족이 있다.

 

ⓒ 네이버 영화

 

가족을 찾아서…

벌새는 주인공 은희와 은희 주변의 세계를 보여준다. 벌새가 그린 세밀한 세계는 무수한 폭력들로 끊임없이 흔들린다. 가족의 폭력, 학교의 폭력, 그리고 국가의 폭력 속에서 은희는 외로운 비행을 계속한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족은 행복한 가족이 아니다. 한국의 정상 가족은 가부장제를 토대로 굴러가며 여성 폭력을 정당화한다. 영화 속 가게와 가정을 돌보는 엄마는 딸의 외침을 듣지 못하고, 은희는 오빠가 행하는 일상적인 폭력을 견뎌낸다. 은희는 부모에게 오빠의 폭력을 고백하지만, 엄마는 “싸우지 좀 말아라”라며 폭력을 덮는다. “네 생일인데도 때렸어?”, ”너희 오빤 주로 어떻게 때리냐?”라며 대화를 주고받는 은희와 지숙의 모습은그들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가족’의 이름 아래 폭력을 견뎌왔는지 보여준다. 이들은 자신의 자살을 상상하며 통쾌함을 꿈꾸기도 하지만, 가족의 무관심 아래  “다들 미안해하긴 할까?”라고 주저한다.

어린 자신을 공손하게 대하고, 서울대에 다니면서 자신과 똑같이 담배를 피우는 여자 선생님 ‘영지’를 만난 은희는 영지에게 오빠의 폭력을 고백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영지에게 “너 이제부터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같이 맞서서 싸워.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마.” 라는 대답을 듣는다. 언니를 제외한 가족 안에서는 유별남, 사소한 다툼으로 취급됐던 자신의 상처가 처음으로 이해 받는 순간이다.

 

오빠 폭력은 긴 시간 동안 한국 가족에 존재했지만 드러나지 않았다. 최은영의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 속 <601, 602>에는 오빠에게 긴 시간 동안 폭력을 당한 ‘효진’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엄마와 아빠는 오빠의 폭력을 효진이 “맞을 짓”을 했다며 정당화 하고, “그러다 애 잡겠다”라는 말로 가볍게 웃어 넘긴다. 효진 또한 밖에서는 자신의 가족이 늘 화목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효진의 친구인 ‘나’는 이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지만, 엄마는 남의 일에 상관 말라고 말할 뿐이다. 가족의 폭력이 가진 이런 기이함은 여성의 고통을 지우고, 마침내 여성 스스로 그런 폭력 따윈 없다고 말하게 한다.

<한겨레>에서 폭로되고 있는 ‘오빠 성폭력’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관련 기사] 오빠만 껴안은 잔인한 나의, 집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말할 수도 없었던 오빠 성폭력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한국에 ‘미투 운동’이 활발해졌을 때가 되어야 ‘말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해자의 사과나 다른 가족의 연대는 어려운 일이다.

가부장제의 질서에서 가족이 서로의 진심을 드러내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벌새의 수희가 성수대교 붕괴로 죽을 뻔한 날 느껴지는 가족의 안도감과 뜬금없는 오빠의 오열 장면이 그 찰나이다. 그마저도 가부장제에서 폭력을 지속했던 아빠나 오빠의 울음에서만 그 진심이 표현된다. 다른 여성 가족들은 아빠와 오빠의 오열을 그저 멀뚱히 바라볼 뿐, 절대 울지 못한다.

 

벌새의 은희가 살던 1994년, 그리고 현재까지도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는 말이 안 되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때론 공포스럽고 지독히 흔들리는 이 세계를 서슴없이 보여준 <벌새>는 타인과 연결되며 상처받고 사랑받는 삶을 보여준다. 은희는 세계(가부장제)가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과 스스로의 분노, 슬픔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영지 선생님이 했던 말-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처럼 은희는 영지 선생님, 친구, 여자 후배, 언니를 향한 소통과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위로하고 마침내 자신을 사랑할 준비를 마친다.

 

ⓒ벌새프로모션

 

올해 추석, 먼 길을 떠나 가족을 만난 사람도, 가족을 찾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 명절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작 가족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렵다. 삶을 향한 은희의 날갯짓을 애정의 시선으로 담은 ‘벌새’는 30여 개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흥행 중이다. 상영관이 확대되고 있다고 하니 벌새를 보고 가족에 대해 생각하고 스스로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글. 당근야옹이(carrot3113@naver.com)

특성이미지.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