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로부터 7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외쳐야만 하는 구호들이 있다. 7년의 세월 동안 유가족과 시민들이 소리쳐온 구호들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못한 약속들은 지금도 산재해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구호는 사회의 변화를 가져왔고, 변하지 않을 기억들과 지켜야 할 약속들을 만들어냈다.

고함20은 [세월의 기억, 기억의 세월]을 통해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을 기록해본다. 그것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일 수도, 기억이나 말이 될 수도 있고,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남겨야 할지 고민하는 마음으로 기획을 잇는다.

 

어떤 일들은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이야기가 될 수 있다. 2014년 열 여덟살이었던, 안산 인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4월 16일이 되기 몇 주 전 청해진해운의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나는 오랫동안 그 당시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말할 준비가 되었다.

그 무렵의 모든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지만, 4월 16일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필름 끊긴 듯 불완전하다. 뉴스를 듣고 웅성거리던 아이들. “그런데 전원 구조됐대.” 한참 뒤, “전원 구조 오보라던데?”, “어떡해, 거기에 내 친구 있어…” 한 명이 울기 시작하더니 이내 교실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구조대가 갔잖아, 다 무사하겠지.” 하며 서로를 달래던 말들.

스스로 빠져나온 사람들 외엔 아무도 구조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말을 잃었다. 해가 지나 열 아홉이 되고, 수능을 치고 대학생이 된 뒤에도 사람들과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당시를 함께 겪었던 친구와도, 그 이후로 계속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과도. 하지만 늘 마음 한켠에 질문들을 안고 있었다. 나는, 우리는 그 세월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그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은 걸까?

 

영주와의 대화: 돌아오리라고 믿는 마음

영주는 나의 고교 동창으로 2014년 당시 같은 반이었다. 사건 직후 영주는 친구가 돌아오길 바라며 페이스북에 헤르타 뮐러의 소설 〈숨그네〉의 문장을 인용해 글을 썼다. 그 글은 당시에도, 그 이후에도 세월호를 떠올릴 때마다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영주와 처음으로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총총: 너는 그날 기억나?

영주: 나 그날의 모든 타임 라인이 쫙 기억나. 우리 그때 EBS 라디오에서 영어 듣기 시험하는 날이었잖아. 그것도 나는 시험이라고 긴장을 되게 많이 했거든? 그래서 시험 보기 전에 화장실을 갔지. 그리고 화장실에서 애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 나는 스마트폰이 없었어서 궁금한데 직접 볼 수는 없으니 학교 끝나고 기숙사에 돌아가서 노트북실 컴퓨터로 기사를 찾아보려는데, 기숙사 담당쌤이 엄청 화내는 거야.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너는 공부를 해야지!’ 라면서. 그리고 기숙사 컴퓨터로 뉴스 보기를 금지시켰어.

총총: 너무 과했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근데 그런 생각도 든다. 그 쌤도 이거 애들이 알면 평정심을 유지 못한다는 걸 직감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그 날에 대한 기억이 되게 단편적으로만 있어. 애들이 울던 게 기억나. 그리고 네가 페이스북에 글 썼던 거. 거기 있던 네 친구가 돌아오길 바라면서 썼던 글이 아직도 생각나.

 

너는 돌아올거야.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 돌아왔으므로 나는 말할 수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고함20

 

영주: 맞아 근데, 음. 난 그 문장을 정말 정말 좋아했는데. 근데 이제는 옛날에 좋아하던 것과 같은 의미로 읽을 수 없게 됐어.

총총: 그런데 되게 역설적으로 나는, 매년 그 글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네가 썼던 글. 사람들이 대부분 못 돌아왔잖아. 그런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돌아오지 못했더라도 돌아올 거라고 믿는 그 마음이 위로가 됐어. 그 글이 나한테 왜 위로가 되었냐면, 그때 그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돌아오지는 못했지. 하지만 거기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유가족, 주변인들. 사실 그분들도 거기에서 돌아와야 하는 사람들이잖아.

그래서 난 항상 그분들을 생각하면 그 글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 그들도 언젠간 돌아오게 되겠지. 돌아오게 만들어야지.

영주: 〈숨그네〉는 2차대전 후에 소련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루마니아 소년 이야기야. 그 애가 끌려갈 때 할머니가 저 말을 하거든. 그런데 내가 그 소설을 좋아했던 이유는 ‘너는 돌아올거야’ 라는 말을 가져간 소년이 결국 돌아왔는데, 돌아온 뒤의 삶이 그 전과 후로 극명하게 나뉘어 있어. ‘돌아왔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니고 돌아온 후에도 그 기억에서 못 벗어나.

책에서 정확히 뭐라고 하냐면 ‘마치 그것이 필요하다는 듯이’ 계속 끊임없이 자기 안의 생각으로, 그 시점으로, 수용소 생활 시설로 돌아가. 그 사건이 한번 인생에 일어난 뒤에는 그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야. 그래서 나는 〈숨그네〉를 수용소에 잡혀갔다 온 사람 이야기로만 읽는 게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읽게 돼. 근데 너무 슬퍼서 이걸 읽을 수 있냔 말이지. 못 돌아온 사람도 있는데, 돌아왔어도 그 이전과 후의 삶이 전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니.

영주: 그리고 그때 네가 노란 리본 뱃지 공동구매 추진했었잖아, 근데 내가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반응을 하지 않았었어.

총총: 나도 기억해. 너도 거기(세월호)에 친구 있었잖아, 같이 학원 다니던 친구. 그런 방식으로 기억하는 게 너한테는 아직까지 부담스러운 일이었던 거야.

영주: 그걸 계속 달고 다니면서 생각해야 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도 있었고, 나는 당사자가 아니잖아. ‘근데 그렇게까지 슬퍼할 자격이 있나?’를 고민했어. 너무 슬펐지. 그치만 내가 슬퍼하면 안되고 뭔가 직접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총총: 근데 나도 그맘때 그런 생각 되게 많이 했었거든? 내가 거기 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시기에 그 주변부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동갑내기일 뿐인데. 내가 이걸 이렇게까지 슬퍼해도 되나? 하면서 ‘슬퍼할 자격’에 대한 생각을 엄청 했단 말이야. 근데 우리가 벌써 7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그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눈물이 난다는 건, 우리도 그 일에 상처받았다는 거지. (나는 이 얘기를 하기 이전부터 이미 울고 있었다)

영주: 나도 이제야 울지 않으면서 말할 수 있어. 하지만 사실 어젯밤에 울면서 미리 말할 걸 다 준비해 왔지.

영주와 나는 추모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기 위해 직접 행동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로 인해 상처받았다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슬펐다는 것을 숨겨 왔다. 까마득히 어렸던 우리가 세월호를 보며 무거운 책임을 느꼈던 건 당시에도, 그 이후로도 어른들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7년의 시간이 흘러 열 여덟이던 우리는 스물 다섯이 되었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는 동안 한 번도 그 때의 감정들을 잊은 적은 없다. 마주앉아 처음으로 그 때의 우리를 돌아보고, 여태껏 마음에 묻어둔 말을 꺼내보는 일은 그 자체로 큰 위로였다.

2017년에 나는 세월호에 대해 쓴 김영하의 문장 하나를 필사해 오래 가지고 다녔다. 그 말을 다시금 돌아본다.

“깊은 상실감 속에서도 애써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 많을 것이다. 팩트 따윈 모르겠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그들이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

 

* 이 인터뷰는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당시에 어른이었고, 현재까지 투쟁하고 있는 인터뷰이와 나눈 대화가 계속됩니다.

 

글. 총총(ech752@naver.com)

특성이미지.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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