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로부터 7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외쳐야만 하는 구호들이 있다. 7년의 세월 동안 유가족과 시민들이 소리쳐온 구호들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못한 약속들은 지금도 산재해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구호는 사회의 변화를 가져왔고, 변하지 않을 기억들과 지켜야 할 약속들을 만들어냈다.

고함20은 [세월의 기억, 기억의 세월]을 통해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을 기록해본다. 그것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일 수도, 기억이나 말이 될 수도 있고,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남겨야 할지 고민하는 마음으로 기획을 잇는다.

 

4.16세월호참사 7주기, 기억을 담은 공간들에 다녀왔다. 안산 단원고 4.16기억교실, 4.16기억전시관, 4.16생명안전공원 부지, 서울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인천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그곳에는 7번의 4월 16일을 지나며 켜켜이 쌓여온 기억들이 있었다.

 

안산, 시간이 흘러 여전히

안산에 방문한 날, 갑작스러운 한파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청명하게 맑았다. 가을 같은 날씨에도 4월임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은 대로를 따라 걸린 세월호 추모 배너였다. “세월호참사 7주기,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힌 노란 배너들은, 이르게 져버린 봄꽃들을 대신해 노랗게 길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단원고 4.16기억교실로 향했다.

단원고 4.16기억교실은 현재 4.16민주시민교육원 내 별도 건물로 자리 잡고 있다. 원래 단원고등학교에 있었던 교실은 참사 다음 해인 2015년부터 존치를 두고 갈등이 일었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존치를 위해 투쟁했고, 교실은 별도의 공간에나마 자리를 잡게 됐다. 단원고에서 경기도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별관에서 본관으로 장소를 옮겨 다녔던 교실은 지난 12일 드디어 정착하여 ‘단원고 4.16기억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좌) 교실의 칠판 위에 하얀 분필로 빼곡히 글씨가 써져있다. (우) 책상들 위에 '생일축하해'라고 적힌 꽃이 놓여있다.
단원고 4.16기억교실 / ⓒ고함20

 

박물관 같은 인상의 1층 로비를 지나, 노란 난간을 잡고 계단을 오르면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복도와 교무실, 심지어는 교실 내 각종 물품들까지 온전히 보존돼 있었다. 참사 다음 해 단원고에 방문했던 기억들이 몰려왔다.

2학년 10반부터 하나하나 교실에 들어갔다. 교실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칠판이다. 저마다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칠판은 초록색 바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얬다. 교실의 책상 위, 희생된 학생들의 자리에는 사진과 함께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의 편지들이 놓여있다. 304명이라는 숫자에 가려진 개별의 이름과 이야기들이 다가왔다.

기억교실은 2014년의 순간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지만, 그해만을 박제해 둔 공간은 아니었다. 빈 책걸상 위에는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했고, 1년이 지났다는 메시지부터 3년이 지났다는 메시지까지 해가 지나도 여전히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다음으로 향한 4.16기억전시관은 주민들의 거주지 내에 위치해 있다. 가는 길에는 빌라들이 줄지어 있고, 근처 슈퍼 앞에는 할머니들께서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단원고 근처 상가건물 안, 교회와 PC방을 지나 올라가다 보면, 4.16기억전시관에 도착하게 된다. ‘전시관’이 있을 법하지 않은 공간에 4.16기억전시관이 자리 잡은 이유는, 이곳이 단원고 학생들의 생활공간이었기 때문이다. 4.16기억전시관 아래 위치한 PC방은 실제로 단원고 학생들이 많이 이용했던 곳이다.

현재 4.16기억전시관은 단원고 4.16기억교실이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한 전시 ‘개화(開化)’를 진행 중이다. 푸른 벽 위에는 교실존치운동의 역사가 사진으로 정리되어 있고, 천장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함께 사진 등의 물품이 담긴 조명들이 빛났다.

 

(좌) 한자로 '개화'라고 적혀있는 전시관 입구. (우) 공원 부지 위에 노란 꽃들이 리본모양으로 심겨있다.
(좌) 4.16기억전시관, (우) 4.16생명안전공원 부지 / ⓒ고함20

 

기억전시관을 나와 걷다 보면 드넓은 저수지가 펼쳐진 화랑대공원이 보인다. 평일 낮임에도 저수지 주변을 걷는 시민들이 많았다. 산책로에서 살짝 벗어나 얕은 둔덕을 올라가자 넓은 부지가 나타났다.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였다.

4.16생명안전공원 선포식을 앞두고 노란 꽃을 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노란 리본 모양으로 심긴 꽃들은 황량한 부지의 미래를 상상하게 했다. 임시로 세운 노란 가벽 뒤로, 일상 속 기억의 공간으로 자리 잡을 공원이 생생히 그려졌다.

 

“제가 고등학교를 안산으로 갔어요. 한 다리 건너면 사실 다 아는 사람들이고… 결국 누구나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었고, ‘세월호’는 모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난 뒤에도 ‘김용균 씨 사건’ 같은 산업재해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건, 또 다른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윤과 성장만을 추구하는 사회로부터 우리가 완전히 벗어나서, 안전과 생명을 가장 최우선시하는 새로운 사회를 위해 우리가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세월’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광화문 광장 앞 횡단보도에서 추모 피케팅을 하던 대학생 만결 (23, 가명)

 

서울, 함께 기다림

4.16세월호참사 7주기 당일의 날씨는 흐렸다. 하나 같이 날씨가 좋지 않았던 4월 16일들을 생각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공간으로 향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2014년부터 자리를 지켰던 세월호 천막은 5년 동안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의 공간이었고, 시민들의 추모 공간이었다. 지난 2019년 세월호 유족들과 시의 협의로 천막이 철거되고,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공간이 들어섰다. ‘기억과 빛’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공간은 2020년까지 시민들과 함께했다. 코로나19와 광화문 광장 공사로 운영이 중단된 이후, 7주기를 맞이하여 4월 6일부터 18일까지 임시개관했다.

 

(좌) 기억공간 측면 벽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있고, 아래 꽃들이 놓여있다. (우) 벽위에 글씨. 세월호 이후는 달라져야 합니다.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 ⓒ고함20

 

공사가 한창인 광화문 광장 주변은 ‘안전제일’이라고 적힌 파란 펜스들이 가득했다. 좁다랗게 난 통로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 벽면에 길게 적혀있는 희생자들의 이름이다. 옆에 붙은 추모의 리본은 강한 바람에 쉬지 않고 흔들렸다.

코로나19 탓에 기억공간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은 정해져 있었다. 퇴근 시간 사람들이 몰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나, 사람들은 바닥에 그어진 노란 선 위에 기꺼이 줄을 섰다.

유아차를 미는 부부, 아이의 손을 잡은 여성, 노란 리본을 함께 단 연인, 생각에 잠긴 수많은 사람들. 노란 마스크를 쓴 아이도 킥보드를 밀며 줄 위에 섰다. 해가 지고 추워지는 날씨에도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자리를 지켰다. 사람들은 자리가 날 때마다 노란 선을 따라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갔다.

 

기억공간 안쪽의 하얀 벽 위에는 희생자들의 사진이 꽃과 함께 액자에 담겨 있다. 그 공간을 나오면 세월호참사의 역사가 벽에 적혀 있고,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의자에 앉아 영상을 보던 한 시민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스크린 속 끊임없이 흐르는 기억들 앞에 잠시 서 있다 밖으로 향했다.

저녁이 되어 해가 지면서 주변은 어두워졌지만, 기억공간에서 나오는 빛은 은은하고도 강했다. 8시가 가까워진 시간에도 사람들은 노란 빛을 받으며 줄을 섰다. 기억공간을 둘러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저마다의 감정으로 복잡해져 있었다.

 

“제가 나이가 그분들과 동갑입니다. 거기에서 느꼈던 어떤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사실 슬픔이나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컸다면, 지금은 ‘정말로 무언가 바뀌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어요.”

“(4.16세월호참사는) 계속 마음 한구석에 남는 것 같아요. 뭘 하든요. 제가 나중에 무언가를 할 때 “그거를 하는 이유가 뭐예요?”라고 누군가가 물어보면, 항상 그 이유 여러 가지 중에 하나는 꼭 들어갈 것 같아요, 이 일이.”

–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공간에 방문한 대학생 박다울(25, 가명)

 

인천, 고요한 추모 속에서

4월 16일이 하루 지난 다음 날, 날씨는 거짓말같이 맑아졌다. 큰 행사들이 많았던 당일에 비해 조용해진 다음 날이었지만,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을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조용히 이어졌다.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은 2016년 인천 부평의 인천가족공원에서 문을 열었다. 운영 초기 정부의 예산 지원에 차질이 생기면서 잠시 문을 닫기도 했으나, 2020년[1]부터는 4.16 재단이 운영을 맡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곳에는 일반인 희생자 42명과 구조작업 중 사망한 민간 잠수사 2명이 안치되어 있다.

인천가족공원 안쪽에 위치한 추모관은 입구로부터 걸어서 15분 거리다. 추모관이 가까워질수록 길가를 빼곡하게 메운 노란색은 이곳이 기억의 공간임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외벽에는 노란 리본 그림과 함께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문구가 쓰여있고, 옆에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탑이 우뚝 솟았다.

 

(좌)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안치단 입구. 안에는 화환들이 보인다. (좌) 세월호 모형 아래 노란 리본들.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 ⓒ고함20

 

추모관 한쪽은 일반인 희생자 44명의 유해나 유품, 위패가 안치된 안치단이다. 묵념의 시간을 가진 후,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전거 여행 중이었던, 초등학교 동문이었던, 배에서 학생들의 구조에 앞장섰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와닿았다.

유해가 담긴 봉안함을 마주하는 것은 그동안의 기억공간에서 느낄 수 없었던 직접적이고도 감정적인 경험이었다. 유해를 찾지 못한 실종자 중 일부의 유골함에는 세월호에서 발견한 유품과 흙이 화장되어 있다고 했다.

 

안치단 옆 별도의 공간에는 일반인 희생자들의 유품과 함께 세월호참사와 관련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월호 축소 모형이 노란 리본들과 함께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당시 세월호의 CCTV 영상이 계속해서 재생됐다. 추모관에 방문하는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영상 앞에서 한참을 서 있기도 한다고 했다.

추모관에는 방문객들이 적어놓은 기억과 연대의 메시지들을 걸어놓은 작은 나무가 있다. 방문 당일에도 추모관에는 일반인 관람객이 간간이 오갔고,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견학을 오기도 했다. 일산에서 온 박시연(15) 씨는 “잘 알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와서 많은 걸 알아가는 것 같다”며 “계속 이날을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견학이 끝나고 학생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노란 리본 메시지를 써 내려갔다.

 

기억공간을 나오며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동행한 기자는 자신이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기억하고 있는 줄 알았지만, 물리적인 공간으로 다가오는 감정들은 더 깊은 기억을 끄집어냈다.

세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생각들은 조금씩 달랐다. 일반인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인천의 안치단은 고요한 추모의 감정을, 광화문 광장 위 시민들과의 기다림은 연대의 감각을 느끼게 했다. 과거를 담아낸 안산의 교실은 그때로부터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코로나19의 시대, 기억공간을 방문하는 일조차 쉽지는 않았다. 체온을 재고, 명부를 작성했으며, 추운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것은 물리적 공간이 주는 단단한 감각 때문이었다.

광화문에서 만난 고등학생 이서연(19) 씨는 기억공간에 처음 와봤다고 했다. “사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연도에 더 생각이 났고, 유난히 오고 싶었다”던 그는 “둘러보는 내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구나’ 생각”했다. 기억공간을 나서며 “꼭 기억해야 할 것 같아요. 꼭 알아야 하고, 절대 잊으면 안 될 것 같아요”하고 다짐하던 단단한 얼굴은 기억공간의 노란 빛을 받아 밝게 빛났다.

 

촬영 및 편집 : 로움 / ⓒ고함20

 

[1] 기존 기사에 ‘2018년’으로 오기되어 있던 것을 ‘2020년’으로 정정합니다. (2021.04.27.)

 

글. 나로나옴(naronaom@gmail.com)

특성이미지. ⓒ고함20

기획[세월의 기억, 기억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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