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마음에 담아둔 말이 많았다. 입에서만 굴리던 말들을 드디어 뱉는다. 여성의날을 맞이하여 흘려 보내지 않고 붙잡아 둔 인생의 한 줄기를 글에 담았다. 각자 다른 목소리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끝에는 늘 여성들이 살아갈 세상이 있다. 어떤 눈물도 의심받지 않고 어떤 행복도 감히 꿈꿀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을 좇는 네 편의 이야기.

 

미안하다는 말은 엄마의 말버릇이었다.

 

돈이 없어서, 제대로 학교를 나와 본 적이 없어서, 네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몸 생각 안 하고 자꾸만 술을 먹어서, 보란 듯이 불러내 이렇게 안 좋은 모습만 보여서. 있잖아, 우리 작은 딸. 넘치게 주어도 모자라도록 잘해주고 싶은데 부족한 것만 가득해서, 엄마가 미안해. 중간에 어떤 말이 오든 간에 주어와 서술어는 같았다. 나는 이 지극히도 평범한 문장에 갇혀서 사랑보다도 부채감을 먼저 배웠다. 불가항력이었다. 당신이 장황하게 각종 사과들을 늘어놓을 때마다 그것들을 베어 문 채 괜찮다고 웅얼거릴 수밖에. 우리가 가난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가난할 필요는 없잖아, 라는 말을 종종 삼켜내야 했다. 절대 소화될 리 없는 속을 부여잡고 잠드는 거북한 날들이 많았다.

 

자연스레 엄마를 생각하면 애정 어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편지 한 장은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도, 엄마 앞에서는 다정한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런 대화를 하면 오히려 분위기는 서먹해졌다. 지금 사랑은 사치 아닌가. 엄마와 행복만 할 수 있는 때가 오겠지. 그렇게 매번 나중으로 미루는 동안 나는 이 공백만큼의 당신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엄마를 위해, 나를 챙기기를 그만두고 현실이 허락하는 최선의 나로서. 엄마가 어떤 소리를 하든 간에 다 이해하니까, 제발 미안해 말라고 빌었다. 무거운 톤으로 감히 또 다른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실없는 농담을 덧붙였다. 싸구려 밴드마냥 말꼬리에 덕지덕지.

 

그랬던 나 때문일까. 엄마는 갈수록 미안함을 무기로 그 최선을 다하는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내가 깨닫고 나서도 진담인지 습관인지 헷갈리는 사과들은 쏟아졌다. 엄마가, 엄마가, 엄마가. 엄마는 정말로 딸 인생의 목적어가 당신이어야 할 것처럼 굴었다. 엄마의 고백은 잦고 단순했으나 내 감정은 속수무책으로 엉켰다. 잘못은 엄마가 했다면서, 이 커다란 부채감을 견뎌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그걸 받아내려고 나를 덜어내고, 또 덜어냈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일이었다. 미안하지만, 나 좀 그만 괴롭히면 안 될까. 그렇게 눈 딱 감고 연락을 끊고 나서도 꽉 막힌 속이 내려갈 생각을 안 했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사랑했겠지. … 진짜? 감정이 소화불량에 걸려버린 것 같은 느낌이 계속됐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의 어떤 것과 한참 거리를 벌려 놓은 장본인도 엄마였다. 엄마는 언제나 미안하다는 말을 앞세웠고, 언젠가부터는 그 말로 나를 극한에 몰아넣었다. 제멋대로, 이것도 사랑이라며. 나는 억울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듣지 않아도 됐을 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다. 오래 억지로 들었다.

 

엄마와 내 사이를 어떻게든 좋게 정리해보려고, 이 부채감을 소화해보려고 노력해왔다. 어쩌면 우리는 비슷한 구석도 있었다. 둘 다 눈물이 많았고, 노래를 좋아했고, 이따금씩 만나 그동안의 안부를 안주삼는 둘만의 술자리를 즐겼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엄마랑 나는 다르다. 더욱이 사랑이라는 것에서 그렇다. 나는 누군가에게 미안하지 않은 사랑을 줄 생각이다. 이제는 엄마의 배려없는 속죄를 굳이 사랑이라고 삼켜내지 않는다. 몇 안 되는 나를 위한 일.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에게 미안해지는 일은 없다.

 

글. 채야채(cheayachae@gmail.com)

특성이미지. ⓒ고함20

기획[입에서 굴리던 말들]

기획. 기동, 채야채, 총총, 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