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몇해 전의 일이다. 학교에 남아 친구와 과제를 하다 건물 앞에서 선배와 마주쳤다. 휠체어를 탄 선배는 집에 가기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수업이 끝난 지 2시간이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선배가 장애인 콜택시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고 있을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면 장애인 콜택시 말고 버스나 지하철 타면 되잖아요.”

선배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냥 난처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우리는 20년을 기다렸다

 

지하철에 설치된 장애인 리프트
지하철에 설치된 장애인 리프트 / ©오마이뉴스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 노부부가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해 그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역사 내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시설은 안전장치 하나 없는 휠체어 리프트뿐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장애인이 분노했으며, ‘장애인이동권연대’가 결성되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20년이 흐른 지금, 대부분의 지하철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으며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이 도입되었다. 언뜻 보면 교통약자의 이동권이 보장되고 있는 듯하다. 휠체어를 타고도 안전하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가 생겼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날 선배는 왜 2시간이 넘도록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며 난처한 웃음을 지어야 했을까.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20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교통약자의 대중교통 이용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국토교통부는 2021년까지 전국 시내버스 중 41%를 저상버스로 하겠다고 계획했으나 현재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28.4%다. 그마저도 경사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버스가 많고, 고속버스 중 전동휠체어 이용이 가능한 버스는 10대에 불과하다. 지하철역 장애인 추락사고 또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1]

 

대중교통 대안으로 나온 장애 콜택시마저도 중증장애인 150명당 1대 꼴로 운영 중이며, 날씨와 시간에 따른 제약이 심각하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곧 생존권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교통약자 대중교통 접근성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시설 확충은 더디기만 하다.

 

1월 22일, 장애인 활동가들이 오이도역 참사 20주기를 맞아 4호선 열차 안에서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1월 22일, 장애인 활동가들이 오이도역 참사 20주기를 맞아 4호선 열차 안에서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 ©에이블뉴스

 

더딘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월, 오이도역 참사 20주기를 맞이해 진행된 장애인 이동권 시위 때문에 열차가 지연되자 시민들의 민원이 발생했다. 한 시민은 장애인 활동가를 밀치며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했다. 2월 10일, 설 연휴를 앞두고 벌어진 장애인 이동권 시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 시위로 인해 4호선 운행에 차질이 생기자 시민들은 현장의 장애인 활동가들에게 운행 지연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불만을 토로했다. 시위 주최 측은 ‘무언가를 요구하려면 남에게 피해 주지 마라’라는 항의 메일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 활동가들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기까지 했다.

 

지하철 내부에 붙여진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요구가 적힌 종이들
지하철 내부에 붙여진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요구가 적힌 종이들 / ©에이블뉴스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있을 때마다 대다수의 언론사는 이로 인해 대중교통이 지연되었다고 보도하기 바쁘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 전반적 의식은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단 몇 분간의 지연에 교통약자가 지난 20년 동안 겪었던 불편함은 쉽게 지워져 버렸다. 이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이동권이 침해되는 것보다 열차 지연과 교통 마비가 더 중요한 문제인 걸까.

 

선배의 난처한 웃음에는 모두의 책임이 있다

지난해 인권위가 발표한 ‘장애인 이동권 강화를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응답자의 48%가 저상버스 승차 거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승차 거부 이유에는 고장 등의 기술적 이유와 더불어 다른 승객의 불만(14.5%), 무정차 통과(34.5%)도 적지 않은 요소를 차지했다.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에서조차도 이 들의 존재는 지워진다. 장애인의 이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된 운행 방식과 승하차시 발생하는 지연조차 견디지 못하는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시설이 아무리 확충된다 한들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완전히 보장될 수 있을까.

시위 당시 활동가들은 대중교통의 운행을 직접적으로 방해한 것이 아니라 휠체어에 탑승한 채 대중교통을 내리고 탔을 뿐이다. 이로 인해 지연이 발생했고, 대다수의 언론이 이들의 승하차를 ‘퍼포먼스’라고 보도했다. 대중교통 이용은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지만 장애인에게는 운행지연의 원인이자 시위 퍼포먼스가 된다. 대중의 화살은 휠체어 승하차만으로도 차질이 생기는 운행  시스템이 아닌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에게 향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존재가 얼마나 부자연스럽게 여겨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배리어프리(barrier free)’는 누구나 사회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 건설을 방해하는 물리적, 심리적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물리적인 보장을 넘어 이들이 소외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배리어프리의 일부다. 강산이 2번이나 바뀌는 동안 장애인 활동가들의 구호는 그대로였다. 우리는 여전히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해달라’는 당연한 요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세상에 살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국가 시스템 마련과 물리적 시설 확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장애인을 향한 시민 의식 증진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20년 동안 계속된 요구에도 지지부진한 이동권 문제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존재를 부자연스럽고 불편하게 치부하는 인식의 책임이 크다.

내가 다니는 학교 인근 지하철역에는 교통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도 당시 선배가 지하철을 타는 대신 오지 않는 장애인 콜택시를 하염없이 기다린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1] 2001년 사건 이후 2002년 발산역, 2004년 서울역, 2006년 회기역, 2008년 화서역, 2012년 오산역 그리고 2017년 신길역에서 리프트 추락사고로 여러 명의 장애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 김개똥(go.gaeddong@goham2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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