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 1회는커녕 연 1회의 운동도 없는 삶이었다. 체력은 뚝뚝 바닥까지 떨어졌다. 연회장 아르바이트를 2년이 넘도록 다녔지만, 올데이 (12시간) 근무를 한 다음 날은 기어이 온몸에 알이 배었다. 엄마 심부름으로 마트를 다녀온 다음 날도 팔이 근육통으로 아플 정도로 내 몸엔 근육 한 줌 없었다.

몸이 그 지경이 되니, 어느 시점부터는 밤까지 체력을 남겨두기 위해서 일종의 저전력 모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동네나 학교같이 편한 공간에서는 최대한 몸에 힘을 뺀 채로 생활했다. 관절을 거의 굽히지 않고 휘청대며 걷고 책상에 널브러져 있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좀비와 구분이 어려운 상태라고 진단했다.

운동을 시작하자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운동에 대해 검색할 때마다 나오는 콘텐츠들은 모두 일종의 벽처럼 느껴졌다. 2000년대 초반 시작된 ‘몸짱’ 열풍 덕에 언제나 ‘운동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몸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SNS에서도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눈바디’[1]라는 외형적 존재감으로 드러났다. 그런 이미지는 내게 ‘너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내 몸은 화면 속 운동하는 이들의 몸과 거리가 멀었고, 무엇보다 그렇게 운동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는 반감이 들었다. 그들은 무신(武臣)의, 나는 문신(文臣)의 정체성을 가진 것만 같았고, 그렇다면 문신인 내가 굳이 무도(武道)까지 익힐 이유도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많은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며 이러한 선입견이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 미디어를 통해 전형화된 ‘운동하는 사람의 몸’을 가지지 않았지만, 운동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영자, 김민경같이 체력이 좋지만 ‘눈바디’를 추구하지 않는 연예인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주변에는 점차 다양한 몸의 형태를 가진 ‘운동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해 조심스레 운동을 시작해볼 용기가 생겼다.

하루 30분 걷기, 팔굽혀펴기 (10회~)30회, 스트레칭 15분. 굽어있던 등이 조금 펴졌고, 책상에 엎드려서 공부하던 내가 허리를 펴고 공부하는 시간이 늘었다. 나는 여전히 동네를 휘청이며 걷는다. 별것 아닌 노력이고, 변화는 더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운동하는 사람’이다. 내 몸은 전시된 것들과는 다를지언정 ‘운동하는 사람의 몸’이다. 운동을 시작하는 게 어려웠다면, 운동에 대한 정의를 돌아보는 일도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운동의 이미지에 자신의 몸을 틀렸다고 단정 짓는 대신 자신의 몸에 맞추어 운동이라는 행위와 언어를 재구성해 보자.

[1] 눈에 보이는 몸의 형태. 운동하는 사람들이 지표로 삼는 이상적인 몸의 상태. 몸이 예쁘게 보이는 정도를 뜻한다.

 

글. 달걀껍질(kyeory000@naver.com)

특성이미지. ⓒ맛있는 녀석들(Tasty Guys) 유튜브 채널

기획[건강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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