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냐 기억나? 예전에 우리랑 같이 살았었잖아.”

“어머! 당연하지. 그게 기억나? 그때 네가 8살인가 9살이었는데 기억력도 좋다.”

“딸 이름이 서연이었던가? 걔가 참 귀여웠는데.”

“맞아. 서연이가 서너 살쯤이었으니까 다냐가 지금 네 나이였을 텐데. 아직 한국에 있으려나? 연락이 끊겨서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네.”

 

다냐는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다. 한참 나이가 많았던 남편은 알코올중독자였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마다 폭력을 행사했다. 그녀는 이웃집에 살던 교인 분의 소개로 우리 가족이 다니던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사정을 들은 부모님은 다냐가 임시로 우리 집에 머물도록 했다. 그렇게 동생과 내가 함께 쓰던 이층 침대의 일 층은 다냐와 서연이의 몫이 되었다.

그때 우리가 살던 동네는 공단이 인접한 곳이었다. 다냐는 아침마다 공단 노동자들을 태우러 오는 봉고차에 몸을 싣고 사라졌다가 퇴근길에 어린이집에 맡긴 서연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나는 저녁상에 둘러앉아서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으며 어떤 사람은 존재 자체가 불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내 동생 이름의 발음이 ‘꿀’이랑 비슷하다며 벌 흉내를 내던 스리랑카 오빠와, 다냐가 데려간 생일잔치에서 설탕이 들어간 토마토 스파게티를 해주던 필리핀 언니들이 ‘불법체류자’임을. 어린 나는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그 단어를 소리 내어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오싹해졌다.

다냐가 우리 집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모님의 걱정도 깊어졌다. 방 두 칸짜리 작은 빌라는 여섯 명이 살기에 충분치 않았고 어렸던 동생과 나는 갈수록 자주 떼를 썼다. 다냐는 점점 더 눈치를 많이 봤다. 교회 식구들을 수소문한 끝에 남는 방이 있는 집을 찾았지만, 대문 앞에 놓인 술병들을 본 다냐는 그 집에 가고 싶지 않아 했다. “술 마시는 남자가 무서워요.”

 

어느 날 다냐와 서연이는 갑작스레 사라졌다. 어른들은 어린 나에게까지 둘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둘이 누구의 집으로 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곧 아빠의 사업이 나아지면서 우리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고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바빴던 나는 금세 옛날 일들을 잊어버렸다.

다냐가 떠난 뒤 몇 년이 흐른 2007년. 베트남에서 온 19살 후안 마이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TV에서 흘러나왔다. 마흔일곱 살인 그의 남편은 매매혼 중개업체에서 후안 마이의 외모가 한국인과 가장 닮았다는 이유로 그녀를 골랐다. 결혼 생활 내내 자신의 통제 아래 두었다가, 그녀가 살기 위해 떠나려 하자 죽을 때까지 폭행했다.

 

후안 마이가 죽기 전 남긴 편지 중 일부 발췌
ⓒ 고함20

 

2010년에는 스무 살 탓티황옥이 결혼해 한국에 온 지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되었다. 그리고 탓티황옥의 추모 기자회견에 참석해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보호를 촉구했던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A 씨. 그 역시 2016년 시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다냐는 서연이와 둘이 함께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왜 그게 꿈이 될 정도로 어려운 일인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결혼이주여성이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서는 혼인 파탄의 귀책 사유가 남편에게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미성년 자녀를 양육한다면 이혼 후에도 비자 연장을 받을 수 있지만 자녀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체류 허가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많은 결혼이주여성이 죽음 혹은 불법체류의 갈림길에 놓인다.

그 수많은 죽음과 이름들 앞에서, 나는 오늘도 다냐를 생각한다. 사시사철 따뜻하고 습한 나라에서 온 다냐, 웃음이 많고 짜파게티를 잘 끓이던 다냐. 후안 마이, 탓티황옥, 그리고 다냐.

 

글. 총총(ech752@naver.com)

특성이미지. ⓒ고함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