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표 보수언론 FOX 뉴스 설립자 로저 에일스를 퇴출한 ‘폭탄선언’을 그린 영화 <밤쉘>이 지난 7월 8일 개봉했다. ‘밤쉘(Bombshell)’은 다른 의미로 ‘매력적인 금발 미녀’를 뜻하기도 한다. 영화는 그레천, 케일라, 메긴, 이 세 명의 ‘매력적인 금발 미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자가 여자를 돕는다”고 믿는 그레천(니콜 키드먼), 야망찬 신입 케일라(마고 로비)와 달리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은 무턱대고 지지하기엔 조금 찝찝한 인물이다. 그를 연기한 샤를리즈 테론조차 “솔직히 그녀의 몇몇 발언이 마음에 걸려 배역을 받았을 때 조금 갈등했었다”고 고백한 바 있었으니.

 

샤를리즈 테론(위)과 메긴 켈리(아래) ⓒ 그린나래미디어, Fox News

 

#미투 영웅, 또는 인종차별주의자? 메긴  켈리를 향한 엇갈린 평가

변호사 출신의 스타 앵커 메긴 켈리는 예나 지금이나 누누이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함과 동시에 트럼프의 여성혐오에는 날카로운 질문을 날려 ‘트럼프 저격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프로 라이프(Pro-life)’를 배제하는 페미니스트 운동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예스 민즈 예스(Yes means Yes)” 운동이 남성 혐오적이라고 평하는가 하면, 블랙페이스(백인이 얼굴을 검게 칠해 흑인 분장을 하는 것)가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말했다가 이직한 직장에서 나오게 된다.

 

‘카렌’이란 인종차별에 무지한 백인 여성을 집단적으로 일컫는 여성혐오 섞인 인터넷 밈이다. ⓒ ifunny.com

 

미국인들은 메긴 켈리를 ‘카렌(Karen)’이라 부른다. 인종차별에 무지함을 드러내는 백인 여성에게 멸칭을 붙여 조롱하는 것이다. 영화 <밤쉘> 북미개봉 당시에도 “그레천을 지지할 수는 있지만 메긴 켈리는 그냥 카렌이다.”란 비판이 상당했다. 로저 에일스를 쫓아낸 #미투 영웅! 또는 인종차별을 일삼는 카렌? 메긴 켈리는 어떤 인물인 걸까? 영화 <밤쉘>에서는 이렇게 충돌하는 면면을 지우지 않고 그렸다.

 

난 변호사지 페미니스트가 아냐.

 

메긴은 첫 등장부터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님을 못 박는다. 대사 그대로 그는 철저하게 ‘변호사’다. ‘골빈년’이란 비난에는 아랑곳하지 않지만 “부부 간 강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정보에는 흥분한다. 폭스뉴스가 직장 내 성희롱을 방관한 것에 대해선 “타이틀 세븐(미국 민권법 제7조 인종, 종교, 국적, 성별 등에 의한 고용관계 상 차별 금지)을 위반했으니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질 것”이라고 정확히 짚어 내기도 한다.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딱 한 번 마주칠 뿐이지만 서로를 알아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 그린나래미디어

 

로스쿨을 졸업한 엘리트 백인 여성의 어찌할 도리 없는 보수성, 그런 기득권 여성도 피해갈 수 없었던 남성 권력을 고발하는 것이 <밤쉘>의 핵심이다. 영화 안에서 메긴은 수없이 고뇌한다. 분명 그는 조직의 위계에 적응하여 탑 앵커 자리에 올랐다. 그레천은 그런 메긴이 입을 열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레천 칼슨은 메긴과 교류가 거의 없었으며 그가 침묵을 깬 것이 매우 의외였다고 인터뷰했다.

“나는 여성이기 전에 앵커여야만 해.” 영화 속 대사에서 드러나듯 폭스뉴스 간판 앵커라는 자부심이 강한 메긴은 그레천의 ‘폭탄선언’에 합류하길 주저한다. 커리어에 피해자 꼬리표가 붙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복수의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이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는 결심에 이른다.

 

반목하는 여성들의 연대가 완성한 서사

메긴 켈리는 좋은 사람인가요? 글쎄. 어떤 부분은 그가 옳았고, 또 어떤 부분은 틀렸다. 하지만 이 문제 많은 영웅은 비록 반목하는 사이더라도 연대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친목을 기반으로 무조건 감싸고 도는 형님-아우 카르텔과의 결정적 차이다. 여성들이 서로를 구원하는 데엔 형님-아우만큼의 끈끈함이 필요치 않다. 서로의 고통을 알아볼 수 있기만 하면 된다.

메긴 켈리는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성으로서 페미니즘 운동의 일부가 됐다. 그가 마냥 지지할 수 없는 인물이란 점은 중요하다. 현실 세계에서 연대란 완벽한 페미니스트 전사가 아니라 보통의 문제 있는 여성들이 때론 불화하면서 우여곡절 이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 리사(cherry0226@goham20.com)

특성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