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이미지는 ‘좋은느낌’ 광고의 패러디 물입니다.” ⓒ 고함20

 

기댈 곳이라고는 동료애뿐인 한국여성의 생리와 관련한 산부인과 경험기

 

나는 이십여 평생 동안 호그와트 입학 편지를 받지 못한 채 살아온 대한민국의 평범한 머글이다. 잠긴 문을 여는 마법 주문 따위는 알지 못하고, 하늘을 나는 마법 빗자루는 영화 기념품으로 만나봤을 뿐이다. 실제로 날 수도 없는 걸 말이다. 이런 나는 중학생 때부터 대략 한 달에 한 번꼴로 마법을 부리는 ‘그날’을 보내왔다. 피가 끓어 내 안의 흑염룡이 깨어나던 사춘기 시절에도 ‘그날’은 원수 같은 서로가 진통제와 핫팩 그리고 ‘여성용품’을 나누는 휴전상태를 만들어 냈으니 어쩌면 마법 같은 날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피를 쏟아내며 온갖 통증과 싸우면서도 왜 아픈지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하고 조용히 담요와 주머니 속에 ‘그것’을 숨겨 화장실로 향해야 했던 동지에 대한 동료애였다. 분명 그건 동료애다.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하고 ‘마법’과 ‘그날’이라는 단어 뒤에 숨겨야 했던 우리는 그 단어의 뜻조차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피를 맞닥뜨렸다. 피가 옷에 묻어나면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할 듯이 급하게 담요와 체육복으로 서로의 뒤를 가려줬고, 조용히 ‘너 그거 샜어.’라고 일러주며 안타까운 시선을 마주했던 일은 생리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한 달에 한번 우리 학교의 절반 이상이 겪었던, 그리고 겪어야 했던 생리는 오로지 성교육 시간에만 그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있던 금기의 단어와도 같았다. 생리는 나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내가 아는 정보라고는 ‘대략 이맘때쯤’ 시작된다는 것. 진통제를 먹어야 생리통이라고 불리는 온갖 통증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어른이 되었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학교에서 성교육 시간에 가임기와 배란기 따위를 알려줬지만 사실 그걸 그렇게 꼼꼼히 인지하고 계산할 수 있는 존경스러운 여성이 몇이나 되냔 말이야. 내 주기가 며칠인지도 정확하게 모른단 말이다. 스마트폰에 어플을 깔고 까먹지 않으면 주기를 입력하는 것 정도가 내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였다.

 

학업과 알바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던 스물하나, 내가 생리를 언제 했는지, 해야 하는지 생각 못한 채 살았다. 생리 없이 지낸지 일곱 달이 넘어가던 중에 친구에게 비상 생리대를 건네주며 불현듯 건강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생리가 내 건강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몇 년을 달마다 겪던 일이 꽤 오랜 시간 부재했다는 데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이 컸다. 친구들도 잘은 모르지만 ‘규칙적으로 생리 하는 게 좋다더라’ 고 걱정을 더했고, 가장 가까운 생리 선배인 엄마도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누구도 명확하게 생리가 왜 규칙적으로 이루어져야 좋은지, 불규칙한 주기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대답해주지 못했다. 일생의 절반 가까이 겪고 있는 신체 현상에 대해서 모두가 그저 ‘원래 여성은 규칙적으로 생리를 해야 호르몬에 문제가 없는 거라고 했다.’ 정도로 갈무리 지을 뿐이었다.

산부인과에 너무 오래 생리를 안 해서 왔다고 접수와 문진표 작성을 하고 나니 의사와 대면할 수 있었다. 갑상선같은 다른 질병으로 인한 생리불순일 지도 몰라서 몇 가지 검사를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의사는 성인 여성은 규칙적인 생리주기를 가지는 게 좋다고 운을 떼며 호르몬 주사를 통해 생리를 터트리고 그 후 꾸준히 피임약을 복용하는 치료를 권했다. 분명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왜 생리 주기를 규칙적으로 만드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꼭 달마다 생리를 해야 하냐고 물었다. 병원에 오기 전부터 근본적으로 가졌던 물음이었다. 바쁜 생활 중에 생리까지 매달 해야 했다면 나는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굳이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내 몸이 다시 생리를 시작할 때까지 내게 주어진 자유의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내 물음에 의사는 꾸준히 규칙적인 생리 주기를 만들어 두는 것이 나중에 임신을 시도할 때 좋으며 지금부터 불규칙한 생리주기를 그냥 놔둔다면 불임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비출산을 선언한 한국여성에게 불규칙한 생리주기의 결과물이 불임이라고 말했을 때 ‘어이쿠, 지금 당장 호르몬 주사를 맞고 피임약을 꾸준히 복용해 불임 가능성을 줄여 추후 나의 출산을 대비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불규칙한 주기에서 오는 문제가 불임뿐이라면 나는 굳이 주사와 약물로 주기를 규칙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떨떠름하게 말했더니 그는 당황한 듯 보였다. 임신과 출산의 중요성을 몇 번이고 더 강조하던 그 남의사는 결국 해서는 안 됐을 말을 입에 올렸다. “환자분, 규칙적으로 생리를 하면 기분도 좋아지잖아요!”

피식 새어 나온 비소를 숨기지 못한 채 진료를 마쳤고 결국 어떤 치료도 없이 산부인과를 떠났다. 바로 다음 날, 내 몸은 그동안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생리를 시작했고 끊어질 것처럼 아파오는 허리와 복부 통증 그리고 간간이 치밀어 오르는 메스꺼움과 억울함 사이에서 괴로웠다. 이 고통을 얻자고 병원에 가서 그런 말을 듣고 왔다니!

 

생리 불순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가 건네줬던 말이 ‘주기적으로 생리를 하면 기분이 조크든요!’ 따위가 아니라 생리를 피하고 싶을 만큼의 불편함을 피할 수 있는 현대 의학적 방법에 대해 조언했다면 내 생리 라이프는 조금이라도 쾌적해질 수 있었을까. 차라리 안전한 섹스라이프를 위해서 생리주기를 알고 있는 게 좋다고 말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었을지도 모른다.

불규칙한 생리 주기는 생리불순이라는 명칭으로 진료를 받게 되는데, ‘생리를 규칙적으로 하면 기분이 좋다’던 의사의 발언 이후 방문했던 네 곳 이상의 병원에서도 어떤 건강 의학적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규칙적으로 생리할 수 있는 약물의 처방이나 호르몬 주사 정도를 권했을 뿐이다. 내가 규칙적인 생리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누구 하나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막연히 그게 좋다는 말에 흔들려 며칠이고 엉덩이가 얼얼하고 속이 메스꺼운 부작용을 가진 호르몬 주사를 맞고 오기도 했고, 매일 알람을 맞춰놓고 피임약을 복용했다. 그 노력 끝에 찾아온 게 일주일 남짓의 생리전 증후군과 생리통을 동반한 일주일 정도의 생리기간이라는 게 아이러니했지만,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근방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과장에게 ‘생리를 규칙적으로 하면 기분이 좋다’라는 소리를 운이 없어서 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도 표현만 달라졌을 뿐, 마치 내 생애에서 임신과 출산이 가장 중대한 이슈이고 그것을 지금부터 잘 준비해두어야 한다는 조언을 건네던 의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비출산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위해서 항상 몸을 따뜻하게 하고, 찬데 앉거나 찬 음료를 즐기면 안 되며,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수도승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내 몸이 아파도 산부인과 진료를 선뜻 갈 수 없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이 고민은 결국 다년간 수소문 끝에 찾아간 병원에서 해결되었다. 생리불순은 스트레스 지수나 생활패턴에 따라 언제고 달라질 수 있으니 불편함이 없다면 굳이 치료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의사의 소견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질병과 무관한 생리불순이 직업 활동에 영향을 주거나 임신 계획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면 굳이 무리하게 약이나 주사로 조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었다. 요즘은 20대에 시술이나 약물로 생리중단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중에 다시 약물로 생리를 시작해서 임신을 시도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어서 그다지 큰 걱정거리는 아니라고 했다. 이 의학소견 하나를 듣기 위해 수년간 여러 병원에서 그 고통들을 겪었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생리 중단에 대한 고민과 선택은 커지고 있다. 없던 심장도 만들고 유전자 쇼핑 수준의 의학기술이 연구되고 있는 지금, 여성의 필요에 따라 생리를 중단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술은 왜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던 걸까. 왜 아직도 여성은 발암물질이 포함된 생리대를 파우치에 숨겨 다니고 생리대에 붙여진 작고 귀여운 테이프로 생리대를 싸매서 버리고 있는가. 2020년이지만 여성의 생리는 아직도 19세기에 멈춰있는 것만 같다. 인류 탄생 이래, 여성은 일생의 반 이상을 생리와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2020년인 지금까지도 여성은 생리에 대한 그 어떤 선택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생리 중단을 희망하거나 선택하려는 태도가 여자답지 못하다고 손가락질 받고, 정확한 설명 없이 그저 여성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고통을 감수하기를 종용받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마냥 친절하고 걱정 없는 산부인과 경험은 어렵다. 유독 생리와 관련해서는 출산에 대한 나의 가치관과 생리라이프에 대한 태도 등을 몇 번이나 타인에게 이해시켜야한다. 이 모든 과정의 필연성에 대한 의문과 이유 모를 불쾌감에서 오는 고통 또한 나만의 문제다. 여성에게는 내 신체에 대한 온전한 결정권을 가지기부터가 엄청난 ‘노오력’이 필요하다. 그 당연한 논리에 의구심을 가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으니까.

 

수능이 혹시 생리주기와 겹칠까 한 달이 넘게 매일 알람을 맞춰두고 피임약을 챙겨먹던, 여름 물놀이를 앞두고 인터넷에서 배운 지식으로 탐폰 착용을 시도하던, 생리대에서 검출된 발암 성분에 걱정과 분노에 잠 못 들던 우리 중 그 누구도 생리가 단순히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일 수 없다. 내 생리라이프에 대한 고민 그리고 내 시간과 돈이 드는 의료행위에서 조차 나는 높은 확률로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한다. 차라리 나에게만 있던 재수 없는 일이기를 바라지만 이런 불쾌한 경험은 비단 나의 개인적인 일로 끝나지 못한다.

어른이 된 우리는 이제 막 초경을 끝냈던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의 생리라이프를 걱정하며 발 벗고 정보를 공유한다. 분명하고 정확한 정보나 더 나은 방법에 대해 무엇도 확신할 수 없지만, 부디 서로가 덜 고통스럽고 더 안전하기를 바라면서.

그래. 그때도 지금도, 이것은 분명히 동료애다.

 

글. 야망토끼(chateau_314@goham20.com)

특성이미지. ⓒ 고함20 

기획[질삶관리위원회] 

기획. 야망토끼, 리사, 김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