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스무 살, 아홉 수, 새로운 세대(?)로의 진입, 화석…… 등 새해만 되면 푸념과 설렘, 자조와 기대가 뒤섞인 다양한 나이 타령을 들을 수 있다.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더라도 새로운 나이가 되면 얻게 되는 것과 잃게 되는 것이 생긴다. 투표권, 운전면허 취득 자격, 음주, 독립, 취업 압박, 어리광 금지 등…… 내가 가지고 싶은 것들만 쏙쏙 고르고 싶지만, 나이라는 것은 냉정해서 꼭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준다. 이들 중에서 나는 사실상 지금까지 ‘어른으로 인정받는 것’을 가지지 못했다. 한국에서 ‘어른’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평생 얻기 힘든 성취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 이유는, 많은 경우에 나를 어른이 아닌 ‘어린아이’로 보는 사람들 때문이다. 일단 엄청 왜소한 편이고, 얼굴도 나름 동안이기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중년의 어른들을 만나면 100%의 확률로 반드시 몇 살이냐고 질문하는데, 나이를 말하면 깜짝 놀라면서 “중학생인 줄 알았다”고 말한다. 하도 그런 사람이 많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넌 왜 이렇게 초딩 같냐”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기 때문에 으레 그냥 어색한 웃음으로 넘기곤 한다. 하지만 ‘이건 아닌데’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바로 (어려 보이는) 나이에 맞는 것을 강요하거나 나이로 차별하는 경우다.

 

내가 유약하고 뛰어나지 않을 거라고 가정해버리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건 얼핏 들으면 좋은 점으로 들릴 수 있고 실제로 좋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려 보이는 것과 약해 보이는 것은 한 끗 차이다. 또래들 사이에서, 혹은 다양한 나이대가 함께 있는 공간에서 내가 어떤 성취를 이루면 “어려 보였는데 의외다”, “약한 네가 그런 것을 어떻게 하냐” 등의 반응을 항상 들었다. 처음 나간 연설대회에서 ‘여성차별’을 주제로 연설했을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받았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었는데, 한 남성 참가자는 나에게 “아기가 어쩜 그렇게 말을 잘해?”라며 내 소매를 손수 접어주었다…… 마치 자신이 훨씬 어른이기 때문에 아이를 챙겨주듯이.

 

ⓒ 고함20

 

첫인상을 뒤집고 상대방의 편견을 극복했다는 짜릿함이 들 때도 있지만 무례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내 앞에 나타났다. 때로는 예의 없음으로, 때로는 호의를 가장한 말로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 예의 없음으로는 지하철에서 초면에 나이와 키를 물었던 중년 남성이 최고봉이었다. 그 외에도 “진짜 00살이에요?”라고 계속 묻거나 내 나이와 실제 외모에 대한 감상을 묻지도 않았는데 면전에 때려 박는 이들이 있었다. 호의를 가장한 말로는 “어머 너무 아기 같다” 혹은 “귀엽다” 같은 자기 딴에는 칭찬이 주를 이루었다. 이 호의가 무례보다 무서운 것은, 내가 그 틀에 스스로 들어가고 싶게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이 ‘어리고 귀엽고 약한 이미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행동과 외모도 이 이미지에 맞추게 되었다. 꼭 이런 주위 사람들의 반응뿐 아니라 미디어에서도 어리고, 보호받는 여성의 이미지는 항상 사랑받았기에 이런 말들이 특권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존경하는 훌륭한 어른 중 그 누구도 ‘귀염받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와 외모와 관계없이 그저 존중받고, 남을 존중 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을 해결하겠다는 결심이 섰다. 먼저 타인의, 사회의 시선으로 맞춘 ‘나’를 버리는 것, 그리고 나에게 무례한 사람들을 그냥 넘기지 않는 것, 나의 취향과 가치관에 맞게 살 것. 그 생각을 하고 나니 그동안 무례한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나이 어려 보이는 여자를 자신이 만든 틀 안에 가두는 무례한 사람들의 불친절이 지나쳤다.

 

나이는 그저 나이일 뿐이다. 나이가 어리든, 실제보다 어려 보이든, 늙어 보이든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항상 존중받고, 어떤 사람은 존중받기 위해 불필요한 감정 낭비를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나이 ‘어린’, 여자인 나는 이 판에서 존중받는 것이 기본으로 깔려 있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노력해서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화를 내고, 때로 그런 이들을 내 인생에서 아웃시켜야 할 문제였다. 그리고 ‘강하고 성공하고 나대고 반격하고 변화하는 것들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서둘러 판단했던 과거를 청산할 것이다. 올해는 ‘내 나이를 묻는 사람에게 나이 되묻기’를 하려고 한다. “내 나이가 궁금해?, 그럼 너도 말하렴”

 

 

p.s.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건 비단 ‘나이 어려 보이는’ 여성에만 국한된 불편함은 아니었다. 나의 불편함을 다른 여성들 또한 다른 이유로 느끼고 있었다. 표준 체중에서 벗어났다고, 머리가 짧다고, 문신 했다고, 기가 세다고, 늙었다고, 멋대로 판단하고 분류한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주는 채찍과 당근을 무시하고 이제 나이를 맛있게 먹고, 더 큰 일을 찾을 것이다.

 

글. 당근야옹이(carrot3113@naver.com)

특성 이미지. ⓒ고함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