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로부터 7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외쳐야만 하는 구호들이 있다. 7년의 세월 동안 유가족과 시민들이 소리쳐온 구호들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못한 약속들은 지금도 산재해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구호는 사회의 변화를 가져왔고, 변하지 않을 기억들과 지켜야 할 약속들을 만들어냈다.

고함20은 [세월의 기억, 기억의 세월]을 통해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을 기록해본다. 그것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일 수도, 기억이나 말이 될 수도 있고,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남겨야 할지 고민하는 마음으로 기획을 잇는다.

 

세월호 6주기 추모 게시물 / 200416  그날 이후로 누군가의 몫까지 더 치열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직도 그날이 생생해서, 그 기억이 흐릿해지는 순간이 오기는 할까 싶기도 하다. 기억함으로 늘 함께 한다는 말 뿐이라 늘 무거운 짐 하나를 지고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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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5주기 추모 게시물 / 190416  돌아온 봄 앞에서 나는 부끄럼 없는 어른으로 자라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본다.  많은 사람들의 연대 앞에 선 사회는 생각보다 거대하지 않고, 우리는 무력하지 않다.  무력하지 않을 수 있었던 우리와 무능하지 않을 수 있었던 국가에게 말한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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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4주기 추모 게시물 / 180416  기억함으로 항상 함께하고 있음을. #remember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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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3주기 추모게시물 / 170416 노란 리본으로 빼곡하게 채워낸 우리의 슬픔과 분노와 반성을 잊어서는 안된다.  남아있는 자들의 몫은 변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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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주기 추모게시물 /  160416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수백명의 희생자들이 나왔다. 특히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희생자의 대부분이었다는 점이 우리 사회를 더욱 아프게 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어른들은 말했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밝혀진 진실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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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주기 추모게시물 / 150416 어른들은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한다. 고3은 공부만 해도 모자르다고. 그 말을 듣고 나서, 무고한 죽음을 우리만 슬퍼하고 기억하는 시간이 올까봐 무서워졌다. 어른들이 더 이상 우리를 부끄럽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사회의 외면 앞에서 더 거센 바람을 맞고 있을 유가족들이 더이상 추워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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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0416 , 그때의 우리를 기억하나요?

 

나이테처럼 사회는 아픔을 새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어디를 향하는가는 함부로 재단할 수 없지만, 아무튼 나아가고 있다. 나는 2014년 봄, 수학여행을 계획하던 97년생, 세월호 세대다.

 

2014년 4월 16일. 실시간으로 쏟아져나오던 뉴스 특보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물 위에 떠 있던 세월호는 서서히 기울어 수직으로 침몰했다. 충분히 탑승자들을 구할 수 있었던 시간.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길에 일어난 처참한 참사는 그렇게 보도되었다. 탑승자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오보에 가슴을 쓸어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자의 대부분이 배에 갇혀 있다는 정정 보도에 다시 손톱 끝을 물어뜯으며 티비 앞을 떠나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열여덟이었다. 

정확한 정보 하나 없는 특보를 보며 갑갑함을 느꼈고, 배가 기울어 침몰하고 있는 골든타임에 탑승자들을 방치한 무력한 사회에 가슴을 쳤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의 노란 쪽배와 함께 광역버스에 올랐다. 책임지지 않는 어른만 가득한 무능한 정부에 분노하며 나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서울 시청과 광화문으로 향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분노와 설움과 위로가 실린 노란 쪽배, 거센 바람 앞에서 서로 손을 마주 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였다.

 

왼쪽-용인흥덕고 세월호 추모행사 사진 / 오른쪽 - 2015년 서울시청 세월호 노란쪽배 추모행사 사진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용인흥덕고등학교 5기 학생회 (순서대로)

 

세월호 사고 유가족과 희생자들을 향해 쏟아지던 셔터 소리와 악의에 찬 키보드 타자음을 기억한다. 언론은 자극적인 가십에 매달렸다. 익명에 뒤에 숨은 이들은 사회의 아픔을 저들의 유희 거리로 삼았다. 어른들은 우리를 보호하지 못했다. 그저 몇몇 어른들의 사과를 위로 삼아 우리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더 나은 사회와 옳은 미래를 위해서. 어쩌면 몇 해 뒤 탄핵정국에서 학생들이 단상 위에 올라 마이크를 잡는 용기를 보일 수 있었던 건, 그 봄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랬을 것이 틀림없다.  

 

세월호 추모 리본 사진
ⓒ고함20

 

돌아온 7번째 봄, 이제 추모의 노란 리본은 내 일상이 됐다. 필통에도 가방에도 SNS 계정 프로필에도 노란 리본이 달려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만이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만들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사회를 나아가게 하는 힘을 만든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나와 매일을 함께 하는 노란 리본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갖은 무례함을 마주한다. 지겹게 왜 이런 걸 계속 달고 다니냐며 리본을 낚아채 뜯는 사람과 대치하기도 하고, 혀를 차대며 매섭게 흘기는 눈총과 맞서기도 한다. 사회의 잘못으로 억울하게 떠난 친구들을 기억하는 일에 수많은 폭력이 닿는다. 잠깐의 놀람과 당혹스러움 끝에 서러움이 묻는다. 대체 어떻게 하면 이 희생이 단순한 사고로 잊힐 수 있나요. 그 기억이 어떻게 지겨울 수 있나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 규명 요구는 긴 시간 이어졌고, 사회의 아픔 앞에서 누군가는 불편함을드러낸다. 정치적 이유에서일까, 지켜내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죄책감이 만들어낸 방어기제일까. 그만하라고, 더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들은 정말 2014년, 그 봄을 잊은 걸까. 

무능한 정부와 무력한 분노를 경험한 우리는 절대 이 참사를 잊지 못할 것이다. 잊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동기가, 직장 동료가, 가족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학생들의 죽음은 결코 가까운 이들만의 슬픔이 아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 그들의 희생에 대한 책임은 무능하고 무력한 사회를 만들어낸 어른들에게 있다. 그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하지 않는 이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그 책임을 기꺼이 나눠 받겠노라고. 그렇게 꼭 안전하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겠노라고.

 

여전히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이맘때가 되면 내 마음 한가운데에는 노란 리본을 단 큰 고래가 헤엄쳐 다닌다. 반성하는 어른과 방관하는 어른 사이에서 무력한 분노를 느끼던 나는 세월호 세대라는 이름을 달고 이 사회를 구성하는 어른이 되었다. 청춘이라는 이름 앞에 졸업도, 취업도, 해내야 할 것투성이지만 한 번도 가슴 한 켠에 헤엄치는 고래를 잊은 적이 없다. 불안하고 무력한 나라를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정당한 분노와 안전하고 책임감 있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어른의 책임감을 가슴에 안고서 매해 봄을 맞이한다.

개나리를 대신해 팽목항을 수놓는 노란 리본과 노랗게 물들여지는 정보의 바다는 그런 우리의 다짐과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고래와 함께 헤엄치는 아이들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도, 혼자가 아니다.

 

나는 변함없이 2014년, 그해 봄을 기억합니다. 

당신도 그 봄을, 우리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글. 야망토끼(chateau_314@goham20.com)

특성이미지.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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