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너무나 사랑하는 한 시민으로서, 부디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거돈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는 이 사건이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정당과 언론은 우습다는 듯이 성추행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진상규명을 빙자해 피해자를 지원한 부산성폭력상담소를 고발했으며, 성별과 나이를 이유로 피해자가 직접 공증과 사퇴를 요구한 것을 의심해 정부 개입을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지원단체가 친문 인사임을 강조하며 여성 단체들이 정치와 결탁해 범죄를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미래통합당은 피해자 지원단체인 부산성폭력상담소를 고발하겠다고 밝혔다.ⓒ뉴시스

 

피해자가 원한 것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사퇴와 부산시의 성범죄 대책 마련이었다. 정당과 언론은 이에 따라 성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는지, 앞으로 같은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대책 마련을 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대책 마련 대신 사건을 선거 범죄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피해자를 깎아내리고 지원단체의 정치색을 강조하며 멋대로 사건의 본질을 뒤집었다. 이들에게 피해자의 고통은 이용하기 좋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었다.

 

공론화를 선택한 피해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억측과 혐오로 연속적인 가해에 노출된다. 성폭력 고발을 정치 공세의 수단으로 이용해 피해자를 제어할 수 없는 고통에 빠트리면, 또다른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밝히기 망설이게 되고 성폭력 지원단체도 정치적 공격이 두려워 피해자 지원에 선뜻 나서기 어려워진다.

 

성폭력 고발은 시대와 진영을 막론하고 정치적 수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권력의 입맛에 맞게 해석되어 왔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폭로에 경찰과 언론은 “정부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기 위해서 성적 수치심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며 비난했고, 진보 인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미투 운동에 시사평론가 김어준은 “문재인 정부와 진보 인사를 겨냥한 공작으로 변질될 것”이라며 운동의 본질을 왜곡했다. 피해자는 항상 순수성을 의심받으며 불순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꽃뱀’ 취급을 받았다. 

 

부산지역 5개 여성단체들이 오거돈 전 시장의 권력형 성폭력을 규탄하고 관련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부산일보

 

부산지역 5개 여성단체는 5월 4일 기자회견을 열어 부산시의 성범죄 근절과 성평등 추진체계를 촉구하며 ‘이번 사건을 차별적인 사회구조와 조직사회의 문제로 보지 않고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려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거돈 성추행 사건은 ‘남성 직장 상사’가 ‘여성 직장 부하’를 집무실에 불러 성추행한 것이며, 이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배경엔 ‘상사가 부하를 조종할 수 있다.’는 폭력적인 조직문화와 ‘여성 동료를 성적 대상으로 본다.’는 성차별이 깔려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폭력적인 조직문화와 성차별을 없앨 수 있는가?’를 논의해야 한다. 피해자가 신상털이와 가십성 보도를 당할 것을 알면서도 피해 사실을 공론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당과 언론은 국민에게 의제를 설정하고 논의를 주도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받았다. 그 권력을 오용하면 가늠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폭력을 만들기에, 자신들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를 항상 주의해야 한다. 성추행 사건 공론화는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고 더 성평등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결말이어야만 한다.

 

 

글: 미정(qkrtkdgur972@naver.com)

특성이미지.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