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개표방송은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영혼을 갈아 넣은 컴퓨터 그래픽! 유튜브를 통한 시청자 양방향 소통! 인공지능, 증강현실 등 첨단 기술과의 결합! 정치인 얼굴을 웃기게 합성할 유일한 기회! 아, 이 정도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형 개표방송이라 자신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은 마치… 디스토피아 같았달까? 발언권력을 모조리 남성이 독점한 세상, 기술만 발전하고 진보하지는 못했다.

 

여성은 최대 한 명만 나올 수 있습니다. ⓒ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YTN, 연합뉴스TV 유튜브 캡처

 

그래픽만 멋있으면 다야?

방송계에는 ‘남오여삼, 남선여후, 남중여경이라 불리는 관행이 존재한다. 남성앵커는 50대 이상, 여성앵커는 30대 이하여야 하고(남오여삼), 남성이 먼저 발언한 뒤 여성이 발언하며(남선여후), 중요한 이슈는 남자가, 가벼운 이슈는 여자가 소개하는(남중여경) 것이다.

국가 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17년 미디어에 의한 성차별 실태조사’에서 이 관행은 수치로 증명된다. 지상파 3사 및 종합편성채널 4사(JTBC, MBN, 채널A, TV조선) 저녁 뉴스 프로그램 여성 앵커는 80%가 20대이고, 남성앵커는 90%가 40대 이상이다. 정치, 국방, 외교 등의 무거운 뉴스는 남자가, 생활, 날씨, 해외이슈 등 비교적 가벼운 뉴스는 여자가 말한다. 시사토크 프로그램은 성별 편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분석 대상 40개 프로그램 중 36개 프로그램을 남성이 진행했다. 출연 패널 198명 가운데 여성 출연자는 21명에 불과했다. 여성은 정치∙시사 논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성별 고정관념과 맞닿아 있었다.

 

7개 방송사 앵커 45명 중 출생년도가 공개된 38명의 연령 분포도 ⓒ고함20

 

2020년 개표방송은 어땠을까?

분석 대상은 4월 16일 오후 6시 15분 출구조사 발표부터 KBS, MBC, SBS, JTBC, MBN, TV조선, 채널A가 진행한 개표방송이다. 45명의 앵커가 출연했고 이 중 20명이 여성, 25명이 남성이었다. 여성 앵커의 평균 나이는 37세, 남성 앵커는 평균 47세였는데 무려 10년 차이가 난다. 남성 앵커 중 최연장자는 TV조선 신동욱 앵커(57세), 여성 앵커 중 최연장자는 47세인 MBN 김주하 앵커와 KBS 정세진 앵커다. 그러니까, 남성 앵커에게는 평균이 나이가 여성 앵커로 가면 최고참이 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남선여후’ 관행은 모든 방송이 아주 철저하게 지켰다. 지상파 3사와 JTBC는 모두 출구조사 발표 첫 멘트를 남성 앵커가 했다. MBN과 TV조선, 채널A는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지켜보는 각 정당 상황실을 중계했는데, 역시 남성 앵커가 전담했다. 이쯤 되니 여자가 먼저 말하는 것이 불법인가 싶다.

 

‘남중여경’도 그대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총선 결과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토론자 역할이 거의 남성에게 주어졌다. 우선 지상파 3사와 JTBC는 여성 패널이 출연하지 못했다. TV조선에서는 김민전 교수가 출연했다. 각 방송사의 정치부 차장∙반장급 여성 기자가 출연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을 뿐 방송사가 초대한 논객은 대부분 중년 남성이었다. 진보, 보수 양쪽의 의견을 ‘공정’하게 다루겠다고 했지만, 그 패널들이 대부분 ‘중년 남성’인 것에서부터 이미 공정한 방송은 틀려먹었다. 진보의 얼굴도 남자, 보수의 얼굴도 남자로 대표하는 것은 한국 정치 현실의 하이퍼 리얼리즘 연출일까? 그렇다면 완벽하게 성공했다. 21대 국회에는 여성이 57명(19%) 밖에 없으니까.

 

여자 옆에 여자 옆에 여자 옆에 여자! ⓒNBC

 

화려한 그래픽 쇼가 차별의 민낯을 가릴 순 없다

2019년 11월 NBC의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 사회자는 4명 전원이 여성이었다. 백인 남성의 과잉대표를 지양하자는 취지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육아휴직, 임신중단권, 흑인 여성 정치인 가시화, #미투 운동이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한편 ‘차별화된 개표방송’을 목표로 레이저와 그래픽과 에어돔과 기타등등을 내세운 한국 방송사들은 그냥 성차별로 단일화한 꼴이었다. 여성의제를 비롯한 청년, 환경, 동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의제는 또 나중으로 밀려났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근사한 그래픽도 시대에 뒤떨어진 언론은 가릴 수 없다. 

 

글. 리사(03hypen22@goham20.com)

특성이미지. ⓒTV조선 유튜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