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만한 캐리어를 질질 끌고 서울 땅을 밟았던 그 날. 서울라이프의 환상에 한껏 들뜬 마음도 잠시, 모든 게 낯설기만 한 서울의 모습에 한껏 움츠러들었다. 복잡한 지하철, 어디를 가도 쏟아지는 인파, 치솟는 물가와 집값, 혼자 사는 방에 감도는 외로운 공기까지. 홀로 상경한 서울에는 쉬운 게 하나 없었다. 오늘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지옥철 속에 잔뜩 구겨진 채로 고향을 떠올린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밖에 비치는 서울의 야경은 눈물 나도록 찬란하다. 나, 서울과 친해질 수 있을까?

 

서울살이 n년차, 여전히 서울과 친해지고 있는 지방러들이 서울살이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눠보았다.

 

김개똥: 5년째 서울에 적응하고 있는 충청도인. “서울사람들은 다들 왜 이리 급한겨?” 김타민 :어느덧 서울살이 3년차 부산출신 지방러. 식물도, 반려동물도 없지만 우당탕탕 소란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로움: 서울살이 6년차 강원도 출신 산골소녀. 나에겐 너무나 어려운 서울. 잘 지내다가도 때때로 바다가 보고싶어요.
ⓒ고함20

 

처음 상경했을 때 느낀 ‘문화충격’

김개똥: 처음에는 서울의 버스 시스템이 너무 어려웠어요. 어디서 타야 하는지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아무리 봐도 잘 알 수 없어서 한동안 지하철만 타고 다녔었어요.

김타민: 처음에 서울에 왔을 때는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봤던 곳에 내가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어딜 가나 사람이 넘치고 건물은 또 어찌나 빽빽한지. 무엇보다 대각선 횡단보도를 바쁘게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진짜 서울에 있구나’하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로움: 교통수단이라곤 하루에 버스 네 대가 전부이던 깡촌에서 상경한 저에겐 지하철의 존재 자체가 문화충격이었어요. 시끄럽고 복잡하지만, 그 안에 나름의 체계와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지하철은 저에게 서울 그 자체였습니다.

 

서울살이의 장단점

로움: 서울의 가장 큰 장점은 문화적 접근성, 문화(예술) 향유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살던 지역은 영화관은 하나고,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저에게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어요. 8관 중 6관이 대형 상업 영화고, 나머지는 오전에 하는 아동영화 같은 식이에요. 독립영화나 비주류영화는 거의 못 본다고 봐야죠.

김타민: 제가 생각하는 서울의 장점은 ‘다양성’인 것 같아요. 멋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조금은 촌스러운 마음으로 저마다의 다른 ‘힙함’을 구경하고 따라 해보곤 해요. 서울의 단점은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은 것? 하루는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는데,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누군가의 겨드랑이 밑에 있었어요. 그 순간 ‘나는 서울에서는 못살 것 같다’고 느꼈어요.

 

서울에서의 주거

김타민: 저는 3년간 서울에 살면서 이사를 5~6번 정도 했어요. 길게 지내도 6개월이었어요. 새로운 집에 가도 언제까지고 여기서 지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집다운 집처럼 해놓고 지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물건을 살 때도 이사할 때 다 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지내면서 불편한 게 있어도 그냥 참게 되더라고요. 자취할 때 순간순간 부담스러운 월세를 떠올렸고 언제쯤 안정적인 주거지를 구할 수 있을지 암울해 했던 기억이 나요.

김개똥: 보통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올라올 때 선택하는 주거 형태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기숙사, 고시원, 셰어하우스, 자취 정도가 있을까요? 저는 이 모든 것을 다 경험해봤는데, 저에게 딱 맞는 건 혼자 자취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이번에 LH 청년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투룸으로 이사하게 되었어요. 집세 부담이 조금만 덜어져도 삶의 질이 수직 향상하잖아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주거 지원정책을 잘 모르는 계시는 것 같아서 요즘 지방러들에게 여기저기 전파 중입니다.

 

서울살이 n년차, 나에게 서울이란?

김타민: 서울은 저한테 애증의 공간이에요. ‘나는 정말이지 서울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자주 생각하면서도 어느덧 3년을 서울에서 살았어요. 사람은 많지만 어떤 날은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 가족들과는 멀리 있다는 게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요. 그럴 때 두렵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나는 왜 서울에 와서 지금처럼 혼자인 거지’ 생각해요. 그런 날은 밥 한 끼를 잘 챙겨 먹으면서 허전한 자리를 채우곤 합니다. 서울에 와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인데요. 밥심이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대충 해결한 한 끼가 그날 하루를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지, 내가 나를 돌본다는 느낌이 얼마나 중요한지 크게 느끼고 있어요.

김개똥: 서울살이 지방러라면 다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5년쯤 되니까 점점 미움보다는 애정이 커지는 듯하네요. 제가 농담으로 항상 하는 말이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뚝섬유원지이다.’예요. 집 주변에 뚝섬유원지가 있어서 정말 자주 가요. 실연당했을 때나 삶이 막막할 때 혼자 가서 하염없이 울기도 하고, 친구랑 캔맥주 들고 가서 밤새 수다 떨기도 하고. 그렇게 뚝섬유원지를 집처럼 드나든 5년 동안 정말 많은 내면의 성장을 일구어낸 것 같아요. 서울에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서울살이가 각박하고 힘들 때도 많지만 이제는 성장통으로 받아들이려고요.

로움: 우리가 무의식중에 “서울에 올라간다.”, “본가로 내려간다”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물론 지리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저는 결국 이런 말 안에 우리가 서울을 바라보는 관점이 담기지 않았나 생각해요. 동경의 대상, 늘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 하지만 막상 와보면? 그래도 할 만은 한 것 같아요.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말 그대로 애증인 거죠. 지치고 힘들다가도 지하철에서 한강 딱- 보는 순간엔 “아이게 서울이지!”하는. 조금 어렵지만 친해지고 싶은 상사 같아요, 서울은.

 

광화문 계단 위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면

사람들 수만큼의 우주가

떠다니고 있네 이 작은 도시에

서울살이는 조금은 즐거워서

가끔의 작은 행복에 시름을 잊지만

서울살이는 결국엔 어려워서

계속 이렇게 울다가 웃겠지

오지은, “서울살이는” 가사 中

 

누군가의 꿈이자 낭만, 또 기회였을 서울. 넓고 넓은 서울이지만 내 자리를 찾기란 무척 어렵고, 때로는 밀려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서울을 향한 마음은 어쩐지 짝사랑 같다. 붙잡을수록 아득하고 가까워졌다 싶으면 저만치 멀어진다. 그 속에서 애쓰며 고된 하루를 보낸, ‘울고 웃으며 작은 행복에 시름을 잊었을’ 모든 지방러들을 응원한다. 당신의 자리가 있는 서울이 되길, 서울과 좀 더 친해질 수 있길 바라!

 

글. 김개똥(go.gaeddong@gmail.com), 김타민(thanku4u1235@naver.com), 로움(goham.roum@gmail.com)

특성이미지. ⓒ고함20

 

* 이 글은 청년과 신혼부부의 커뮤니티 공간, 청신호 명동의 지원을 통해 고함이 기획 및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