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한 스포일러 및 가정폭력과 관련된 트리거 요소가 있습니다.

 

〈환원: Devotion〉에는 유명 극작가인 남편 ‘두펑위’,

한때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전직 톱스타 아내 ‘궁리팡’,

그리고 이러한 부모의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아 촉망받는 딸 ‘두메이신’이 등장한다. ¹⁾

 

공포 게임 〈환원: Devotion〉에 등장하는 세 가족의 사진
공포 게임 〈환원: Devotion〉에 등장하는 세 가족 / ⓒ게임메카

 

공포감을 시작으로, 짙은 여운으로 끝나는 게임

〈환원: Devotion〉은 까다로운 조작법 없이 플레이어가 게임 속 맵을 걸어 나가며 스토리와 연출을 감상하는 1인칭 ‘워킹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진행된다. 게임의 배경은 한 좁고 낡은 가정집에 한정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집 안 오브제들의 기괴한 배치와 적재적소에 놓인 호러 연출들을 통해 배경 장치의 단조로움은 최소화하고 반대로 플레이어들의 긴장감과 공포감을 고조시킨다.

중반부에 들어서면 서서히 세 가족의 과거를 조명하는 서사적 장치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스토리라인과 연출을 통해 드라마와 공포 요소가 적절히 섞여 플레이 타임 2~4시간 동안 플레이어가 매우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점차 기울고 있는 가세와 부모님 간의 갈등을 보며 딸의 마음에 병이 생겨나는 과정, 딸의 정신병을 인정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병원 치료 대신 사이비 종교의 민간요법에 빠져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것. 일련의 스토리를 감상하며 주인공 가족들의 감정선에 동화되어버린 플레이어는 비통한 결말을 보며 사이비 종교의 교주에 분노하는 동시에 주인공의 왜곡된 부성애’ 에 안타까워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환원: Devotion〉에 대한 설명이다.

 

진정한 파국의 원인은

〈환원: Devotion〉의 개발사 Red Candle Games는 공식적으로 〈환원: Devotion〉의 주제는 ‘종교’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인게임²에서도 주인공 가족을 초토화시킨 원흉으로, 사이비 종교인이었던 ‘허 선생’이라는 인물을 직설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 가족의 과거 이야기를 톺아보다 보면 ‘사이비 종교’는 그저 표면적인 요인에 불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일컫는 ‘페이크 빌런’의 모양새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족에게 비극을 초래했던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인류의 긴 역사에서 언제나 존재했으며 게임 속 주인공 가족 이외의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을 비극으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주어진 권위를 무기로 손쉽게 상대방을 찍어 누를 수 있다. 어떨 땐 특유의 올곧고 확고한 신념으로 뭉쳐 있기도 하여 스스로가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다. 그것의 이름은 가부장제 하의 ‘권위적인 가장, 게임에서는 두펑위 자신이었다.

 

그의 극본 속 꼭두각시가 아니다

남편을 내조하며 자녀를 올바르게 성장시키는 것을 제일 큰 보람으로 여기는 아내,  멋지고 유능한 어른이 되어 부모님께 보답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아이, 아내와 아이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확고한 남편.

작중 두펑위가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가족의 형태이며, 제작사에 몇 차례나 거절당하면서도 이런 ‘이상적인’ 모습을 극본으로 담아내는 데에만 몰두했다.
두펑위는 이러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만행을 저질렀다. 우선 당시 인기의 정점에 달했던 궁리팡과 결혼 후, 돌연 그를 은퇴시키며 일개 가정주부로만 남게끔 했다. 이후 본인의 슬럼프가 길어져 가세가 기울게 되었는데도 아내의 연예계 복귀를 강경히 저지하며 그의 날개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또한 극작가로서의 전성기가 지난 본인과는 대조적으로 두메이신이 서서히 촉망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두펑위는 과도하게 딸의 재능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결국 두메이신은 학교, 교우관계도 제쳐두고 무대에 올라가 노래만을 강요받다 중압감에 못 이겨 무대공포증과 공황장애로 고통받게 되었다.

 

두펑위의 이상향이 담긴 극본 중 일부. 두펑위의 부성애는 진정한 내리사랑이 아닌,  보상 심리가 기저에 깔려있다는 점이 암시된다.
두펑위의 이상향이 담긴 극본 중 일부. 두펑위의 부성애는 진정한 내리사랑이 아닌,  보상 심리가 기저에 깔려있다는 점이 암시된다. / ⓒ고함20

 

이렇듯 빛나는 재능을 가진 두 명의 여자들은 한 남자의 ‘이상향’에 맞춰지게 되며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갔다. 두펑위가 종교에 눈이 멀게 된 이전부터 이 가족은 서서히 곪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가장으로서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아내의 복귀를 도왔더라면, 그저 조건 없는 사랑을 원했던 딸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들어줬더라면. 궁극적으로는 아내와 딸을 자신의 극본 속 꼭두각시에서 해방시켜주었다면 이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두펑위는 게임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부성애를 사이비 종교에 이용당한 비운의 가장이 아니다. 그는 그 스스로가 가정 파괴의 주범이었다.

 

게임이 주는 진정한 공포는

대만과 한국은 같은 동아시아권에 속해있는 만큼 유사한 생활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게임에서 등장하는 낡고 복고적인 집안 인테리어와 십이지신 달력, 공교육 체제와 돌잡이 문화 등 한국 게이머들에게 있어 친숙한 요소들이 등장한다. 더 나아가 가부장적인 가족 체계 아래에서 고정된 젠더 롤을 답습 하는 남녀, 어른들의 자아실현을 대신해 주기 위해 그들의 소유물로서 혹사당하는 아이의 모습까지. 게임 속은 1980년대의 대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2020년 한국 사회와 대비해봐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인류의 유구한 역사 흐름 속에서 공고화된 가부장적 문화와 왜곡된 입신양명 신화는 이 땅의 수많은 궁리팡들과 두메이신들을 낳았다. 〈환원: Devotion〉이 선사하는 진정한 공포는 기괴한 오브제들과 연출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 게임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인 사이비 종교의 위험성도 아니다. 아내와 자녀를 본인의 소유물,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보는 무능한 가장, 두펑위. 그리고 이러한 그가 비극적인 결말로 자멸해도 여전히 동정받는 존재로 남아있을 수 있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아직 현실에서 건재하다는 점이 가장 큰 공포라 할 수 있다.

 

1) 〈환원: Devotion〉은 중국과의 정치적 마찰이 불거지며 steam에서는 판매 중단 상태. 현재는 자체 판매 사이트에서만 구매해 플레이해볼 수 있다.

2) 인게임(ingame) : 게임 내의(상황)’ 즉 ‘게임 플레이 도중의(상황)’

 

글. 무지막지(mujimakji219@gmail.com)

특성이미지. ⓒ고함20, 게임메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