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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티비로 보는 백색 영화: 할리우드에는 백인만 산다

다채로운 지구촌에서 단색을 고집하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는 얼굴이 하얀 사람들만 산다. 지구에 피어난 문화라면 반드시 이 마을 사람의 손을 거치는데 거쳐 간 문화도 하얗다. 국경 개방화 시대에 하얀 장벽을 쌓는 이 마을은 바로 할리우드, 그곳에는 백인만 산다.  

 

백인이 찍고 백인이 받는 할리우드 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은 #OscarSoWhite의 해시태그가 퍼지며 백인들만의 잔치라는 비판을 받았다. 2015년과 2016년 오스카 시상식 주요 상 후보에 오른 20명이 모두 백인 배우들로 선정되었고 투표권을 가진 아카데미 회원 중 91%는 백인이었다. 그들만의 잔치는 2021년에도 열렸다.

재미교포인 감독 정이삭의 자전적 가족 이민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 〈미나리〉는 한국어 대사가 많다는 이유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본상인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분류되었다. 시상식을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는 대화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영화로 규정하는 기준이 있다고 밝혔다[1]. 중국계 미국인 가정을 그렸던 영화 〈페어웰〉 또한 2019년 골든그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으로 분류되었다. 미국인 5명 중 1명이 집에서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할리우드에서 〈미나리〉와 〈페어웰〉는 ‘이방인’의 이야기가 되었다.

 

신비로운 바보, 동양인

영화 속 수많은 캐릭터 중에 비백인은 몇 명일까?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오직 26.9%의 캐릭터만 비백인 배우가 연기한다[2]. 이 숫자는 흑인과 아시아인, 히스패닉 계열과 그 외의 모든 인종을 합친 숫자이고 2007년부터 14년까지 비백인 캐릭터의 비율은 증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26.9%의 비백인 캐릭터조차 서양의 삐뚤어진 시선 속에서 탄생한다.

디즈니는 1998년 작 애니메이션 〈뮬란〉을 2020년에 영화로 실사화하여 선보였다. 원작 〈뮬란〉은 평범한 소녀가 가족을 위해 군인이 되어 슬기롭게 역경을 헤쳐가는 이야기였지만 영화 속 뮬란은 특별한 기(氣), 선천적인 능력을 지닌 소녀로 연출된다. 동양의 기(氣)는 단순히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3]. ‘기가 살다’, ‘기를 펴다’처럼 누구나 가지는 힘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영화 〈뮬란〉은 이를 특별한 능력, 즉 talent(재능)로 해석한다. 기(氣)의 올바른 뜻도 몰랐던 디즈니는 무려 2억달러를 들여 아시아계 여성을 영웅으로 만든 기념비적 애니메이션 〈뮬란〉을 뻔한 오리엔탈리즘 영화로 퇴행시켰다.

 

이 사진은 넷플릭스 〈곤도 마리에 :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의 포스터 사진으로 합장하고 있는 곤도 마리에의 모습과 프로그램 화면 갈무리로 그가 손을 뒤로 꺾어서 바닥에 맞댄 채 집을 향해 절하는 모습이다.
합장하고 집을 향해 절하는 곤도 마리에 / ⓒ넷플릭스 〈곤도 마리에 :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포스터, 화면 갈무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곤도 마리에 :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정리 전문가인 곤도 마리에의 미니멀리즘을 보여준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버리라는 평범한 조언에 신비로운 동양의 이미지를 입히며 큰 성공을 거뒀다. 합장 인사를 고집하고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 손을 반대로 꺾고[4] 무릎을 꿇으며 집을 향해 인사하는 곤도 마리에의 모습은 전통을 고수하는 친절한 아시아계 여성으로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을 충족시켰다.

 

덜 까만 흑인을 원한다

‘나는 할리우드가 받아들일 수 있는 피부색의 흑인이다. (흑인이지만) 백인 배우만 원하는 오디션이라도 도전하겠다.’ 미국의 틴에이지 스타이자 최연소 에미상 수상자인 젠데이아조차 흑인이기에 볼 수 있는 오디션이 부족하다는 고백은 충격적이다.

백인만 선호하는 할리우드의 전통은 일명 ‘브라운 백’ 테스트를 만들었다. ‘브라운 백’ 테스트란 물건을 살 때 슈퍼마켓에서 주는 종이 가방(Brown Bag)의 색과 피부색이 같거나 더 밝은 비백인만이 특혜를 받을 수 있다는 차별적인 관행을 보여준다. 실제로 2017년 이후 브리티시 탑 40위에 든 여성 흑인 가수들은 대부분 밝은 피부를 갖고 있고 할리우드에 입성한 흑인 연예인들은 백인과 흑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 경우가 많다.

 

이 사진은 실제 인물인 니나 시몬의 사진으로 곱슬머리, 낮은 코, 진한 눈썹, 어두운 피부색이 특징이다. 옆 사진은 그를 연기한 배우 조 샐대나의 사진으로 갈색 톤의 피부, 높은 코, 생머리가 특징이다.
실제 니나 시몬과 그를 연기한 배우 조 샐대나 / ⓒ The New York Times, NBC News

 

할리우드는 실제 흑인을 덜 까맣게 재현한다. 〈니나〉는 2016년에 개봉한 미국 재즈가수 니나 시몬의 전기영화다. 니나 시몬은 흑인차별을 대표하는 곡인 <미시시피 갓댐(Mississippi Goddam>의 주인공이자 전 세계 각지를 돌며 음악을 통해 인종차별을 노래한 가수이다. 그를 연기한 조 샐대나는 라틴계 배우이다. 그는 니나처럼 보이기 위하여 피부를 검게 하고 치아를 두드러지게 분장하였다. 제작사는 흑인 인권 운동에 평생을 바친 니나를 재현하기 위해 그와 정반대로 덜 까만 흑인 배우를 캐스팅하였고 유족은 니나의 이름을 거론하지 말아 달라고 비판하였다.  

 

UHD시대에 백색 영화라니

흑백 영화의 시대가 가고 컬러 티비가 등장한 지도 오래지만, 할리우드는 영화에 오직 하얀색만 쓴다. 문화는 시대를 개척해야 하지만 할리우드는 모두가 평등하길 원하는 시대성마저 역행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눈에 바보 같은 동양인도 덜 까매야 하는 흑인도 영화관에 앉으면 모두 관객이다. 자신의 모습이 이상하게 연출되는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은 없다. 왜곡된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영화는 과연 사랑받을 수 있을까. 관객의 발길이 끊긴 마을도 ‘할리우드’라는 건재한 이름을 유지할지 궁금할 뿐이다. 

 

[1] HFPA, 「Golden Globe Awards Eligibility Descriptions」, 2012

[2] Stacy L Smith, 「Inequality in 700 Popular Films: Examining Portrayals of Gender, Race, & LGBT Status from 2007 to 2014」, 2015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기(氣)는 활동하는 힘, 숨쉴 때 나오는 기운, 철학적으로 만물 생성의 근원을 의미할 뿐, 디즈니가 해석한 ‘재능’에 가까운 의미는 없다.

[4] 넷플릭스 〈곤도 마리에 :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화면 갈무리 참조.

 

글. 이끼(mossflower0@gmail.com)

특성이미지. ⓒ넷플릭스 〈곤도 마리에 :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The New York Times, Los Angeles Times, NBC News

2 Comments
  1. Avatar
    익명

    2021년 3월 23일 18:15

    무심코 봤던 영화들인디 생각 못했네요 ㅠㅠ

  2. Avatar
    익명

    2021년 3월 24일 18:06

    제목이 호기심을 유발하네요.
    아시아계 사람 혐오 범죄가 발생하는 요즘,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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