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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살을 다루는 한국언론의 태도다. 극적인 표현 속에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고인의 삶을 대변하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이 기사의 주인공들은 자살을 했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을 가진다. 바로 그들이 모두 성범죄의 가해자였다는 것.

 

성범죄자가 또 죽었다

SNS 기반 스타트업 ‘여행에 미치다’ 대표 조준기가 9월 9일 숨졌다. 그는 지난달 29일 기업 SNS 계정에 불법영상물을 게시했다. 그는 그저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시민의 고발로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i].그러자 그는 지난 1일 돌연 SNS에 가족을 부탁한다며 계좌번호를 적은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다.

며칠동안 그의 이름과 기업명이 네이버나 등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조 대표의 사망에 대해서만 하루동안 약 200건의 기사가 인터넷을 달궜다. 언론은 조준기의 인간적 서사에 집중했다. ‘여행에 미치다’라는 기업의 존재도 몰랐던 대중은 이제 그 기업 대표가 처자식이 있는 가장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사망자가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기에, 가정이 있기에, 그의 죽음은 더 잘 팔리는 이야깃거리로 재탄생한다.

 

명암(明暗)의 경계에 서서

고인의 죽음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그의 삶이 얼마나 찬란한 것이었는지 눈이 아프도록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비단 조 대표 사건에 그치는 일이 아니다. 고(古) 박원순 전 서울 시장, 배우 고(古) 조민기 등 성범죄 가해자의 자살 뒤에 일부 언론은 위인전이라도 쓸 기세로 그들의 미담을 퍼다 날랐다. 정작 고인이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그 자신을 수치스럽게 만든 사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한 두 줄로 끝난다. 그리고 언론은 그러한 보도 형식을 ‘중립적’이라 설명했다.

언론이 말하는 중립성이란 간단하다. 사람의 명(明) 암(暗)을 모두 보자는 것이다. 비록 사망한 가해자들이 성범죄에 가담한 사실이 있으나, 그게 그의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인정하자고 대중을 타이른다. 대중은 이러한 기계적 중립성이 가해자를 지나치게 미화한다고 지적했지만, 언론은 ‘신중하려는 노력’이었다고 변명했다[ii].

론이 권력에 비추는 빛이 환하게 번질수록 권력자들이 드리우는 그림자도 짙어져 갔다. 권력자가 가진 어둠이 한 명의 시민에게까지 드리울 때도 언론은 대중에게 명(明)이 있기에 그 암(暗)을 양해하라고 할 뿐이다. 무고한 시민이 겪는 고통에 권력자를 대신하여 변명을 다는 것을 중립이라 명명할 수 있는가. 저널리즘에서 중립성이라는 말은 특정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이지, 옳고 그름 사이에서 고민하는 아둔함을 뜻하는 게 아니다.

 

따옴표 저널리즘 뒤에 숨어서

세계일보는 지난 9일 기사를 통해 조 대표의 극단적 선택은 그를 향한 도 넘은 비난, 인터넷 공간의 ‘마녀사냥’에서 비롯된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누리꾼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빌어 “누구나 실수는 하는데 조 대표는 자신을 넘어 가족, 동료 등 주변인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견디지 못한 것 같다”는 메시지도 함께 전했다[iii].

따옴표 저널리즘. 특정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보도 형식을 뜻하는 용어다. 박원순이 숨졌을 때 언론은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의 말을 빌렸고, 조민기가 숨졌을 때는 조 배우 동료들의 말을 빌렸다. 그렇게 한국 언론의 ‘따옴표 저널리즘’은 완성되었다. 수없이 반복되는 성범죄 피해자들의 죽음 앞에서 언론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한 적 있었던가. 언론이 선택한 따옴표는 이번에도 남성의 것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의 한탄이 머릿속을 스친다. ‘피해자가 성폭력의 경험을 털어놓으려면, 성폭력의 경험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요[iv].‘ 언론이 가해자의 목소리를 전하고 대중이 가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이 사회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여자가 또 죽었다고 분노하는 대중 앞에, 언론이 내놓은 이야기는 오늘도 남자의 죽음이다.

 

 

[i]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규정하는 ‘불법촬영물’에 해당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해당 영상물은 법적으로 ‘음란물’에 해당하는데, 이 기사에서는 그 표현 대신 합법적이지 않은 영상물이라는 의미에서 불법영상물이라는 표현을 썼다.
[ii] 2020년 7월 16일 KBS 시청자위원회(관련보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339)
[iii] ‘청년들의 여행 멘토였던 조준기 대표 사망… 누리꾼 “한 순간의 실수로 안타까워”’, 세계일보
[iv] 온성신 텔레그램 성착취 취재, 한국성폭력상담소 감이 활동가 인터뷰 중(中)

 

글. 달걀껍질(kyeory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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