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짝소년단’이란 가나의 독특한 장례 풍습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일컫는다. 상여를 든 소년들의 유쾌함에 전 세계적인 패러디 열풍이 일었는데 이 유행에 의정부고 학생들이 탑승해 얼굴을 검게 칠하고 ‘관짝소년단’ 졸업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흑인이 아닌 사람이 흑인을 흉내 내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하는 분장, 일명 ‘블랙페이스(Blackface)’는 오랜 역사를 가진 인종차별 행위이다.

이 사건에서 공식 사과한 사람은 엉뚱하게도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였다. ‘블랙페이스’가 흑인들에게 불쾌감을 준다고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주 완곡한 언어로 말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요.”라고.

 

2020년 의정부고 ‘관짝소년단’ 패러디 졸업사진 ⓒ 의정부고등학교 학생자치회 페이스북

의정부고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관짝소년단 패러디는 학생들의 여러 차례의 논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것”이라며 “패러디 사진을 찍은 5명 스스로도 혹시 인종차별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깊이 고민했고, 이를 학급에서 투표까지 했다”고 밝혔다. 투표 결과 비하 의도가 담겼다고 판단한 학생들은 없었다고 한다.

 

“그걸 패러디하려는 것 외에 어떤 의도도 없었다. 아이들은 ‘블랙페이스’라는 개념도 모른다. 정말 순수한 생각뿐이었다.”

‘블랙페이스’라는 개념을 모르고 토론이 가능할까? 투표 결과 몰표가 나왔다고? 어쩌면 이 학교에선 민주적인 토론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준비했다. 의정부고 남학생들을 위한 토론 가이드!

1.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자
토론 시작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적절하고 정확한 질문 설정하기다.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해서 졸업사진을 찍고 싶은 남학생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면 인종차별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렇다면 “얼굴을 검게 칠해 흑인을 따라 하는 분장이 인종차별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자.

 

구글에 ‘흑인 분장’을 검색해봤다. ⓒ 고함20

 

2. 사례를 찾아보자
흑인이 아닌 사람이 얼굴을 검게 칠해 분장한 사례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찾아보자. 구글에 ‘흑인 분장’을 검색했더니 ‘블랙페이스’란 개념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캐나다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18년 전 얼굴을 검게 칠해 알라딘 코스프레를 한 사진이 알려져 지지율이 폭락하고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해당 사진은 그의 인생 최대 오점, 가장 끈질긴 꼬리표로 남았다.

네덜란드는 매년 12월 ‘성 니콜라스 데이’에 성 니콜라스의 흑인 하인을 상징하는 캐릭터 ‘블랙 피트(Zwarte Piet)’ 분장을 하고 퍼레이드를 열었다. 네덜란드 제국이 가나와 남아공을 식민지배했던 19세기 생겨난 전통이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2014년 “블랙 피트는 검은색이다. 그린 피트나 브라운 피트가 아니라 블랙 피트이지 않나? 나는 그걸 바꿀 생각이 없다”며 옹호했다. 그러나 최근 과거 주장을 뒤집고 ‘블랙 피트’ 분장을 완전히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한 국가의 총리가 사과해야 했던 이유, 한 국가의 총리가 자신의 주장을 번복해야 했던 이유, ‘블랙페이스’는 왜 문제가 되나? 노예제도가 존재하고 백인 국가가 아프리카 국가를 식민지배하던 시대, 백인 배우들의 흑인 분장은 백인 관객들을 웃기는 수단이었다. 흑인들은 웃지 않았다.

 

이 분장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블랙피트가 흑인이 아니라 피부가 검은 요정이라고 주장하지만, 성 니콜라스에게 검정 피부의 주변인이 있었다는 역사 기록은 없다. ⓒ Eva Plevier/Reuters

 

3. 역지사지(易地思之,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고사성어)
역지사지는 타인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숱하게 많은 백인 유명인사들이 ‘칭키 아이즈(Chinky eyes 눈을 가로로 길게 찢어 동양인을 흉내 내는 행위)’를 하거나 공항에서 ‘합장 인사’를 해 논란이 됐다. 설사 그 사람들이 동양인을 차별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무지에서 나온 행동으로 차별이다. 의정부고 남학생들이 ‘관짝소년단’을 더 사실적으로 재현하려고 했다는 의도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인종차별이 됐다.

 

4. 주의할 점 : 투표의 맹점 기억하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란 다수결의 의사를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수단이다. 상황에 따라 최선의 수단일 수는 있겠지만 ‘최고의 수단’은 아니다. 소수의 의견이 다수에 함몰되고 있진 않은지 경계해야 한다. ‘침묵의 나선 이론’이란 말이 있다. 어쩌면 ‘정치와 법’ 과목에서 들어봤을 수도? (2015학년도 개정 교육과정 기준)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다수 의견에 휩쓸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저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하는 태도를 주의하자. 한쪽 의견에 몰표가 나왔다면 더욱 의심해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의 의견에 나를 의탁하지 말자. 차근차근 고민해서 ‘진짜 자기 의견’을 찾는 연습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교육이다.

 

순수하고 악의 없는 차별주의자를 위한 가이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차별주의자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은 어떤 악의도 없고 그저 순수한 사람이라고. 그 순수함 자체가 문제다. ‘토론’했음에도 ‘블랙페이스’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블랙페이스’가 인종차별로 인지되는 역사적 맥락에 무관심하고 무지하다는 것 자체. 무관심과 무지를 해소할 기회가 있었지만 의정부고는 결국 유해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토론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목소리가, 역사적인 맥락이, 인권이라는 개념이 문턱을 넘지 못한 교실에서 일어난 토론은 무용했다. 의정부고 관계자는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인 고3 학생들이라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아, 맞다. 입시 왕국 대한민국이었지. 대학 입시 앞에 인권, 평등, 민주주의가 전부 무용해지는 나라.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이 토론 가이드는 높게 쌓인 문제집 더미 밑으로 깔리고 만다.

 

글. 리사(cherry0226@goham20.com)

특성이미지. ⓒ 의정부고 학생자치회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