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n번방’은 우연 아닌 거대한 사회적 현상/ⓒ 블록미디어

 

지난달 텔레그램을 통해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가 이뤄진 이른바 ‘n번방’ 사건이 사회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을 매개로 여성을 지배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한 이들과 이를 외면하고 용인해온 사회. 한국 사회의 어두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라 가담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여성을 상대로 한 성 착취는 비단 텔레그램에서만의 일이 아니기에. 우리 사회에 성을 사고팔 수 있다는 믿음이 유지되고 강간문화를 비롯한 남성문화가 좌절되지 않는 한 성폭력은 반복된다.

 

성폭력은 가부장제 사회의 거대한 사회적 현상

성폭력 피해자의 ‘처신’을 지적하는 곳. 길거리에서 ‘여성 도우미 있어요’ 같은 광고를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는 곳. 한 여성을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성매매를 ‘남자라면 한 번쯤 그럴 수 있는 일’로 여기는 곳.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다. 한국 사회에는 강력한 젠더 권력이 존재한다. 권력은 가부장제 사회의 핵심 원리인 여성 혐오로 유지되며, 여성 혐오는 대상화/편견/폭력/비하/무시/배제/강간/살인 등으로 사회에 표현된다.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도 마찬가지다. 사회는 디지털 성폭력을 고작 ‘몰카’ 혹은 ‘야동’ 정도로 여겨왔다.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명목으로 성 착취를 방조해온 것이다.

 

묵인의 결과는 끔찍하다. 집계가 불가능한 수준의 무수한 성폭력 피해를 양산했으며, “소라넷, AV스눕, 버닝썬 게이트, 웹하드 카르텔, 다크웹, 텔레그램, 디스코드”라는 괴이한 계보를 만들었다. 피해의 종결 없이 단지 플랫폼만 변해온 계보와 그 속에서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구조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n번방’ 사건을 비롯한 디지털 성폭력은 우연적이거나 일탈적인 현상이 아닌 사회가 만든 거대한 현상이다.

 

사회의 구조로 완성되는 디지털 성폭력

나의 성적 촬영물이 유포된 사건은 이 세계에 어떻게 읽히는가.

이 세계가 조금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면 피해자들은 그렇게까지 아프거나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다.

이 폭력은 직접 가해자가 원인이지만 사회의 구조로 완성되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 연구서 『2020 한국 사이버 성폭력을 진단한다』, 한사성 中

 

디지털 성폭력은 가해자의 의지에서 비롯되지만, 사회가 완성하는 폭력이다. 사회에 짙게 깔린 여성 혐오와 강간문화,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성별화된 이중규범은 2차 피해로 이어져 피해경험자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기며 피해경험자의 일상 회복 또한 어렵게 한다. 가부장제 매트릭스 위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촬영된 경우에도 여성만이 성적 수치심을 넘어 사회적 존재를 배제·폄하 당하는데, 이는 가해자의 폭력이 아닌 피해자의 음란을 문제 삼아 온 사회이기에 가능하다. 사회구조 자체가 성폭력의 (재)생산을 부추기는 셈이다.

 

사회적 낙인의 두려움은 여성의 피해 호소를 더욱 어렵게 하며 가해자가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악용한다는 점, 더 나아가 디지털 성폭력은 혐오범죄의 형태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관련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사회는 여성의 공포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성폭력은 개인적 범죄로 치부되면서 근본적인 해결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못했고, 법적 판결은 온라인 공간 속 범죄를 물리적 폭력보다 피해의 정도가 약하다고 인식하며 가해자에게 미미한 처벌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는 새 디지털 성폭력의 가해 가능성은 무럭무럭 자라 또 하나의 젠더 권력이 되었다.

 

누군가 ‘삶’을 우연에 맡기지 않도록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놀잇감으로 소비하는 것, 이를 통해 서로 간 유대를 공고히 하는 것이 정말 도덕과 무관한 자유의 영역일 수 있을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을 수 있는 폭력은 존재만으로 힘이 세다. 어디서든 성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여성을 끝없는 공포에 가둔 채 억압한다.

 

치안이 좋은 나라 1위라고 하지만 밤거리에서의 자유는 여전히 여성과 먼 얘기고, 유일하게 나를 보호해줄 법은 여성이 실제로 겪는 피해의 감각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누구도 여성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결국 피해의 책임은 고스란히 여성 개인의 몫이다. 성폭력 피해 종식을 위한 의미 있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여성의 고통과 절망은 남성을 위한 포르노가 아니다.” 여성들의 절절한 절규에 이제는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우리 사회는 누군가 드러내지 말아야 할 욕구를 꺼내 보였을 때 강한 남성연대 안에서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믿음을 심어줬다면 이제는 뒤틀린 확신을 깨부숴야 할 때다. 여성의 불안에 공감하고 성폭력은 어떤 이유로든 사회적으로 절대 용인될 수 없음을 보여야 한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우연에 맡기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글. 김타민(thanku4u1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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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N개의 이야기: 디지털 성범죄]

기획. 김타민. 채야채. 마들렌. 달걀껍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