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계층화’라는 말이 있다. 전염병, 자연재해 같은 재난은 언뜻 보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닥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가난하기 때문에 재난에 더욱 쉽게 노출되고, 누군가는 이를 기회로 삼아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한다. 재난은 불평등의 격차를 더 벌어지게 하고 고착한다.

지난 6월, 코로나19의 여파로 25~29세 실업률이 21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체감 실업률을 보여주는 고용보조지표3도 통계 작성 시작 이후 최고치에 달했다. 같은 시기 서울 원룸의 평균 월세는 6% 상승했으며, 월세가 비교적 저렴한 금천구, 도봉구, 구로구는 5월 대비 9%나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고가 아파트를 겨냥하다 보니 정책에서 제외된 단독·다세대·연립주택 시장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의식주는 인간다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지만, 한국 사회에서 집은 사는(live) 것보단 사는(buy) 것에 가깝다. 최근 부동산 정책 논란으로 중도층과 서울 유권자의 민심이 바뀌었다고 한다. TV에서는 부동산 정책이 잘못됐다느니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느니 연일 이야기가 쏟아진다. 그러나 그 속에 집도 안정적인 일자리도 얻지 못한, 임대료를 벌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 뼘짜리 방에 갇힌 청년들의 이야기는 없다. 고함20은 코로나 시대, 각자의 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그 의미를 찾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땡길 수 있을 때 땡기자”_총총

 

ⓒ중대신문

 

초등학생 때 가훈 알아 오기 숙제를 받으면 엄마는 늘 바른 글씨로 ‘믿음 사랑 소망’을 적어주셨는데, 최근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새롭게 탄생한 가훈은 ‘땡길 수 있을 때 땡기자’다.

지난해 동생과 내가 서울에 작은 빌라를 얻어 독립하면서 임대료, 공과금, 각종 세금, 학자금 대출, 교통비, 식비 등을 합해 월 160이라는 고정지출이 생겨났다. 처음 몇 개월 동안은 학교에 다니면서 틈틈이 버는 돈으로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올 초 코로나라는 변수가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시작은 내 일터인 카페였다. 1학기 대면수업이 무산되면서 대학가에 위치한 가게 매출이 폭락했다. 근무시간이 주 24시간에서 20시간으로 줄었다. 다음으로 동생이 일하는 패밀리레스토랑이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줄였다. 둘의 수입 합산이 고정비용을 못 넘기게 되었으나, 하반기가 된다고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었다. 종강과 함께 우리는 미친 듯이 일거리를 늘리기 시작했다.

동생은 평일에는 풀타임으로 세무서에서 알바하고 주말에는 레스토랑에 나갔다. 나는 주 6일 스케줄을 만들었다. 눈 뜨면 출근하고 퇴근하자마자 잠드는 생활이 이어졌다. 서로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다가도 결론은 “땡길 수 있을 때 땡겨야 한다”가 되는 대화를 반복하면서.

방학 때 번 돈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우리는 머리를 싸매고 앉아 노트에 고정지출 목록을 쭉 적어 내려갔다. 제일 1순위이자 가장 큰 지출은 당연히 임대료였다.

“언니, 근데 이상하지 않아? 코로나 때문에 다들 어렵고 힘든데 건물주들만 그대로 돈 버는 게.”

“그러게… 집 없이는 살 수 없잖아. 이렇게 돈이 많이 든다는 게 말이 되나?”

코로나 이후 일자리를 잃은 한 친구는 집을 원룸에서 고시원으로, 고시원에서 월 20만 원짜리 음악 작업실로 옮겼다. 이사 소식을 듣고 놀러 갔다가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벽이 방음천 재질이라 아늑하다”, “마음껏 소리 질러도 되겠다” 따위의 말을 건넨 뒤, 돌아오는 길에서 지난 대화를 계속 곱씹게 되었다. 집다운 집에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정말 나를 위협하는 건_미정

 

ⓒ세계일보

 

“아직은 가정의 지원을 받을 나이인데, 부모님이 안 해 주셔?”

곱창전골을 사준 팀장님은 휴학하고 돈을 벌고 있다는 내게 당연하다는 듯 부모님의 지원을 이야기했다. 그런 거 없다. 혼자 먹고살아야 한다. 매달 꼬박꼬박 날아오는 청구서는 모두 내가 해결해야 한다. 월세, 관리비, 공과금이 코로나에 걸려 격리조치 당하면 참 좋으련만. 나를 지키기 위해 집에 있으라는 코로나 시대에, 나는 내 집을 지키기 위해 밖에 나가 돈을 벌어야만 한다.

꾸준히 지출될 주거비를 해결하기 위해 자취를 시작하자마자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코로나 여파로 일자리는 적고 지원자는 많았다. 항상 열려 있다는 물류센터도 자리가 줄어들었다. 몇 주를 헤매 겨우 얻게 된 일자리는 콜센터 단기직. 구로 콜센터 대규모 확진으로 상담원이 기피직종이 되면서 겨우 나온 자리다. 나 또한 코로나가 무서웠지만, 주거비를 해결하고 같이 사는 고양이를 먹여 살리려면 다른 수가 없었다. 무릇 가장 위험한 자리는 가장 약한 사람의 자리인 법. 살아남기 위해서 위험한 일터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자기 회사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콜센터에서도 언제 확진자가 나올지 모른다. 언젠가 건물에 확진자가 나오고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한동안 돈을 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든 말든 청구서는 우편함에 계속 날아올 것이고. 미리 돈을 모아 놓지 않으면 내 집을 지킬 수 없다.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 일을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해야만 한다.

쉬지 않고 출퇴근을 계속하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집이 있는 건데, 집을 보호하기 위해 나를 위험에 빠뜨려야 한다면, 집이 나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아닐까?

 

이곳은 집이 아니다_채야채

 

ⓒ한국일보

 

세상이 바뀌면 모두가 그 새로움을 명명하기를 즐긴다. 현재 언택트(Untact), 포스트 코로나(Post-Corona), 뉴노멀(New Normal)과 같은 생소한 영어단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절대 코로나바이러스 이전의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은 우리 생활양식의 탈바꿈을 예고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제 보편적인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점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집’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안으로, 정확히는 집으로 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거공간은 세부적으로 분리되고, 각 용도에 따라 독특한 별명들이 생겨났다. 이를테면 홈 오피스, 홈 카페, 알파룸, 자연친화적 발코니, 방공호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다면 집도 아니고 방에서 사는 가난한 대학생의 집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 집주인은 이곳을 ‘풀옵션 원룸’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말마따나 백팩 하나를 덜렁 메고 자취를 시작했던 나에게는 어쩌면 과분한 공간이었다. 꽉꽉 들어찬 가구들과 함께 부엌, 안방, 거실, 게다가 개인 화장실까지 한 번에 가질 수 있다니! 하지만 살다 보니 집의 진또배기 옵션들을 찾을 수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개인공간의 용이한 접근성, 더 쪼개면 원자만 남을 것 같은 좁은 방안, 미약한 채광과 제대로 되지 않는 환기. 가장 원했던 안정과 안전이라는 옵션이 없었다.

분명 욕심을 부린 적은 없다. 인간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 중 하나라는 ‘주’를 누리고 싶었을 뿐인데, 그 자리를 ‘부’가 대신 채우고 있기에 벌어진 일이다. 전세계적 재난에 휩쓸려 안으로 돌아가야 하는 지금, 삶보다는 재산의 역할에 충실한 집은 그 어떤 공간적 의미도 담지 못한 채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있다. 코로나와의 불편한 동거를 지속해야 하는 미래. 이를 위한 변화의 시작은 자잘한 별칭 없이도 온전한 집의 정의를 되찾는 일이다.

 

글. 총총(ech752@naver.com), 미정(qkrtkdgur972@naver.com), 채야채(chaeyachae@gmail.com)

특성이미지.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