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들의 고전이라 불리는 작은 아씨들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레타 거윅의 2020년도 영화 <little women> 이 나의 첫 작은 아씨들인 것이다. 그런데도 시끌벅적한 네 자매와 그들을 닮은 꿈 이야기는 단숨에 나를 그들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영화 속 이름 없는 아무개로 만들었다……! 그들을 남몰래 좋아하는 마음으로, 작은아씨들의 인물 열전을 적는다.

 

미워하다 어느새 사랑하게 되는, 막내 에이미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싫어할 법한 캐릭터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 ‘에이미’ 역의 플로렌스 퓨. 그의 관심을 끌 정도로 에이미는 미운 구석이 많은 캐릭터였다. 그는 미술에 재능이 있고 언니들을 너무 좋아해서 짓궂은 장난을 많이 친다. 특히 언니 조가 썼던 원고를 고작(?) 파티에 안 데려갔다는 이유로 태워버린 에이미를 볼 때는 ‘이건 좀……’싶었다. 이외에도 에이미는 항상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마는 얄미운 동생이었다.

그런데도 에이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참지 않고 말해버릴 때,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티에 가는 언니들을 향해 “나도!”라고 외치는 막내 에이미에게서 그저 언니와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었던 어린 내가 떠올랐다. 언니 조가 가고 싶어 했던 프랑스 여행을 자신이 가게 되는 장면에서는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숨길 때, 먼저 자신의 욕망을 말했던 어느 친구가 생각나기도 했다. 에이미는 프랑스에서 많은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기도 한다. 남성 영화 속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 시선의 청순한 여자/섹시한 여자, 곰 같은 여자/여우 같은 여자 정도로 축소되고는 한다. 하지만 <little women>의 에이미는 그만의 욕망과 취향,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결코 하나의 면으로 축소될 수 없는 존재다.

에이미는 남성만이 독립하거나 성공할 수 있는 현실을 잘 알기에 결혼을 택한다. 그러나 현실과 무작정 타협하지는 않는다. 마음이 가지 않는 남자는 차버리고, 대신 외모도 경제력도 흠잡을 데 없는, 자신이 사랑했던 로리에게 마음을 고백한다. 그러면서 사랑 타령만 하는 로리에게 결혼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의 경제적 불평등을 말한다.

 

여자인 내가 돈을 벌 방법은 없어. 있다고 해도 결혼하는 순간 남편에게 가겠지. 그리고 만약 자식을 낳는다면 자식은 남편의 것이 돼. 그러니 결혼이 경제적 제안이 아니라고 말하지 마. 

 

ⓒ네이버영화

 

에이미의 욕망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매들에게도 새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가족이 투덕대고 웃고 하는 일을 누가 좋아하겠어.’라고 토로하는 조에게 에이미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그런 이야기가 쓰인 적이 없어서 아닐까?’라고 답한다. 에이미는 언니 조가 그릴 ‘다른 이야기’에 제한을 두지 않고 그 너머를 본다. 그러면서 ‘계속 써야 그 이야기가 중요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쓰인’ 이야기보다 조가 앞으로 ‘써나갈’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에이미는 치사한 세상에 지지 않고 스스로가 주인공인 삶을 살아가리라.

 

21세기 우리들의 롤모델-대고모

“너도 곧 20살이야. 미모도 잠깐이라고. 이모진 고모처럼 될래?” <little women>과 같은 19세기 중반이 배경인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한 장면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미친 여자라는 수군거림을 듣는 이모진 고모는 가족들에겐 짐이고 어린 여자들에겐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하는 반면교사 같은 존재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미치게’ 만들 힘이 그 시대에는 있었다.

그리고 <little women>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모진 고모와 완전히 다른 고모가 등장한다. 무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대고모. <little women>의 고모는 이모진 고모와는 달리 미치지 않았다. 자신의 부를 잘 간직한 채로, 미치거나 남에게 짐이 되기는커녕, 둘째 조에게 대저택을 물려주었다. 네 자매에게 차례대로 결혼을 권하며 “여자는 결혼을 잘해야 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대고모 자신은 결혼하지 않고 아주 잘 산다. 여자가 결혼하면 재산이 모두 남편에게 갔던 시대에, 결혼하지 않는 여자를 미치게 만들었던 시대에 고모가 비혼으로 살았던 것은 최선의 선택이자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little women>의 고모는 그저 ‘늙고 결혼하지 않았지만, 부자인 여자’로 남지 않는다. 영화 속에는 남녀가 함께 손을 잡고 추는 춤이 유행하는데, 고모는 함께 춤을 추자고 손을 내미는 남자를 손사래 치며 거절한다. 그는 유행을 따르지 않고, ‘거절은 거절한다’식의 남녀가 함께 추는 뻔한 춤은 절대 추지 않는다. ‘예의’라고 여겨지는 볼 키스도 싫어한다. 자기가 싫어하는 무언가를 맘껏 싫어하는 고모의 모습은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맘껏 좋아하는 에이미의 모습과 닮았다.

고모는 젊은 조카들에게 크고 작은 자극을 준다. 결혼 잔소리를 들은 둘째 조가 “고모님도 독신이시……”라고 입을 여는 순간 “난 부자잖니.”라며 입을 다물게 만들기도 한다. 조는 아마 고모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 돈을 버는 삶이 여성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자연스레 깨닫게 된 듯하다.

 

ⓒ네이버영화

 

많은 영화 속에서 나이 든 여성은 엄마가 되거나 ‘미친 사람’ 둘 중 하나밖에 될 수 없었다. 하지만 <little women> 의 고모에게는 결혼을 거부하는 둘째 조의 모습도 보이고, 예술을 사랑하는 셋째 베스의 모습도 보이며, 제멋대로인 막내 에이미의 모습도 보인다. 보수적(?)인 면에서 첫째 메그의 모습도 보인다. 이렇게 젊은 여성과 늙은 여성은 서로의 모습이 겹쳐진 채로, 때로 갈등하고 무언가를 나누며 함께 살아간다. 할리우드 내 성폭력 문제에 후배 배우들과 함께 저항 하는 대고모 역의 메릴 스트립은 짧은 출연으로도 여성의 연대를 충분히 보여준다.

 

글.당근야옹이(carrot3113@naver.com)

특성이미지.ⓒ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