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했던 그 소년은 사라졌다

유튜브 온라인 탑골공원에 옛날 드라마가 풀리면서 그 시절 사랑했던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내가 본 드라마는 <내 이름은 김삼순>과 <커피프린스 1호점>, <파스타>다. 앞의 두 드라마는 당시엔 혁신적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외계인이든, 남자든 상관없어”라고 말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왔고, 연상연하 러브스토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맞은 통수는 더 아팠다. 드라마 속에서 우리가 사랑했던 소년은 마늘 절구에 들어가 마땅한 남자로 변해있었다.

 

1번으로 마늘 절구에 들어가야할 남주는 <내 이름의 김삼순> 현진헌 ⓒmbc

 

〈내 이름은 김삼순〉 ‘박력 연하남’? 아니고 ‘폭력 연하남’

현진헌은 2000년대 영 앤 리치의 상징이었다. 연하답지 않은 박력이 그 당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포인트였다. 온라인 탑골공원에서 만난 현진헌은 폭력적이었다.

지금부터 퀴즈를 내보겠다. 나의 옛 애인은 어느 날 말도 없이 나를 떠났다. 알고 보니 그는 위암이었다. 부모의 사주를 받고, 이 사실을 숨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애인의 주치의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이때 올바른 반응은?

① 말없이 그를 꼭 안아준다.

② “그동안 많이 아팠지.”라고 얘기를 해달라고한다.

③ 이미 헤어진 연인이니 무시한다.

④ 왜 직접 말하지 않았냐고 따진다.

⑤ 뺨을 때린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된 것들 ⓒ유튜브 댓글 캡처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정답은 ⑤번이다. 현진헌은 옛 애인이 병을 숨기고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짜고짜 뺨을 때린다. 무려 위암 환자의 뺨을 때린다. 2006년, 나를 포함한 대중은 현진헌의 폭력성을 ‘박력’으로 읽어냈다.

 

〈커피프린스 1호점〉 재간둥이 진하림, 알고 보니 직장 내 성희롱 상사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내 최애는 진하림이었다.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고, 위트 있다고 생각했다. “마이찬~”이라고 부르면서 은찬이에게 달라붙는 그가 귀여웠다.

다시 만난 진하림은 직장 내 성희롱의 선두주자였다. 남장을 하고 지내다 여자라는 사실을 들킨 은찬에게 하림은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한다. 그는 은찬을 마주칠 때마다 성생활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다.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는지 묻고, 너 같은 여자애들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구박한다. “도와주려고 그러지. 솔직히 좀 그렇잖아. 밤마다 쟨 멀건 표정으로 그러고 있고.”

 

직장 내 성희롱의 선두주자 진하림 ⓒmbc

 

여자로 밝혀진 은찬은 하림에게 더이상 사람이 아니라 괴롭힘의 대상이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직장 내 성희롱(02-2263-6465)으로 대신 신고해주고 싶다.

 

〈파스타〉 남성 카르텔의 끝판왕, 최현욱 셰프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 젊고 실력 좋은 유학파 셰프, 남자 주인공 최현욱의 말이다. 그는 출근 첫날 주방에서 모든 여성을 자른다. 누구는 손님께 대들어서, 누구는 실수해서, 누구는 연애해서 쫓겨난다. 연애는 둘이 했는데 여자만 해고된다. 남자는 무탈하게 출근한다. 경력 단절을 겪는 여성의 현실을 비판하는 메타포라고 믿고 싶다.

해고로 끝나면 드라마가 안 된다. 여주인공 유경은 갖은 핍박에도 출근한다.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해도 일단 견딘다. 어제 들어온 남자 막내에게 자리를 빼앗겨도 버틴다. 주방 남자들은 유경이 없는 자리에서 맥주를 들이켜며 말한다. 내일이면 유경이 나가지 않겠냐고. 어제 들어온 막내는 그 사이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런 게 바로 남성 카르텔이다. 3년 일한 여자의 자리를 어제 들어온 남자 막내가 가로챌 수 있다.

 

최현욱(이선균)은 남녀고용평등법 제11조를 위반했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mbc

 

유경이 다시 채용되는 과정은 하이퍼리얼리즘이다. 셰프는 주방 막내를 구하기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한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유경은 파스타 맛을 입증해낸다. 결국 유경은 최현욱 셰프 주방의 유일한 여자가 된다. 2017년 청와대 블라인드 채용에서 전원 여성이 뽑혔던 현실과 겹쳐 보였다.

 

도태되는 남성상, 그때 그 ‘박력남’

폭력이 로맨스였던 시대는 갔다. 지난해 가장 인기였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조선 로코-녹두전>,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공통점은 ‘다정 직진남’이었다. <동백꽃 필 무렵>에 용식이는 동백이가 용기 있게 살 수 있도록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 <조선 로코-녹두전>에 녹두가 세심하게 장옷을 덮어주는 장면은 화제가 됐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 하루는 단오만 바라보는 댕댕이다. 변화의 씨앗은 뿌려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구글에 K drama cliché(한국 드라마 클리셰)를 검색하면 손목 잡아채기(wrist grab)이 나온다. 10년 후에는 신선한 캐릭터가 모여서 새로운 클리셰가 등장하려나. 지금처럼 “이런 장면이 나왔다니!” 같은 반응을 보일까?

 

글. 마들렌(stayheretoday2@gmail.com)

특성이미지.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