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며 찍은 사진 ⓒ고함20

 

밖순이인 내 삶의 한 가지 낙은 친구 하진과 함께 밤 산책을 하는 것이다. 둘이라는 숫자가 주는 안도감으로 입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렇게 개운하다. 그 상태로 시원한 물 한잔을 딱 마셔주면 그게 행복이더라. 그러다 지난 7월, 한창 낯선 장마가 계속될 때였다. 비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내리는 탓에 밖을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한동안 집에만 머물렀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쩐지 몸은 무거워지고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았다. 모든 중력이 나를 누르는 것만 같았다. (단순히 살이 찐 건가.)

 

TV 앞에서 온종일을 보냈다. 재방송을 하도 봐서 그다음 대사가 뭔지 정확히 맞출 때쯤 위기감이 몰려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이렇게 살다간 단명할지도 몰라.’  평소처럼 채널을 돌리다 하루는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를 봤다. 김종국이 매니저를 데리고 무수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김종국은 몇십 층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오르는데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정말 즐겁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너무도 신기한 장면이었다. 동시에 궁금했다. 저 사람이 저렇게나 쉽게 하니 견딜 만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찌뿌둥한 날이 반복되던 중 나도 한 번 계단을 올라보기로 했다.

 

아파트 계단은 12층까지 있다. 1층에서 위를 쳐다보는데 아득하게 느껴졌다. 3층 정도 올라가니 숨이 턱 끝까지 찼다. 10층까지 가니 심장이 어찌나 폴짝폴짝 뛰는지 어쩌면 심장은 목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첫날이니 여기까지만 오르기로 했다. 다음날은 30층을 조금 넘게 올랐다. 지금은 80층 정도를 오른다. 한 달 조금 넘게 계단을 오르면서 숨이 차오르는 시간이 점점 늦게 온다는 걸 매일 실감했다. 그 감각은 끈기 없는 내가 운동을 지속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SBS Catch 유튜브 채널

 

계단 오르기는 날씨나 기분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우선 계단은 실내에 있으니 날씨와 무관하다. 기분과 무관하다는 건 운동을 시작하기 전 큰맘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그동안 복싱, 태권도, 수영, 탁구, 요가 등 여러 운동을 배웠다. 그때마다 운동을 하는 날이면 가기 싫은 마음과 가야 하는 마음이 늘 싸웠다. 그리고 가기 싫은 마음이 이기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계단은 늘 5분 거리에 있어서 큰 결심이 필요치 않다. 아무렇게나 옷을 걸치고 대충 집을 나설 수 있다.

 

열심히 발을 굴리다 보면 잡생각이 없어지는데, 그것도 좋다. 사실 무언갈 생각할 겨를이 없다. 숨을 쉬어내는 것도 고되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이 틀렸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 몸을 가만히 누이고만 있으면 과거의 후회되는 일들이 떠올라 마음을 자주 괴롭힌다.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이어질 때는 벌떡 일어나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어떨까.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맑은 땀을 흘리고 나면 잠도 잘 온다. 홀로 긴 밤을 이겨낼 힘이 생기는 것만 같다.

 

지금 계단 오르기의 좋은 점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나는 계단을 오르면서 절대 즐거운 표정은 못 짓는다. 앞으로도 김종국처럼 되긴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계속 나일 거다. 지금처럼 작은 일에도 눈물이 줄줄 흐르고 ‘왜 그때 나는 그 말을 떠올리지 못했나’ 자려고 누운 자리에서 이불을 뻥뻥 찰 거다. 분명 작은 일에 휘둘리고 모든 일에 의연하지 못할 거다. 그렇지만 안 단단한 마음 대신 튼튼한 다리를 마련할 수는 있지 않을까. 딱 한 계단, 한 걸음만큼 잘해볼 힘이면 충분하다. 내 삶을 단단하게 받쳐줄 두 다리를 기대해본다. 그나저나 〈미우새〉를 보며 내가 얻을 건 단 한 가지도 없다고 확신했는데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

 

글. 김타민(thanku4u1235@naver.com)

특성이미지. ⓒ고함20, SBS Catch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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