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 갈 때 가끔 탐폰을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 정혈(精血)대를 썼다. 그러다 정혈컵을 사용한 지 4개월 차.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생겼다.

*정혈은 여성들이 기존의 남성 중심적 단어를 거부하자는 의미에서 만든 신조어다. 정액(精液)이라는 단어에서도 깨끗할 정(精)자를 쓰기 때문에 ‘생리’라는 단어를 ‘정혈’(精血)로 고쳐 쓴다.

 

1. 나의 정혈기

아주 오랫동안 정혈하는 내 몸을 미워했다. 정혈은 모든 걸 탁월하지 못하게 했으니까. 공부도, 운동도, 수면도, 씻는 것도, 그냥 걷는 것조차도. 당연했던 것들이 불편해지는 경험을 해야 했다. 동시에 나는 온전히 육체적인 몸이 되었다. 내가 호르몬 앞에서 이렇게나 무능했나 싶을 정도로 한 주간 내 기분은 철저히 호르몬의 것이었다.

아프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보아도 허리와 배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 욕이 절로 나온다. ‘건들면 물어요’ 같은 공격적인 자세가 된다. 그 와중에 축축한 정혈대는 움직일 때마다 내 몸과 까끌까끌 마찰한다. 그것도 일주일, 24시간 내내. 2~3시간에 한 번씩 꼭 확인해줘야 하는 수고로움도 요구한다. 통풍도 잘되지 않아 무더운 여름이면 찝찝함은 배가 되는데 그 느낌은 매우 견디기 어려웠다.

특히 외출할 때면 나도 모르게 더욱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원하는 옷을 입기보다는 만일을 대비해 어두운 옷을 입었다. 자유를 잃은 기분이었다. 또, 피가 새어 나오지는 않는지, 혹여 옆 사람에게 냄새가 나진 않을지 종일 온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정혈은 불편하고도 불쾌한 경험이기만 했다.

 

2. 정혈컵을 만나다

정혈컵을 사용하게 된 건 친구 담이의 얘기를 듣고서다. 우리는 무언가 유용한 걸 찾았을 때 서로에게 열렬히 전파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곤 했는데, 그날은 정혈컵이 화두였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 편해. 어느 정도냐면 내가 정혈하고 있다는 걸 잊어버릴 정도야.”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 내게 담이는 외쳤다.

“진짜야. 8시간에 한 번 확인하면 되고, 일단 사면 2년은 쓸 수 있어!”

찾아보니 정말 그랬다. 가장 새로웠던 건 2년이라는 유효기간이었다. 대충 계산해봐도 비용이 크게 절약되었다. 정혈컵은 해외 제품이 많다 보니 배송비가 더해져서 4~5만 원 정도였는데, 한 번 사서 2년을 쓴다고 생각하면 가성비가 좋았다. 반면 일회용 정혈대는 한 달에 만 원으로 계산해도 2년이면 24만 원이다. (실제로 여성들은 1년에만 평균 17만 원을 사용한다는 통계가 있다[i]. 이것도 진통제나 정혈용 속옷 등에 들어가는 기타 비용은 고려하지 않은, 정혈대 가격만을 고려한 결과다.)

정혈컵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건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회용 정혈대를 쓸 때 고작 몇 시간 쓰고 버려야 하니 아까울 때가 많았다. 특히 쓰레기가 쌓여갈 때면 환경오염의 주범이 된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천연 생리대를 쓰며 손수 빨고 말릴 성실함은 내게 없었고 무신경으로 일관하며 계속 일회용을 쓰던 차였다. 담이는 정혈컵을 쓰면서 지구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 덜었다고 말했다. 작은 일이더라도 일상에서 자기 혐오를 느끼지 않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도 했다.

그날 이후 버려지는 정혈대 하나하나에 대해 의식하게 되었고 나는 우리의 대화를 자꾸만 곱씹고 있었다. 그렇게 정혈컵을 주문했다. 사실 정혈컵의 존재를 안 건 1년도 넘은 터였지만 어쩐지 거부감이 있었는데 가까운 사람이 추천해 주니 이상하게 용기가 생겼다. 유독 올여름, 장마와 무더운 날씨가 반복된 탓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던 때이기도 했다.

 

3. 정혈컵 체험담

 

ⓒ고함20

 

다음 날 아침, 집 앞에는 “당신의 열정을 응원합니다”라고 쓰인 택배 상자가 도착해 있었다. 그 문구가 어쩐지 귀엽고 따뜻하게 느껴져서 웃음이 나왔다. 함께 보내준 설명서를 찬찬히 읽으며 정혈컵을 깨끗이 씻었다. 대망의 정혈컵 사용 후기는 정말 편했다는 것! 이대로라면 뭐라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처음 시도할 때는 ‘이게 뭐가 편하다는 거야’ 싶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 넣는 게 어려웠고 빼는 건 더 어려워서 정혈컵 사용을 다시 고민해야 했다. 여기서 포기하지 말자. 넣고 빼는 과정만 수월해지면 신세계가 열린다.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 넣을 땐 정혈컵을 잘 접어서 입구를 작아지게 만들기. 실리콘 재질이라 잘 접힌다. 그래도 어렵다면 따뜻한 물에 컵을 적시자.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 뺄 땐 정혈컵의 꼬리를 살살 당기다가 꼬리가 다 나오면 손으로 컵을 살짝 눌러서 빼기. 그냥 당기면 진공상태라 잘 빠지지 않는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겁먹지 않는 거다. ‘나는 해파리다’ 생각하고 온몸에 힘을 빼자.

 

정혈컵을 쓴 뒤로 담이의 말처럼 나는 정혈하고 있다는 걸 종종 잊었다. 피가 새어 나올까 봐 숨 쉬듯 걱정하던 일도 멈추었다. 정혈대를 쓸 땐 당연한 고단함이라고만 여겼던 일이다. 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인지하는 게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그 사실이 나를 나약하고 움츠리게 만든다는 사실도. 예컨대 수많은 체육 시간을 포기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피를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변기로 흘려보내지 않고 세면대에서 내 손으로 헹구는 일은 신기하면서 묘하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내 몸이 이렇게 생겼구나’, ‘혈의 색은 이렇구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다행스럽다고 느꼈다. 내게 정혈컵을 권해준 담이에게 고맙다.

이제 나는 새하얀 하의를 입는다. 친구와 조깅도 한다. 지난주에는 무려 2만 보를 걸었다. 샤워도 잘 하고 잠도 푹 잔다. 한 달에 한 번 피 흘리는 일에 여전히 불편한 점도 있지만 더 이상 내게 정혈은 불쾌한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 정혈하는 내 몸을 미워하지 않는다.

엄마에게 정혈컵을 선물했다. 담이와 내가 서로를 가르쳤던 것처럼 이번에는 엄마와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4. 당신의 정혈, 안녕하신가요?

세상에는 여러 정혈용품이 있다. 그럼에도 정혈대 이외의 용품을 잘 알지 못했던 건 주변에서 사용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미디어에서도 짧은 광고로조차 접하기 어려웠던 영향이 컸다.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도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정혈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고충을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사적 영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질 속에 물건을 넣는다는 데서 두려움을 느끼는 분들도 꽤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 감정은 “여성의 몸을 순결과 연관 지어 통제하는 사회”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부장제 사회의 기획 때문에 불편을 계속 감수하는 건 분한 일이지 않나.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잘 알고 편하게 피 흘렸으면 좋겠다. 정혈 때문에 포기하는 게 없었으면 좋겠다. 나의 경우가 그랬듯 당신도 ‘정혈’이 불편했다기보다 ‘정혈대’가 불편했던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절대 유난스러운 몸이 아니라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고 충분히 열정적일 수 있다. “당신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i] 이영민. (2017.09.10.). “여성이라 내야 하는 600만 원”…생리대의 경제학. 머니투데이. https://c11.kr/hvfa

 

글. 김타민(thanku4u1235@naver.com)

특성이미지.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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