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 EBS의 한 여성 강사가 “군대에서 배우는 것은 살인이며 살인을 배우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평화로워졌을 것”이란 발언을 해 강의에서 퇴출당하고 ‘반국가국민척결국민연합’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된 사건이 있었다. [관련기사] 장희민을 위한 변명 그리고 2020년 1월 14일, 스카이에듀 강사 ‘주예지’가 탑 아이돌의 결혼 소식과 한 남성  배우의 사생활 유출 사건을 밀어내고 모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 올랐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댓글이 달리는 고함20의 스테디 셀러 기사이다. ⓒ 고함20

 

주예지는 13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 중 ‘수능 가형 7등급= 나형 1등급’이라는 댓글이 달리자 “7등급이면 용접 배워서 호주 가야 한다. 돈 많이 준다.”며 용접을 하는 시늉과 소리를 냈다. 이 발언은 바로 ‘박제’ 되어 삽시간에 퍼졌다. 바로 다음 날 예정된 라디오 스케줄은 취소됐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그가 출연한 홍보 영상을 삭제했다. 그런데 잠깐. ‘지금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같은 말들을 ‘공부 자극 명언’이라며 학생들에게 주입할 만큼 노동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노동 혐오 발언이 이토록 큰 질타를 받은 적이 있었던가?

 

남성들은 더 잘못해도 덜 사과한다

주예지의 발언에 섞인 노동 혐오나 엘리트주의를 변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의 관심은 ‘여성들은 덜 잘 못해도 더 사과하고 남성들은 더 잘못해도 덜 사과하는’ 현상에 있다. 1월 7일, 유명 모델의 사진을 가리켜 “점심 먹으러 가는 공인중개사 같다”고 한 남성 만화가는 논란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는 바로 몇 주 전, 한 공중파 시상식에서 동료 남성 연예인에게 “죽이고 싶을 때도 있다”고 도 넘은 수위의 발언도 했지만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료 연예인들이 그를 감싸 안고 대변했다. 그는 지난 1~2년간 장애인 희화화, 이주노동자 비하, 동물 학대, 미투 운동 조롱 등 셀 수 없이 많은 문제를 일으켰지만, 방송에서 하차하지 않았다. 그의 자리는 여전히 꿋꿋하다.

 

심지어 여성은 잘못하지 않아도 논란이 된다. 트와이스의 지효는 채팅방에서 ‘웅앵웅’이란 표현을 썼다가 엉뚱하게 ‘남성 혐오’ 비난에 휩싸였고 결국 “감정적으로 발언을 해서 죄송하다”며 팬클럽에 사과했다. JTBC 예능 <아는형님>에서 대만 출신인 슈화가 “한국어가 어렵지 않다”고 하자 장성규와 신동이 “듣는 우리가 어렵다”고 해 해외 팬들이 ‘제노포빅(외국인 혐오)’한 발언이라고 지적했지만, SNS에 해명글을 올린 사람은 슈화였다. 배우 한채아는 남편 차세찌의 음주운전에 “저의 내조가 부족했음을 느낀다”며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최근 1개월 간의 기사만 찾아도 여성들의 잘못 없는 사과는 수두룩하다.

 

구글 학술검색에 “why women a…”까지만 쳐도 “apologize more than men”이 자동완성 검색어로 뜬다. ⓒ Google Scholar 화면 캡처

 

한국의 연예인/유명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성들에게 더욱 큰 사죄와 책임이 요구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심리학 및 정신분석학 등에서 행해진 복수의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여성들은 단순히 자신의 주장을 적대적으로 표했다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미안해야 한다.

2019년 12월 19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회의 마지막 질문은 “다른 후보들에게 오늘 말한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과 선물을 주는 것 중에서 선택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였다. 대답은 성별에 따라 완전히 갈렸다. 이날 토론회에 출연한 일곱 명의 후보 중 남성 후보 다섯 명은 모두 ‘선물’을 골랐고, 세 명은 자신의 자서전을 선물하고 싶어 했다.  여성 후보 두 명은 용서를 구했다. 여성 후보인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은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 죄송합니다”고 했고, 에이미 클로버샤 의원은 “여러분 중 누구라도 저의 직설적인 태도로 화가 나셨다면 언제든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고 말했다. Vox의 평론가 안나 노스는 “이보다 더 극명한 대비가 없었다”고 평했다. “남자들은 그들의 업적을 자랑하고, 여자들은 자신의 태도를 사과했다. 이로써 밝혀진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대통령에 도전하는 여성들조차 여전히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다.”[1]

 

ⓒ 스카이에듀

 

사과하는 모든 여성들을 위해

계급과 능력을 막론하고 모든 여성이 ‘죄송하도록’ 길러진다. 자신의 잘못을 과하게 자책하고 가중된 책임을 지며 앞으로의 행동을 엄격하게 검열한다. 그럼에도 한 번의 잘못은 평생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10년 전 그 EBS 강사는 영원히 인터넷 강의로 돌아오지 못했다. 정말로 커리어가 끊겨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겠다는 허울 좋은 말로 그저 여성 개인을 비난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정말로 죄송해야 할 사람들은 사과하고 있는지 생각하자. 이 논란은 평등하지 않다.

 

 

[1] “Who won December 2019 democratic debate? 3 Winners and 4 Losers”, Vox, Dec19, 2019,

 

 

글. 리사(03hypen22@gmail.com)

특성이미지. ⓒ스카이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