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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은 새롭지 않다

N번방은 새롭지 않다. ‘김본좌’와 ‘소라넷’, ‘웹하드 카르텔’, 다크웹, 그리고 N번방까지 이어진 그들의 계보는 형태를 바꾸고 더 교묘한 방식으로 악행을 쌓는다. “소라넷을 잇겠다”고 공공연히 발언한 성착취물 유포자 ‘와치맨’[1]은 마치 자신이 법 위에 있다는 듯 자신한다. 들키지 않는다. 잡히지 않는다. 잡히더라도 내 삶은 망가질 리 없다. 이 확고한 믿음은 그가 초능력자라 따위라서가 아니다. 사회가 그의 믿음을 만들었다.

 

N번방은 범죄를 모의하는 새로운 플랫폼에 불과하다. ⓒ고함20

 

일본 음란 동영상 수천 편을 웹하드 등지에 불법 업로드한 일명 ‘김본좌’는 2006년 음란물 유포 혐의로 구속돼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김본좌’에 대한 여론은 기이했다. 그에게 ‘특정 분야에 뛰어난 능력이 있어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이란 뜻의 ‘본좌’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김본좌 시리즈’ 같은 유머로 추앙했으며, 아직도 그는 범죄자가 아니라 마치 한 시대를 풍미한 남성들의 구세주로, 인터넷 밈(meme)으로 소비된다.

 

2018년 10월, 회원 수 100만 명의 국내 최대 규모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의 공동 운영자 송모(47)씨에게 징역 4년이 확정됐다. ‘소라넷’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99년, 소라넷 회원들은 단순히 음란물을 공유하는 것뿐 아니라 불법 촬영물 유포, 성폭행 모의 등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여기에 운영자들은 수백억 원에 달하는 광고 수익을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법원은 추징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그들은 여전히 그 돈으로 도피를 이어가고 있다.

 

‘웹하드 카르텔’은 음란물의 대량 유통과 복제, 생산을 위해 여러 업체가 관계를 맺는, 여성 착취 산업의 한 카르텔이다. ‘사이버 포주’로 불리는 그들은 웹하드 사이트와 불법 촬영물을 올리는 업로더, 영상을 차단하는 필터링 업체, 피해자가 의뢰하면 삭제를 대행하는 디지털 장의사들이다. 서로 유착 관계를 맺어 피해자를 이용하고 어마어마한 수익을 챙기고 있다. 처벌받은 사람은? 경찰은 집중 단속으로 총 759명을 검거했다고 밝혔으나, 불법 촬영물의 재유포는 단순 음란물 유포로만 처벌될 것이다. 음란물 유포는 70% 이상이 벌금형 또는 선고유예로 끝이 난다.

 

소라넷 다음은 웹하드 카르텔이었다. 그렇다면 이다음은? 미연방검찰은 ‘다크웹’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큰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유저들을 검거했다. 운영자 한국인 남성 손모씨는 한국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관련기사] 한국인 남성 A는 어떻게 형량을 ‘할인’ 받았나? ‘다크웹’이란 특수한 브라우저에서만 접속이 가능하고 IP 주소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고안된 웹이다. 아동성착취물 생산자와 구매자, 유포자는 암호화폐 ‘비트코인’으로 거래했다. 운영자 손모씨의 미국 소환 여부는 아직도 ‘검토 중’이다.

 

김본좌를 추종하고 소라넷을 그리워한 사람들은 “하지 말아야겠다”보다 “걸리지 말아야겠다”는 교훈만 얻었다. ‘김본좌’가 올린 일본 포르노가, ‘소라넷’이 모의한 성폭력이, 피해자를 이용하고 착취한 ‘웹하드 카르텔’이, 대상을 아동에게 옮겨간 다크웹 사이트가, 재수 없게 걸렸을 뿐이다. 그뿐이다. 대부분 재수 좋게도 도망치거나 처벌을 피했거나 가벼운 벌금 정도로 끝났다. 그리고 마침내 ‘N번방’에 이르게 됐다. N번방이란 1번부터 n번까지 피해 여성들의 신상 정보와 성착취물이 올라오는 n개의 텔레그램 방을 말한다. 수법은 이렇다.

 

N번방에서는 피해자를 유인한 뒤 협박해서 만든 성착취물을 거래한다. ⓒ고함20

 

메신저 어플 ‘텔레그램’은 모든 대화가 암호화되어 접근이 어렵고 해외 서버를 기반으로 해 한국 수사기관의 영향이 미치기 어렵다. 1분마다 기록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기능이 있으며 삭제된 데이터의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화방 캡처를 차단하고 있어 증거를 수집할 수도 없다. 흔히 성폭력이 ‘야만적인’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사실 문명이 발전하면서 성범죄자들은 고도의 기술과 결합했다.그들은 ‘김본좌’가 올린 동영상 속 배우들의 연기에 만족 못 하자 소라넷에서 실제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모의했고, 이것이 들통나자 더 치밀하게 ‘영원히 걸리지 않을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그래서 N번방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성폭력의 새로운 형태가 아니다.

 

텔레그램을 통해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구매한 한 남성의 글에 따르면, 경찰이 “기소유예 나올 확률이 높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고 한다. ⓒ 네이버 카페

 

AV 배우가 연기하는 포르노에서 불법 촬영물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사람이 아닌 것으로, 그저 성적인 대상으로 착취했다는 점은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국가는 끝없이 봐줬다. 형량을 깎고, 기소를 유예하거나 훈방 조치하고, 심지어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어르고 달래면서 가해자의 미래를 걱정했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 사회는 메시지를 심은 것이다. 아마 ‘김본좌’나 ‘소라넷’도 그 시초는 아닐 것이다. 이 정도는 어떨까? 그럼 이 정도는? 시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성 착취 산업은 규모와 정도를 더해간다. 국가가 봐준 범죄자들은 반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그들만의 소셜 속에서 새로운 착취 방법을 찾고, ‘기소유예 받는 노하우’ 따위를 공유한다. 한국 사회는 “하면 안 된다”는 학습을 완벽하게 실패했다. 이제는 N번방의 다음을 만들 것인가? 언제까지, 또 어디까지?

 

 

[1] “소라넷 계보 잇겠다”…올초 어느 블로거의 ‘n번방’ 선언, 2019년 11월 27일, 한겨레 특별취재팀

 

글. 리사 (03hypen22@gmail.com)

특성이미지. ⓒ고함20

 

리사
리사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으센

1 Comment
  1. Avatar
    진리는 선택할 수 없다

    2020년 6월 17일 10:26

    김본좌와 N번방을 같이 보려는 이유는 뭘까요. 성착취와 음란은 다르다는 말은 결국 선택적 페미니즘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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