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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희는 예뻐지고 싶지 않았다 – 웹툰 [껍데기] 리뷰

예뻐지고 싶은 한 여성이 있다. 아니, 예뻐져야 하는 한 여성이 있다. 외모로 급을 나누는 세상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그녀는 그 지긋지긋함과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뻐지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녀는 예뻐지고 싶었던 걸까?

 

다음 웹툰의 화제작, 김탐미 작가의 <껍데기>는 아름다움이 권력인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추한 민낯을 드러낸다. ⓒ다음웹툰

 

주인공 한태희는 25살 여자이다. 그 외에도 수식어가 있겠지만 이미 ‘못생긴 여자’로 그녀를 규정지은 세상은 그녀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는 관심이 없다. 한태희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없이 그녀의 얼굴 하나만 남는다.

못생긴 여자에게 사회는 가혹하다. 눈에 선명히 보이는 차별, 외모 평가와 지적은 그네들에게 일상이다. 길을 가다가도, 아르바이트하던 중에도 각종 차별과 평가는 끊이지 않고 그녀들을 상처 입힌다. 그렇게 사회에서 상처받고 밀려난 못생긴 여성은 성형이라는 코너에 몰린다. 예뻐지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도록, 그렇게 사회는 예쁘기를 요구한다.

사회의 요구는 못생긴 여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는 사회의 기준에서 ‘애매하게 예쁜 여자’인 유민주의 대사로 명확히 드러난다.

 

“왜 예뻐지고 싶어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한가요, 여긴 한국인데.”

 

 

웹툰 <껍데기> 中

 

여성에게 ‘예쁘라고’ 말하는 사회

그렇다. 여기가 한국이고 외모지상주의와 여성 혐오가 지배하고 있는 이상 예뻐지고 싶은데 특별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여성들에게 예쁠 것을 필요조건으로 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는 인정받기 위해 그녀들은 예뻐지려 한다.

문법적으로 형용사는 명령형이나 청유형으로 사용할 수 없지만 사회는 여성들을 위해 특별히 ‘예쁘다’라는 형용사에는 예외를 두었다. 사회가 의도한 ‘예쁘다’의 오용은 여성을 프레임에 가두고 자신을 검열하게 만든다. 예쁜지 안 예쁜지에 따라 본인의 가치를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성형을 받은 후 처음으로 얼굴을 공개한 무대에서 소감을 묻는 MC에게 자신을 사회가 만든 결과물이라 말한 태희의 대답은 그래서 더욱 인상 깊다.

 

예쁜 거 그거 권력 맞아?

“여자 얼굴 예쁜 건 고시 3관왕 패스한 거나 마찬가지야.” 예쁨이 부와 권력과 동급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다. 그러나 메이크업을 소재로 탈코르셋 이슈를 다룬 이연 작가의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의 주희원이 말했듯, 아름다움은 진짜 권력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부여받은 권력일 뿐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의 평가와 시선 속에서만 존재하는 권력이란 얼마나 덧없는가.

태희를 상처 입혔던 사람들의 평가와 지적은 성형으로 예뻐진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예쁜 한태희’도 SNS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평가당해야 했다. 촬영 모델이면서도 스튜디오에서 의견 하나 내지 못하고 고개 숙여야 했다. 태희와 동거했던 남자는 과거를 빌미로 그녀를 협박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스토킹, 가스라이팅[1]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태희는 항상 불안에 떨어야 했다.

예쁜 외모가 힘이자 권력이었다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민재의 폭행과 도하의 가스라이팅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예쁨을 권력으로 착각하는 이유는 사회가 여성성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외모에 대한 칭찬과 미디어의 주목은 예쁜 여자의 특혜가 아니다. 소비되는 방식일 뿐이다. 예쁜 애 옆엔 더 예쁜 애, 그 옆에 더 예쁜 애로 줄 세우는 사회에서 예쁨은 평가의 대상이지 어떠한 힘이나 위상이 될 수 없다.

 

한태희가 진정 바랐던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허울뿐인 권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다음웹툰

 

진정 그녀가 바랐던 것은

웹툰 속에서 태희가 웃는 장면은 많이 등장하지만, 태희의 진정한 미소가 등장한 것은 도하와 연애하면서도, 자신을 무시하고 협박하던 민재에게 복수하고 나서도 아니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태희는 미소 짓는다. 친구들과 함께 된장찌개를 끓이고 대화하며 식사하는 그 하루하루에서 비로소 행복을 찾아간다.

서두로 돌아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한태희는 정말 예뻐지고 싶었던 걸까? 아니. 사실 그녀는 예뻐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녀가 진정 원했던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허울뿐인 권력이 아니다. 그녀는 껍데기에 환장하는 사회에서 예쁜 한태희라는 결과물로 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한태희라는 사람을 보아주는 사회에서 살고 싶었다. 못생긴 여자, 예쁜 여자, 갖고 놀기 좋은 애, 성형미인, 따위의 명칭이 아닌 한태희, 자기 자신으로서 가치 있게 말이다.

‘예쁘다’는 단어가 어느새 사람의 본질과 가치를 결정하려 하는 이상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작가는 묻고 있다. 예뻐지고 싶은가요?

 

 

[1]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일종의 정신적 학대이다.

 

 

글. 달이슬 (moondew27@gmail.com)

특성이미지. ⓒ다음웹툰

달이슬
달이슬

가오리가 좋아

3 Comments
  1. Avatar
    그리피스

    2020년 2월 12일 13:40

    여자들은 그렇게 고차원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이 아닌데
    여자는 그냥 자신만이 부각되는 게 마냥 좋은 단순한 동물인데 뭘 그리 포장하시나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열등한 존재로서
    여자는 그저 허영심으로만 가득 차 살아갈 뿐이다

    • Avatar
      익명

      2020년 2월 14일 00:31

      남자들은 그렇게 고차원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이 아닌데
      남자는 그냥 자신만이 부각되는 게 마냥 좋은 단순한 동물인데 뭘 그리 포장하시나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열등한 존재로서
      남자는 그저 허영심으로만 가득 차 살아갈 뿐이다

  2. Avatar
    박종팔

    2020년 2월 25일 11:19

    꾸꾸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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