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은 “우린 흔들리지 않지”라는 슬로건으로 2020년 12월 1일 개막하여 열흘간 모든 영화를 온라인에서 무료 상영합니다. 이 기사는 웹기자단 ‘피움뷰어’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스튜번빌 고등학교 풋볼팀 성폭행 사건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최강레드!〉 ⓒ〈최강레드!〉 공식 스틸컷

 

Is this football town putting its daughters at risk by protecting its sons

제 의문은 이거였죠. 이 마을은 남자들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들을 위험에 몰아넣고 있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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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디셀 (취재 기자)

 

한글 자막은 ‘피해자들’로 번역됐지만 원문은 ‘딸들(daughters)’이었다. 오하이오주의 스튜번빌 마을에서 일어난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는 지역을 빛내는 자랑스런 아들(sons)인 고교 풋볼팀 선수들. 마을 주민과 학교 관계자는 이상할 정도로 가해자를 감싸고 돈다. 풋볼팀 감독 리노 소코치아는 선수들이 술을 마시고 파티를 한 것이 잘못이지, “부적절한 접촉”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강간’이란 용어로 쓰는 것을 피해간다.

 

리노 소코치아 감독에게 전하는 수사관의 일갈 ⓒ〈최강레드!〉 화면 갈무리

 

소코치아 감독에게 수사관은 단호하게 알린다. “어디라도 삽입을 했으면 강간”이라고. 나는 이 장면에서 한참 멈춰 있었다. 한국에서는 “어디라도(any part of body)” 강간이 되는 게 아니라 어디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형법 제297조 강간죄는 성기에의 삽입이 있어야 성립한다. ‘남성기’가 ‘여성기’에 삽입되어야 그것을 비로소 강간죄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신체 부위에 가해진 성폭행은 ‘유사강간(형법 제297조의2)’이라 한다.

 

[형법 제297조의2]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강간죄의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유사강간죄의 법정형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강간을 강간이라 정의하는 것과 ‘강간과 유사하다’고 정의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강간죄와 유사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그런데 과연 강간과 유사강간 사이의 자기결정권 침해정도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은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뀌었지만 원래 형법 제32장의 제목은 ‘정조에 관한 죄’였다. 성기에 강제로 타인의 성기가 삽입된 행위만이 정조를 중대하게 침해한 범죄이고, 성기가 아닌 곳이라면 상대적으로 덜 나쁜 범죄란 뜻이다. 이것은 형법이 가해자들에게 “성기가 아닌 다른 신체 내부에 성기를 삽입하면 형량을 할인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홍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조 관념은 이름만 바뀐 법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법정에서 변론하는 피고인(가해자) 측 변호사 월터 매디슨 ⓒAP

 

피해자는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려줬어요. 휴대폰을 열어준 건 동의의 한 방식이죠.

 

 

법의 언어가 이렇듯 철저히 남성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걸 이해한다면, 사실 가해자 트렌트와 말릭(Trent Mayes, Ma’lik Richmond)의 변호사가 한 말은 별로 놀랍게 들리지 않는다. 휴대폰을 열어준 건 동의의 한 방식이라고? 그런데 정말로 저런 변론이 법정에서 잘 통한다. 피해자의 어떤 사소한 행동이든 그게 가해자로 하여금 ‘동의’로 받아들일 만한 여지를 주었다는 식이다. 모든 결과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려 한다. 법정에서 법이 작동하는 방식이란 그렇다.

 

‘스탠퍼드 대학교 성폭행 사건’도 똑같았다. 가해자 브록 터너, 전도유망한 수영선수, 아이비리그 대학인 스탠퍼드 학생이고, 앞길이 창창한. 가해자에 붙은 수식어나, 피해자가 술에 취해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 것도 비슷하다. 브록 터너는 피해자가 자신의 “등을 문질렀다”고 진술했다. 등을 문질렀으니 피해자도 원했던 것이라고.

 

“나는 명백하게 모든 걸 허락했답니다. 심지어 그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래, 그래, 그래’ 단 세마디만 했고, 그 뒤 그는 나를 땅바닥에서 반라의 상태로 만들어놓았습니다. 나중을 위해 참고 삼아 하는 말이지만, 여자가 동의하는 건지 아닌지 혼란스럽다면 먼저 그녀가 온전한 문장을 말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세요. 단어로 이루어진 조리 있는 단 한 문장. 그녀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건 ‘아니오’입니다. 어쩌면이 아니고, 그냥 ‘아니오’입니다.

2015년 스탠퍼드 성폭행 사건의 생존자 샤넬 밀러가 재판에서 낭독한 피해자 의견 진술서 中

 

페미니스트 법학자 캐서린 맥키넌은 ‘모호한 동의’에 대해 이런 학설을 펼친다. “반쯤 동의된 성관계가 화간이라면, 왜 반쯤 거절된 성관계는 강간이 아닌가?” 반쯤까지 갈 것도 없다. 단 0.1퍼센트의 Yes만 섞여도 성폭행이 아니라고 한다. 등을 문지른 행위가 나를 강간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며, 휴대폰 잠금을 풀어준 행위가 나를 집단으로 성폭행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이 당연한 명제는 대체 언제 받아들어질까?

 

다큐멘터리 〈최강레드!〉는 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 온라인 상영관에서 12월 2일 수요일 12시부터 12월 4일 금요일 12시까지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글. 리사(cherry0226@goham20.com)

대표이미지. ⓒ〈최강레드!〉 공식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