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2019년은 가장 많은 남성 연예인이 은퇴를 선언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승리, 정준영, 이종현, 로이킴, 용준형, 최종훈, 강인, 정진운 등 다수의 남성 연예인들이 성폭행, 불법 촬영, 성매매, 마약, 음주운전 등 서로의 범죄를 눈감아주고 독려하는 카르텔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동시에 2019년은 자신의 길을 찾아 ‘선한 영향력’으로 무대에 서는 여성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해가 될 전망이다. 이제 데뷔 7년, 8년, 14년 차에 접어든 세 명의 중견 연예인 지민, 림킴, 솔비는 나무와 같이 단단하고 올곧게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지민의 커스텀 마이크는 설현이 선물한 것이다. ⓒmnet

 

AOA 지민, 나무로 만개할 기회를 기다려왔을 뿐

2015년 엠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지민은 꽃 피울 자리 없는 정글에 뛰어든 예쁘장한 바비 인형으로 불렸다. 지민의걸그룹포지션은 가장 먼저 디스된 지점이었다. 상대 래퍼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개하지 못하고 정글에서 난계한 꽃’ 지민은 상대방의 디스를 애써 부정하지 않고 담담하게 나는 예쁘장한 못난 딴따라가 맞다고 말한다. 그리고 4년 후, <퀸덤> 무대에서 지민은 드디어 자신이 무엇인지 답을 내린다.난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

이날의 무대는 남성 댄서들이 하이힐을 신고, AOA는 쓰리 피스 수트를 입었다. 여성과 남성의 위치가 완전히 전복된 4분간의 미러링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사회를 뒤흔든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아이디어를 내고 무대를 기획한 프로듀서는 리더 지민이었다. 그는 솔로 무대에 쓰기 위해 아끼던 초록색 커스텀 마이크를 처음 꺼냈다. 그리고 선언한다. 나는 꽃이 되길 거부하겠다고.

 

 

림킴의 신곡 ‘SAL-KI’는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살기가 아닌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위해 칼을 갈고 도전하는 마음가짐을 담았다. ⓒ 지니뮤직

 

림킴(김예림), 나는 UNFUCKABLE CREATURE

투개월의 김예림이 LIM KIM이라는 이름으로 3 6개월 만에 돌아온 노래의 이름은 살기(SAL-KI)’. 제목 그대로 살기 가득한 날카로운 랩으로 채워진 신곡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2012년 슈퍼스타K에서인어가 유혹하는 목소리 같다는 한 남성 심사위원의 평가 이래로 김예림의 수식어는인어가 되었다. 그의 소속사가 신경 썼던 것은 아무래도 김예림의 노래보다는 다리를 얻고 목소리는 잃은 인어의 비주얼을 재현하는 일 같았다. 데뷔앨범은 파격 노출이란 헤드라인이 먼저 붙여졌다. 인어는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남성 연예인들이 구치소와 법정을 오가느라 바쁠 무렵, 김예림은 림킴(LIM KIM)’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났다. 림킴은 새 앨범을 위한 텀블벅 페이지에서 정작 스스로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쉼 없이 달리기만 했다내 정체성이 바탕이 되어 나올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긴 공백의 이유를 직접 밝혔다. 림킴은 동화 속 인어처럼 물거품이 되는 결말을 거부했다. 왕자를 죽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인간이 되길 선택한 것이다. 그의 아주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담긴[관련 기사] 뮤지션 림킴 새 앨범은 이달 말 발매될 예정이다.

 

EBS ‘신년특집 미래강연 Q’에 강연자로 출연한 솔비는 스토킹범죄처벌법 제정을 제안했다. ⓒ EBS

 

아티스트 권지안(솔비), 누구보다 똑똑하고 누구보다 재능있는

대중들이 떠올리는 가수 솔비는 백치바보이미지에 가까울 것이다. 아주 오래, 여성 연예인이 예능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캐릭터는 거의 두가지 뿐이었다. 다른 남성 출연자에게 놀림받는 바보가 되거나, 아름다움을 추앙받는 꽃이 되거나. 그러나 솔비는 바보 이미지에 갇히기엔 너무나 똑똑하고 재능이 많았다. 2017년 5월 26일, 솔비는 KBS 뮤직뱅크에서 노래와 춤이 아닌 행위예술로 컴백했다. 가수 솔비와 화가 권지안의 셀프콜라보세이션연작 중 첫번째 작품 레드는 여성 연예인으로 안고 살아온 상처를 담았다.

솔비는 대중이 보든 보지않든 꾸준히 공부하고 발전하는 사람이었다. 지난 5월 웹예능 <로마공주 메이커> 제작발표회에서 당당한 여성을 응원하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전달하고 싶다는 의도를 밝힌 솔비는 성교육 강사에 도전했다. 여성의 자위, 성병 예방법, 성폭력 대처방법을 공부하고 직접 여성 청소년들을 만나 화제가 됐다.

아티스트 권지안으로서는현대미술로 바라본 여성인권 위안부 특별전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스타토크에서는 미투 운동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하기도 했다. 많은 재능 만큼이나 그의 마이크는 한 개가 아니다. 캔버스와 TV, 유튜브, 무대를 넘나들며 퍼질 그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기대해보자.

 

세사람이 뿌리내린 것은 생태계를 바꾸는 움직임

더이상 타자가 만든 프레임에 자기를 가두는 걸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결국 벽을 깨고 나왔다. 지민, 림킴, 그리고 솔비. 사랑 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연예계에서 이들이 자아를 드러낸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각성이나 예외라기보단, 림킴의 표현처럼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흐름”[관련 기사] 뮤지션 김예림 당신의 새로운 이름의 일종이다. 이 흐름은 궁극적으로 오염된 생태계를 긍정적으로 바꿀 것이다. 새로운 생태계에선 여성을 혐오하고 약자를 비웃는 자들이 기생할 자리는 없다. 저들은 먼지가 되어 비바람에 씻겨나가라지. 진화한 여자들은 모진 비바람에도 곧게 가지를 뻗어 유리천장에 금을 내고 말것이다.

 

글. 리사 (cherry0226@goham20.com)

특성이미지. ⓒ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