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가정폭력 묘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기획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 中 ⓒ 고함20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근방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우리 동네는 놀이터가 모조리 폐쇄되고 키즈카페들이 문을 닫았다. 어느 곳도 안전을 답보할 수 없고 달리 갈 곳도 없는 지금, 아이와 보호자에겐 외출을 자제하는 것만이 최선이리라. 그래서 그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 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음이라면 좀 짜증 나는 정도로 넘길 수 있다. 답답한 집 안을 현관에서 안방까지 우다다다 가로지르는 일이 아이가 가진 자유의 전부일 테니까. 간혹 아이 이름을 부르며 제발 그만하라는 윗집 여자의 외침이 욕실을 타고 들려오지만 나는 그저 여자를 안쓰럽게 여겼다.

 

그러나 자정을 넘겨 불행한 소음들이 시작되면 짜증과 동정은 공포로 바뀐다. 단지 발소리가 크게 울리는 게 아닌 종류의 소음들 말이다. 술에 취한 남자가 현관문을 요란하게 열고 들어온다. 악에 받친 비명과 울부짖음, 물건이 마구 던져지고 부서지고, 어쩌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일지도 몰라. 갖은 불행이 유독 길게 들리던 어느 새벽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짧은 문자신고를 보냈다. “이웃집에서 비명과 무언가 던지는 소리 등이 2시간 넘게 들리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또는 가정폭력이 의심됩니다. OOO동 XXX호인 것 같습니다. 출동해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창밖으로 경찰차가 보이기까지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경찰관 두 명이 XXX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몇 번의 고성이 오가는가 하더니 누군가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쿵쾅쿵쾅 발걸음이 우리 집 앞에서 멈춘다.

 

“신고한 XX 누구야? 나와! 안 나와?”

 

우리는 문을 열지 않았다. 한참 문을 두드리던 그는 이내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혹은 말림에 못 이겼는지 윗집으로 돌아갔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경찰관이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 상황을 정중히 설명했다.

 

“저 집 아저씨가 술에 많이 취하셔서 그러시네요. 원래 저 때가 부부싸움이 심한 시기잖아요. 아시죠?”

 

한밤의 소동이 ‘부부싸움’으로 흐지부지 끝났다. 적어도 아랫집 사는 우리에겐 끝으로 여겨졌다. 어린 여성인 동생과 나, 중년 여성인 엄마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아빠는 “이제 그냥 무시하자”고 했다. 참, 중년 남성 가부장이 할 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윗집 남자가 다시 우리 집 문을 두들긴 것은 꼭 한 달이 지나서였다. 지난밤과는 달리 경찰이 온 것도 아닌데 무슨 억하심정인지 남자는 현관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야 나와! 나오라고! 또 경찰 부르든가!”

 

인터폰을 통해 여자가 남자를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 취했잖아, 그만해, 제발. 출장 중인 아빠가 집에 없는, 그야말로 약자 셋은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마저 들릴까 숨죽인 채 인터폰 화면을 가만히 지켜봤다. 나는 만약을 위해 휴대폰 동영상 촬영을 해뒀다. 보복이 무서워 112 신고라던가 관리실에 연락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남자가 우리 집 앞에서 난동을 피운 건 두 번이다.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난동 피운 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오늘도 남자의 분노를 들으며 밤을 꼬박 새웠다. “전 세계에서 여성이 가장 많이 살해되는 장소는 집”이라는 UN 보고서가 떠올랐다.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정폭력 신고도 늘어났다는 뉴스를 생각했다. 천장 하나를 사이에 둔 그 ‘집’에서 아무도 죽지 않기를 기도했다.

 

오래전 동네 한의원에서 침을 맞다가 우연히 옆 침대 경찰관과 의사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동네는 참 근무하기 편해요. 가정폭력 신고 외에는 거의 출동할 일이 없습니다.”

 

이 작고 고요한 마을에 얼마나 많은 비극이 숨겨진 걸까. 마트에서, 식당에서, 공원에서 보이는 가족들은 더없이 행복한 것만 같다. 정말로 행복한 걸까? 누가 참고 있는 걸까? 불행한 소음이 들리는 날이면 나는 윗집 여자와 아이의 안녕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가정폭력 피해 관련 상담을 받고 싶다면 아래 기관에 연락할 수 있다.

  • 여성긴급전화 1366 (24시간)
  • 한국여성의전화 02-2263-6464
  • 한국여성민우회 02-335-1858
  •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5801

 

글. 리사 (cherry0226@goham20.com)

특성이미지. ⓒ고함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