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 페이스북 페이지에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한사성의 다짐”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한사성 前 활동가 피해당사자 모임(이하 피해당사자)이 한사성 내 반민주적 문제를 공론화한 지 3주가 넘은 뒤다. 해당 게시물을 통해 한사성은 피해당사자에 대한 사과, 사건 진행, 노동환경이 열악한 이유, 앞으로의 다짐을 밝혔다.

지난 기사: http://www.goham20.com/59719/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페이스북 페이지

 

표면적으로는 합의도 마쳤고 입장문도 올렸으니 한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듯 보인다. 하지만 피해당사자들은 게시물에 크게 실망한 기색이다. 한사성의 다짐의 무엇이 문제기에 피해당사자들은 계속 분노하는 것일까?

 

한사성은 체불임금의 일부만 지급했다

한사성은 피해당사자 측이 요구한 미지급금 1200여만 원을 지급하기로 하고 노동청 근로감독관의 조정에 따라 피해당사자 측이 제시한 1560만 원을 송금했다고, 체불임금보다 웃돈을 지급한 것처럼 설명했다. 그러나 한사성의 설명에 누락된 점이 있다. 피해당사자 측이 자체적으로 계산해 한사성에 처음 요구한 금액은 1200여만 원이지만, 노무사를 만나 제대로 계산한 금액은 2500여만 원이다. 이후 피해당사자 측은 체불임금 2500여만 원을 지급할 것을 한사성에 재차 요구했다.

하지만 한사성 측은 체불임금이 너무 많이 증액됐다는 이유로 지급을 미루고, 지각, 조퇴 등을 이유로 요구액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요구액의 60%까지는 지불할 의향이 있다며 요구액을 대폭 삭감할 것을 종용했다. 체불임금을 모두 받기 위해서는 형사소송을 진행해야 했고, 피해당사자 측은 이를 진행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사성은 체불임금 2500여만 원 중 1500여만 원만 지급했다. 이는 피해당사자 측이 먼저 요구한 금액이 아닌 한사성 측이 제시한 금액이며, 웃돈이 아닌 체불임금 일부만 지급한 것이다.

 

약속한 노동환경 개선은 지켜지지 않았다

한사성은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활동가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했고, 작년 7월부터는 8시간 노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당시 한사성에서 일했던 피해당사자들의 주장과 상충한다. 작년 7월 한사성에 입사한 피해당사자 A 씨는 ‘9시~18시로 노동시간 조정을 한 후에도 야근과 주말 출근이 일상이었다. 미지급된 초과수당을 계산하니 300여만 원이 넘었다.’며 조정한 노동시간이 지켜지지 않았음을 토로했다. 지속적인 초과근무와 정당한 보수 미지급에 대한 문제 제기에 한사성은 노동환경을 개선해왔다고만 주장하고 있다.

 

‘활동가’와 ‘노동자’는 구분할 수 없다

한사성은 활동가와 노동자의 정체성을 구분하고, 두 정체성의 간극이 갈등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넉넉잖은 재정을 이유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어려웠음을 토로했다. 두 해명 모두 문제가 있다. 서울시 청년 활동 지원센터 YC 지원팀 신동은 씨는 고함 20과의 인터뷰에서 ‘제공하는 노동의 성격이 활동일 뿐,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관계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띤다. 활동가와 노동자의 정체성이 분리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며 활동가는 노동자에 포함되는 정체성이라고 설명했다.

 
 
ⓒ2019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조사

 

한사성은 곳곳에 재정의 열악함을 피력했지만, 인권단체 중에서는 재정이 튼튼한 편이다. ‘인권재단 사람’이 공개한 ‘2019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조사’를 통해 인권단체들의 운영 현황을 알 수 있다. 한사성은 정기후원자 800명 이상에 월 정기후원금이 700만 원을 넘어 분포에서 상위에 속한다. 여기에 회계 업무를 담당했던 피해당사자의 증언에 따르면 정기후원자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고, 지원사업을 통해 인건비 대부분을 충당하고 있으며, 잔고는 계속 축적되어 2억을 돌파했다. 활동가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것이다.

 

ⓒ2019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조사

 

그런데도 한사성은 정당한 보상을 제공하지 않았다. 피해당사자들은 상근활동가 평균 노동시간인 8.7시간을 훌쩍 넘긴 10시간 이상을 일했다. 인권단체의 절반가량은 초과 노동에 대해 보상을 지급하지만, 피해당사자들은 받지 못했다. 인권단체 활동가 4명 중 1명가량이 200만 원이 넘는 임금을 지급받고 있지만, 피해당사자들은 최저임금도 겨우 받았다. 피해당사자들은 좋은 여건을 갖춘 단체에서 많이 일하고 적게 받은 셈이다.

 

한사성은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았던 이유로 모든 지원사업이 끝나고 후원금만으로 인건비를 충당하게 되면 오래 버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극단적인 미래를 가정해 현재 활동가들의 권리를 부정하게 되면, 새로운 지원사업이 생기고 후원금이 늘어나도 같은 논리로 권리를 부정할 수 있다. 활동가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안정된 상황에 자신의 권리를 맡기는 셈이다. 재정적 여력을 확보하려면 활동가들을 착취해 버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원사업과 후원금을 확보해야 한다. 한 피해당사자는 ‘축적된 후원금 액수가 얼마인지 아는데 가난이 다시 찾아올까 걱정한다는 게 우습다.’며 한사성의 주장을 반박했다.

 

피해당사자를 무시하는 그들만의 다짐

피해당사자 모임이 공론화를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한사성 내 반민주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피해당사자들은 ‘지속가능한 운동을 위한 개선 제안’을 ‘개인의 사생활을 지키기 위한 문제 제기’로 치부하고, 의견을 제시한 활동가를 지속해서 험담한 것 등에 대해 한사성이 3월 3일까지 운영진 자필 사과문을 보낼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사성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난 후에야 올라온 ‘다짐’이라는 모호한 형식의 글에 가스라이팅과 직장 내 괴롭힘은 드러나지 않았다. 열악한 재정 상황과 미숙함을 강조하며 지켜보고 함께해달라는 부탁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한사성 고생한다.’, ‘활동가는 원래 워라밸을 지키기 힘들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하길 바란다.’ 등 한사성을 옹호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그들만의 다짐과 응원 속에 피해당사자들의 요구는 지워졌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강 보면 돈 없는 시민단체에서 으레 일어나는 해프닝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충분한 재정을 가진 인권단체가 가스라이팅과 직장 내 괴롭힘을 통해 수많은 활동가를 착취한 반인권적 사건이다. 피해당사자들의 요구가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다짐이 피해당사자들의 목소리보다 몇 배나 더 큰 호응을 받고 있다.

 

한사성은 내부에서 일어난 노동 착취 문제 또한 엄중하게 여겨야만 한다. 한사성은 꾸준히 공식 석상에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사성의 다짐과 댓글에서 일어나는 2차 가해에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피해당사자들의 반발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사성의 다짐이 미처 담아내지 못한 해명을 듣고자 한사성 측에 사건 담당자와의 연결을 요청했다. 며칠 후 한사성은 페이스북 페이지 활동을 재개했지만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피해당사자 모임은 ‘합의 이후 한사성에서 어떠한 연락도 오고 있지 않다.’라며 한사성이 이번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인권 수호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단체가 활동가들을 착취했던 과오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그 단체의 정체성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한사성이 지속가능한 단체가 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피해당사자들에 대한 확실한 사과와 앞으로의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글. 미정(qkrtkdgur972@naver.com)

특성이미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