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촛불, 다시 세월호〉의 피켓 / ⓒ고함20

 

“왜 이렇게 많이들 오셨대유?”

마이크를 쥔 창현엄마 최순화 씨의 구수한 첫 마디에 참가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던 나도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대설주의보와 강풍 예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하지만 청와대 앞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촛불 피케팅에 참가한 시민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최 씨는 “이렇게 추운 날 오실 분이 얼마나 되실까 하는 생각을 했다”라며 나와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은 지난 19일, 제기된 17개의 혐의 중 13개의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밝혔다. 언론 보도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활동으로 밝혀진 수사외압과 불법사찰 등 핵심사안 중에서 추가 기소 건은 없었다. 유가족은 물론 국회의원들까지 수사 결과에 유감을 표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말 제대로 수사를 한 것이 맞는지 의심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바라던 시민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4.16 세월호참사 유가족협의회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규탄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진상규명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촛불 피케팅 〈다시 촛불, 다시 세월호〉를 1월 25일부터 시작했다.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주요 수사결과 / ⓒ뉴시스

 

대설주의보와 강풍 속에서 촛불과 피켓을 들다

지난 28일, 무릎까지 오는 롱패딩을 꼭꼭 여미고 두꺼운 장갑을 챙겨 집을 나섰다. 칼바람이 불어서 잠시만 가만히 있어도 손이 얼어버리는 날씨였다. 나오자마자 걱정이 앞섰다. ‘날이 이렇게 추운데 두 시간 동안 피케팅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걱정과 동시에 청와대 앞에서 사백일이 넘게 피켓을 들어온 세월호 유가족이 떠올랐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모두 밖에서 보낸 이들을 앞에 두고 고작 하루에 겁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경복궁역을 지나 버스에서 내리자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촛불 피케팅 장소는 청와대를 바로 앞에 끼고 있는 효자동 사거리였다. 길 건너에 관계자로 보이는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쭈뼛쭈뼛 어색하게 다가가니 금세 아는 체를 해주어서, 피켓과 몸자보(조끼 형식의 입는 대자보), 촛불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여기 코로나 명부 작성 먼저 해주시고요, 길 건너서 나무 두 개마다 거리 두고 서주시면 됩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이미 도로변에 띄엄띄엄 늘어서 있었다. 조금 걸어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촛불과 피켓을 들고 있으니 몇 년 전의 광화문이 떠올랐다. 커다란 광장이 촛불로 가득 찼던 그때도 겨울이었다. 오랜만에 드는 촛불이었다.

 

‘다시 촛불’의 의미는 “촛불 정부로서의 의무와 사명을 다해라”

촛불의 의미는 깊다. 한미FTA 반대와 반값등록금, 박근혜 퇴진까지 한국 사회의 굵직한 사건들 대부분에 촛불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 하나로 뜻을 모은다. 그리고 무언가를 바꾸자고 외친다. 촛불의 의미가 국민이자 변화인 이유다. 본격적인 촛불 피케팅이 시작되기 전, 23일에 있던 집중 피케팅에서 예은아빠 유경근 씨는 촛불 피케팅의 이름 〈다시 촛불, 다시 세월호〉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다시 촛불을 드는 의미, 굳이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실 겁니다. 문재인 정부에게 다시 촛불정신으로 되돌아가서 촛불 정부로서의 의무와 사명을 다하라고 촉구하기 위해서입니다.”

 

23일 발언 중인 예은아빠 유경근씨. 앞선 22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검찰 수사 결과를 규탄하며 청와대 앞에서 삭발했다. / ⓒ고함20

 

2016년 탄핵 촛불의 제일 앞에는 세월호 가족들이 있었다. 큰 스크린이 관중을 비출 때면 맨 앞줄의 노란 옷이 가장 먼저 보이곤 했다. 촛불 현장에서는 적폐 청산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 불과 12일 만에 3년 동안 바다에 잠겨있던 세월호가 인양됐다. 촛불정신을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탄생에 모두가 이제는 됐다고 믿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우리나라 제도상 강제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검찰뿐이다. 때문에 사참위는 어렵게 출발했지만 협소한 조사 권한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지난 3년의 활동 기간 동안 사참위가 제기한 여러 의혹들은 ‘혐의없음’이라는 검찰의 일방적인 마무리로 끝났다.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끝까지 밝히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6년 11월 세월호 기억 교실에 방문해 남긴 방명록이다. 가족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한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해왔던 진상규명의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하지만 400일이 넘는 피케팅에도, 100일에 가까운 농성에도 청와대는 답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시민들에게는 허탈함만 남았다. 이날 촛불 피케팅에 참여한 대학생 최휘주 씨는 “당선 이전부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지속해서 얘기해온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은 아무런 의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촛불 정부라고 자칭하면서 촛불의 요구를 듣지 않는 것에 화가 난다”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진상규명을 꾸준히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함20

 

촛불은 추위를 이긴다

쌩쌩 달리는 차들을 앞에 두고 시린 피케팅을 이어가던 차에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몸자보를 메고 있는 다른 참가자였다. “지나가는 시민분이 주신 건데 하나 받으세요.” 따듯한 핫팩이었다. 길 건너에서는 투쟁을 응원하는 민중가수가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앰프를 통해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추위를 이기는 마음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이 걸어온 길에는 따듯한 날보다는 추운 날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유가족이 그렇고 시민들이 그렇다. 이날 발언을 한 유가족들은 한결같이 함께해주는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경빈엄마 전인숙 씨는 참가자들에게 “세월호 가족들이 여러분 덕에 숨을 쉰다”며 “앞으로도 힘을 낼 수 있게 여러분이 응원을 많이 해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쥐여준 핫팩은 피케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한참이나 더웠다.

 

*4.16 세월호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주최하는 촛불 피케팅 〈다시 촛불, 다시 세월호〉는 매주 토요일 저녁 청와대 앞에서 진행됩니다.

 

글. 일공이(oneotwo@naver.com)

특성이미지. ⓒ고함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