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시작되던 때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학교에서 근로 장학을 하고 있었다. 다들 마스크를 쓰기는 했지만, 실내에 들어오면 금세 벗었고 생색용으로 복도에는 손 소독제가 하나씩 비치되어 있었다. 집 앞 편의점 정도는 마스크 없이 갈 수 있었다. 이때는 코로나를 금방 지나가는 감기 같은 것쯤으로 생각했는데, 정말 감기처럼 지독하게 떨어지질 않았다.

 

나는 지금쯤이면 사실 프랑스 파리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떠나 멋들어진 카페테라스에서 크루아상을 으적으적 먹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학교에서 근로 장학 중이다. 오늘은 이미 한 학기 뒤로 미룬 교환학생을 완전히 취소해야 했다. 어쩌면 교환학생 경험이 삶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내 삶을 뒤바꾼 건 다름 아닌 2020년의 역병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학교생활에서 시작됐다.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싸강, 온강, 인강. 여러 이름으로 불렸지만, 본질은 같았다. 틀어놓고 듣지 않는 것. 1년 내내 강의를 제때 들은 적이 손에 꼽는다. 2020년의 1학기 수업은 열악했으며, 2학기 학생들은 약아졌다. 한 교수는 기존에 타 사이트에 판매했던 온라인 강의를 학교 정규 수업 과정으로 제공해 문제가 됐었고, 어떤 학생들은 이런저런 오픈 채팅방에서 답안을 공유하기도 했다. 교수님이 키우시는 강아지를 볼 수 있다는 것 외에 온라인 강의가 대면 강의를 능가할 만큼 큰 장점은 없는 듯했다.

 

시험 문제는 갈수록 추상적이게 됐다. 이게 중간고사인지, 바칼로레아*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재난지원학점’이라는 말도 나왔다. 학교의 공식 입장은 알 수 없지만, 코로나로 급변한 교육환경에, 학점이라도 후하게 주는 것 아니냐는 학생들의 자조 어린 밈(meme)이다.

*프랑스의 대학입학시험.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논술형 문제로 유명하다.

 

덕분에 학점은 조금 올랐지만, 여전히 등록금은 돌려받지 못했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는 상생 장학금(이랍시고) 10만 원을 줬다. 학교는 어지간한 일에는 묵묵부답이었고, 덕분에 학교가 우리를 학생이 아니라 장사의 대상으로 본다는 생각은 지우기 어려웠다. 도서관과 열람실 사용 가능 시간은 반 토막 났고, 졸업 요건을 따기 위한 교내 시험도 취소됐다. 시험비 만원을 돌려받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코로나로 인해 돌려받는 돈들이 많아졌다. 적금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시험비 만원, 크리스마스에 가기로 한 콘서트값 십만 원. 자꾸만 만기 되는 이 이상한 적금들은 허탈함과 함께 통장에 꽂힌다.

 

1교시 수업을 어떻게 학교까지 가서 들었는지 모르겠다던 친구들은 소셜미디어에 학교가 그립다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동기들과 전공 수업 듣고 방황하는 발걸음을 술집으로 돌려 술 한잔에 고민을 한 줄씩 읊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졸업을 앞두고 다들 맞닥뜨리는 돈을 벌어 먹고사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좇는 일에 관한 고민은 재난 앞에서 오롯이 혼자만의 철없는 고뇌가 되고 만다.

 

휴학을 몇 번 더하면 마지막 학기를 학교에서 보낼 수 있게 될까? 코로나는 언제 끝나서 내 대학 생활을 돌려줄까. 졸업까지 한 과목 남은 시점에서,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2020년을 맞이하던 그 순간에 갇혀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 한 과목을 볼모 삼아 대학생 신분을 보내지 않고 질척이고 있는 셈이다. “2021년의 계획이 뭐야?” 친구의 질문에 목이 턱 막힌다. 어, 그러게. 떠밀리듯 2020년의 끝까지 왔다. 앞이 절벽인지, 꽉 막힌 벽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눈물을 닦고 zoom을 틀어 친구들과 차가운 얼굴을 맞댄다.

얘들아, 잘살고 있니?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로 가자… 어라라… 내일은… 2021년….

 

글. 기동(mer.gidong@goham2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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