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소년이었던 아서가 진정한 왕만 들 수 있는 검을 바위에서 뽑는 것으로 시작해 그와 원탁의 기사들이 펼치는 수많은 모험을 다룬 아서 왕 전설은 그간 많은 영화의 모티브 혹은 소재였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와 매튜 본 감독의 〈킹스맨〉 시리즈 등도 스토리나 캐릭터들을 설정하는 데 아서 왕 전설을 활용한 바 있다. 그러나 기존의 작품들이 다들 놓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서 왕 전설에 등장하는 영웅들이 모두 남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에 넷플릭스 시리즈 〈저주받은 소녀〉는 반기를 드는 것처럼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호수의 여인 ‘니무에(캐서린 랭포드)’를 주인공으로 삼아 10개의 에피소드를 선보인다.

 

암흑의 신에게 저주받았다는 이유로 니무에는 자신의 동족인 페이 족 내에서도 배척받는가 하면, 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페이 족과 마녀들을 학살하는 교회에 쫓겨 다닌다. 하지만 그녀는 여러 역경을 딛고 일어서며, 아버지 멀린을 만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능력을 깨닫고 페이 족의 리더로 거듭난다.

드라마의 중심 서사인 마녀가 구원자가 되는 전개는 작품의 시간적 배경인 중세 시대에 만연했던 마녀사냥의 종교적 측면을 재해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본래 고대 근동과 유럽 종교에서 여성성은 이슈타르, 아프로디테와 같은 여신들이 주신으로 여겨진 것처럼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남성들이 권력을 장악한 가톨릭의 입장에서 정통성 있는 권력을 누리고 통일된 사회체계를 이루려면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진 여성성에 대한 숭배를 막을 필요가 있었다. 마녀사냥은 이처럼 여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하고, 경멸하며 멸시하는 종교적 태도가 집단으로 발산된 된 결과다. 이처럼 여성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가 만연한 시대를 배경으로 〈저주받은 소녀〉는 마녀가 정치적 지도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묘사하며 남성들의 것이었던 아서 왕 전설을 여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쓴다. 

 

ⓒ 넷플릭스

 

하지만 〈저주받은 소녀〉는 일반화된 여성성이라는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했다.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여성 성인식에는 (…) 자연이 아니라 문화에 속하는 그런 사건이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역사적으로 소년의 성인식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인정받는 사회적인 차원인 것에 비해 소녀의 성인식에서는 생리하는 등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는 자연적인 측면만 강조된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저주받은 소녀〉는 이처럼 남성이 사회와 문명일 때 여성은 자연이라는 고정관념을 답습한다.

니무에는 검에 깃든 힘이나 자신의 능력 등 본인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힘을 이용해 여러 위기 상황을 돌파한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는 여왕으로 추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실책을 남발하고, 그로 인한 문제는 대부분 마법 혹은 그녀가 아닌 다른 인물들의 도움으로 해결된다. 자연적으로 주어진 힘 외에 사회적으로 학습한 능력을 이용해 인간과 페이 족 간의 분쟁을 조정하거나 교회의 공격을 막아내는 통치능력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성 주인공의 도움을 받는 여주인공이라는 전형성을 탈피하고도 니무에라는 영웅은 굳어진 여성상을 반복하는 데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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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화를 여성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시도는 낯설지 않다. 신화나 전설이 긴 시간 동안 여성에 대한 일반화되고 고정된 시각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해온 만큼, 그것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합당한 자리를 찾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시도이기 때문이다. 올 초에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좋은 예시다. 모두가 아내를 잡지 못한 오르페우스의 슬픔에 집중할 때, 이 영화는 신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에우리디케의 시점에 주목하고 그녀와 영화 속 주인공들 간의 공통점을 보여주면서 오르페우스 신화를 재해석한다.

〈저주받은 소녀〉의 신화 다시 쓰기는 완전하지 않으며, 일장일단의 결과물을 남긴 채 일단락됐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상투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로마도 하루아침에 건국되지 않았으니까. 아직 끝나지 않은 니무에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보자.

 

글. DAY(potter1113@naver.com)

특성이미지. ⓒ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