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제21대 총선에서 만 18세 이상의 시민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OECD 국가 중에서는 가장 늦게 한국에서도 ‘학생 유권자’가 투표소를 찾는다. 만 20세 이상에서 만 19세 이상으로 선거 연령이 낮아졌던 2005년에서 꼬박 15년이 더 지나고야 한 계단을 더 내려온 것이다. 한편으로는 학교의 정치화, 청소년의 정치적 무지나 순수함을 우려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그런데도 “아직 한참 멀었다”며, 학교 안팎의 청소년을 위한 정치의 장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전 상임대표이자, 현재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청소년 인권운동가 이은선 씨(이하 이 씨)를 고함20이 만났다.

 

ⓒ고함20

 

그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그는 이번 선거법 개정이 불러온 일상적인 변화로 ‘만 18세 선거권’ 자체가 누구나 다양한 공간에서 토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는 점을 꼽았다. “청소년의 선거권은 특히 청소년이 이야기했을 때 어느 공간에서나 안전하게 말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지금은 다양한 언론에서도 이를 다뤄주고 있고, 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체감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느 고등학생이라면 한창 대학교 입시로 바쁠 시기에 청소년 운동을 시작했다는 이 씨. 당시 보수 교육감과 시장이 집권하고 있던 울산에 위치한 고등학교의 학생회였다. 그는 ‘학생 자치’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던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설립하고 나서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생활규정에 대한 설문조사를 전교생 대상으로 실시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전체 회의도 거치지 않은 채 교사 한 명이 ‘안 된다’고 일축해버리더라. 너무 부당하게 느껴졌고, 내가 졸업하고 나면 이런 시도들이 무너지고 학교는 없었던 일처럼 다시 돌아갈 거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특정한 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씨는 울산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 시의원을 직접 만나거나, 교내 부당한 생활규정과 인권침해 사례를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와 국회의원 보좌관실에 전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했다. “면전에서 ‘표가 안 된다.’고 이야기한 정치인도 있었다. 이 사회를 같이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무시당하는 것 같았다. ‘대견하다’, ‘커서 직접 해보면 좋겠다’는 불쾌한 취급을 받기도 했다. 결국, 울산 학생인권조례는 보수세력의 반대로 공청회만을 끝으로 무산되었다.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궁극적으로 청소년을 하대하는 문화나 발언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인식이 바뀌어야 했다.” 이때, 그는 청소년 참정권 보장에 앞장서는 연대체를 꾸린다는 소식에 본격적으로 청소년 인권운동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이 씨는 교사나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오히려 그의 속을 상하게 만드는 이들은 그와 같은 학생들이었다. “학생 신분으로서 개인적인 힘든 일로만 묶였던 교내외 경험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함의를 띄고 있는지 친구들을 설득하곤 했다.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와중에 ‘그럴 자격이 없다’라며 본인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모습이 정말 속상했다.” 왜 학생들은 자신의 권리를 부정하게 될까. 그는 사회 내에서 구성원으로 존중받았던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금도 투표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 정말 한 사람의 목소리로 존중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이 일상적으로 말하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전달하고 나서 인정받는 일이 부족하므로 ‘나이를 먹어야, 경험이 쌓여야 이야기할 수 있다’고 무기력이 학습되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청소년도 정치 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한다고 해서 청소년 인권이 완전히 보장되지는 않는다. 이번 일을 통해 기존 정치 안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성취로는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보통 선거철에 정치인들이 교복 입은 청소년들에게 악수를 요청하지는 않는다. 교육감만 해도 학부모 단체의 목소리를 더 궁금해했다. 이제 정치인들이 유권자인 청소년의 삶을 궁금해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이 씨는 또한 학교라는 공간이 ‘정치적’이어도 된다는 방향성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점차 선거 연령이 낮아질 거로 생각하고, 청소년의 피선거권이나 정당 가입도 더욱 완화될 것이다. 학내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일이 더는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막강한 학교장의 권한으로 금기시되어왔던 학교 안팎 집회나 결사의 자유, 언론 보도 등의 소중한 민주적 가치도 생활규정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학교 안이 정치판이 된다’는 우려에는 “학생과 교사가 정치적으로 동등한 권력의 위치에서 안전하게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문제없는 일이다. 학교를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는 맹신은 정치혐오라는 또 다른 우려를 불러온다”고 반박했다. 더불어, “누군가는 청소년들이 부적절한 정치사상에 선동될 수 있다며 순수하기를 바라지만, 그들이 무섭기 때문에 청소년 보호법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청소년 개개인의 삶에서 나타나는 다양성을 무시한 채, 너무 쉽게 정치적으로 어떠한 존재라 규정해버린다”고 꼬집었다.

청소년은 ‘청소년다움’을 정치에서조차 요구받고 있었다. 그가 국회 앞 농성을 하던 때였다. “모두가 힘들어 누워있는 농성장 안에서 ‘점프’를 하며 사진을 찍자는 언론사의 요구나 ‘청소년이 정치 얘기를 할 때는 그래도 논리정연하게 토의를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종종 부딪혔었다. 기득권은 우리가 정치를 어떻게 구현해낼지보다 그들이 바라보는 시각에 우리가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오래도록 싸워온 청소년 인권운동가들이 아닌, 청소년답게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는 만 18세 유권자를 찾는 일도 잦다.” 그는 청소년이 미래를 책임질 세대가 아닌, 현재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임을 강조했다. “다른 시대를 살아온 측면도 있지만, 정치를 더 많이 알고 말하고 토론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정치적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의 조성이 우선”이라고 역설했다.

 

ⓒ고함20

 

권리를 누릴 뿐인데 교육이라니

선거 연령의 하락으로 학교에서의 정치참여 교육(민주시민 교육)이 더 활발해지길 바라는 의견도 다수 존재한다. 어떤 교육이 필요하냐고 질문하니,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청소년이니까 교육이 필요하다’는 식의 접근은 필요 없다. 첫 선거를 치를 때 모두가 교육을 받고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청소년을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은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이미지에서 온다. 그런 말들이 소수자들의 정치참여를 축소하는 데 기여한다.

이 씨는 교육이 권리 보장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시민으로서 잘사는 법’을 학교에서 알려 주어야 한다. 문자나 수학도 사회에서 내게 요구하는 걸 해석하기 위해서 정보의 측면으로 배워야 하지, 암기해 놓고 시간이 지나면 다 까먹을 지식을 왜 배워야 하나. 사기당하지 않고 사는 게 오히려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청소년 인권은 이제 시작이다

청소년 참정권 역사에서 방점을 찍을 총선인데도, 제21대 총선에서 청소년 정책들을 쉽게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애초에 정치인들은 선거연령을 낮추는 데에 무심했고, 비례정당 이슈에 치중한 채 청소년 유권자를 유치하고자 굳이 애쓰지 않는다. 이 씨는 청소년들이 국회에 어떤 정책이 보완되기를 원하는지 직접 조사하고 있다. 많은 청소년 예비 유권자들이 염원하는 공약들이 설문지에 담겼다. 교육자를 대상으로 한 학생 인권교육, 정당 가입 나이를 제한하는 조항 폐지를 골자로 한 정당법 개정, 청소년 알바 노동자를 위한 일터 조성 등의 날카로운 제안들이 눈에 띄었다.

‘만 18세 선거권’이라는 큰 산을 하나 넘었음에도 그는 벌써 넘어야 할 다음 산을 자신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단기적으로 연대체 활동 차원에서 총선을 잘 대응하는 것이 목표이다.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학칙을 전국적으로 조사하는 일과 더불어, 청소년 정책 질의서나 기자회견, 청소년 선거운동과 안내자료 제작 등을 총선 전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2017년부터 요구했던 피선거권 보장, 학생인권법 제정 등의 다른 의제들도 꾸준히 운동해 나갈 예정”이라 일렀다.

 

“주변이 변해가고 발화가 안전한 공간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마주하면서 희망을 얻는다. 청소년 인권도 지금은 무시당하기 일쑤지만, 언젠가 여성 참정권 운동처럼 빛을 본다고 믿는다.”

 

청소년 인권운동에 뛰어든 지 3년 만에 얻어낸 값진 승리. “나는 결과를 빨리 얻은 편이긴 한데, 몇 년씩이나 운동을 지속해온 활동가들을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하는 그였지만, 그 또한 지난한 싸움을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주변으로부터 조금씩 변화를 이끌어내면서, 그렇게 오늘도 그의 세상은 바뀌고 있다.

 

글/인터뷰. 총총(ech752@naver.com), 채야채(chaeyachae@gmail.com), 다다(noelcosmos@gmail.com)

특성이미지. ⓒ고함20

기획 [2020 총선특집]

기획. 총총, 채야채, 김타민, 당근야옹이, 일공이, 다다, 달이슬, 마들렌, 달걀껍질, 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