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로부터 7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외쳐야만 하는 구호들이 있다. 7년의 세월 동안 유가족과 시민들이 소리쳐온 구호들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못한 약속들은 지금도 산재해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구호는 사회의 변화를 가져왔고, 변하지 않을 기억들과 지켜야 할 약속들을 만들어냈다.

고함20은 [세월의 기억, 기억의 세월]을 통해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을 기록해본다. 그것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일 수도, 기억이나 말이 될 수도 있고,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남겨야 할지 고민하는 마음으로 기획을 잇는다.

 

꽃다지와의 대화: “내가 잊지 않는 것은 유가족 분들 때문이에요. 그분들은 평생 포기하지 않으실 테니까.”

꽃다지는 마포구의 마을공동체 성미산마을에 살고 있는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의 활동가다. 사건 당시 교사였던 그는 꾸준히 세월호 관련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 그와 함께 당시에 대한 기억은 어떤지, 여태까지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이야기 중인 꽃다지의 모습
ⓒ 고함20

 

총총: 14년 4월 16일에 뭐 하고 계셨는지 혹시 기억나세요?

꽃다지: 그때는 성미산학교 교사였으니까 학교에 있었어요. 침몰 당시의 보도는 직접 보지 못했고 소식으로 전해 들었는데, 저녁에 집에 간 뒤 밤새 뉴스를 보느라 거의 잠을 못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배가 거의 다 잠겼고 대부분이 구조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믿을 수가 없었죠. ‘왜 못 구하지? 왜?‘ 하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총총: 그때 교사로 일하고 계셨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그 일이 좀 더 직접적으로 와닿았을 것 같아요.

꽃다지: 그렇죠. 결국 그 아이들이 그렇게 됐던 건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잖아요, 어른들에겐 그 말이 제일 가슴 아팠어요. 제가 19년도까지 교사 생활을 했는데, 그 일 이후로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나 바라는 것이 많이 달라졌죠. 좀 예의없어 보일지라도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아이가 되길 바랐어요.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

총총: 제가 꽃다지님께 가장 궁금했던 것이, 활동을 하다 보면 지치는 순간들이 많잖아요. 저는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만 해도 바뀌면 진상 규명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그걸 해나갔던 것 같은데, 이후에도 세월호 문제가 계속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들을 보면서 좌절한 경험이 있어요. 어떤 원동력으로 계속 이렇게 활동하실 수 있나요?

꽃다지: 저는 성미산마을이라는 마을 공동체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활동들을 하게 됐죠. 계속 곁에 함께하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처음에 세월호가 굉장히 큰 슬픔이었을 때도 서로 위로하고 챙겨줬었고요. 최근에 마을 극장에서 〈당신의 사월〉 상영회를 했었거든요. 근데 거기서 사회를 본 성미산학교 졸업반 친구가 그런 말을 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꾸준히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활동을 하고 잊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도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자기도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이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어요.

총총: 잊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이유가 이런 것이겠어요.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점점 이 일에 대해서 무뎌지는 것 같아요. ‘지겹다’는 말 정말 자주 보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상처가 돼요.

꽃다지: 저에게 개인적으로 상처가 되었던 말이, 예전에 진상규명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망원역에서 했었는데 유가족분들이 함께하셨어요. 그때 지나가던 중년 남성이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알아서 해줄 거다. 작작 해라.’부터 시작해서 온갖 소리를 다 했어요. 유가족분이 들으시다가 ‘제가 유가족인데, 정권이 바뀐 후에도 해결된 게 없다’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자식 팔아서 보상받으려고 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싸우려고 하였으나 유가족분이 말리셔서 안 싸웠는데, 그 분이 나중에 골목을 돌아 들어가서 한참 울고 계시더라고요.

 

세월호가 드러낸 한국사회

총총: 저도 그맘때쯤 온라인상에서 세월호에 대한 혐오, 비하발언들을 접하면서 그런 것들의 존재가 처음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걸 봤었던 기억이 나요. 세월호가 드러내는 우리 사회의 단면들. 어떤 민낯들이 있는 것 같아요.

꽃다지: 우리 사회가 생명이나 인권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났죠. 세월호의 생존자, 구조자 분들이나 유가족 분들 중 아직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시스템이 부재하다 보니 상담 같은 것들을 전부 민간에서 지원했고요. 간혹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분들이 안 좋은 선택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 너무 마음이 아프죠.

총총: 사람이 죽어야만 바뀌는 시스템이라는 게 참, 활동가로서 그런 소식이 가장 마음 아플 것 같아요. 

꽃다지: 활동을 하다 보면 그렇게 낙담하게 되는 날이 있죠. 그런 날은 내가 이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다가도, 내가 잊지 않는 것은 그냥 유가족들 때문인 것 같아요. 그분들이 평생 포기하지 않으실 거잖아요. 그러니 저도 잊지 않고 계속 활동하는 것이죠. 저는 그 일 이후로 한 번도 세월호 목걸이를 벗은 적이 없어요. 어느 곳에서도.

잊지 않겠다는 말이 아주 막연한 다짐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점점 과거를 잊어가는 듯하고, 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이 반복되고, 그 앞에서 번번이 좌절하던 기억들. 그러나 꽃다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잊지 않고 행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평생이 지나도 포기하지 않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그 지난한 세월을 빠져나와 일상으로 돌아오도록, 그리고 다시는 이런 슬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다. 다시 돌아온 사월 앞에서, 잊지 않겠다”는 말의 무게를 되새겨본다.

 

글. 총총(ech752@naver.com)

특성이미지.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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