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년 차로 접어든 코로나 사태. 바뀌어 버린 세상에 어느 정도 적응한 듯하지만 도저히 적응 안 되는 것이 있다. 질이 보장되지 않은 비대면 강의, 불안정한 강의 서버, 굳게 닫힌 학교 건물까지, 캠퍼스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꿋꿋이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등록금이 바로 그 것이다. 캠퍼스에 재난의 바람이 분 지도 벌써 3학기째, 대학생의 등록금 문제에는 아직 재난 문자도 마스크도 없다. 오늘도 등록금의 짐을 고스란히 진 채 말해본다.

“아… 오늘도 무사히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대학 등록금 반환 특집기획 [오늘도 무사히 학교에 다녀왔습니다]는 4부에 걸쳐 연재됩니다.

** 실제 사례를 각색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일일 확진자 여전히 몇백 명 단위로 웃돌고 사회는 침체하고 있지만,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는, 초여름을 맞이하기 직전의 하늘은 너무나 푸르고 화창하기만 하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굳게 잠긴 4평짜리 방 안쪽에서 홀로 마스크를 낀 채 책상에 앉아 무채색의 기운을 뿜어내는 이가 있었다. 이것은 같은 대면시험장에 확진자가 방문하게 되어 졸지에 자가격리를 하면서 다음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 B 씨의 이야기이다.

 

벌써 중천에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보곤 B 씨는 잠시 펜을 내려놓는다.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인가보다, 그는 냉동 도시락을 데우려 몸을 일으킨다. 내내 창문을 열어 두어 방안은 환기가 잘 되건만, 반대로 그의 마음에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응어리들이 순환이 안 된 채 쌓여가고 있다. 사실 그는 여러모로 싱숭생숭해진 마음에 오전 공부 시간을 날리게 되었다. 검사 결과가 슬슬 나올 때가 되었을 텐데, 언제쯤 나오려나. 애꿎은 잠금 화면만 계속해서 바라보지만 야속하게도 지금껏 문자 한 통도 오지 않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늦은 봄의 산들바람에도 그의 마음은 점차 싸늘해진다.

아,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더라……

그는 어느새 대학에 갓 입학한 작년의 3월을 떠올린다.

 

삐걱거리는 비대면 수업, 그리고 ‘에브리타임’에서 배운 학교생활

다급히 원격 수업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1학기는 언제나 잡음이 끼어있었다.  시간당 4-5만 원을 호가하는 대학교 강의. 입시 할 적 가입했던 사교육 인강 시스템보다 훨씬 비쌌지만 돌아가는 체계는 훨씬 효율이 떨어지고 불안정했다. 

 

B씨가 꿈꾸던 대학 생활의 모습과 실제 현실의 괴리감을 나타낸 일러스트이다.
꿈꾸던 대학 생활과 실제 ‘코시국’의 대학 생활의 모습 / ⓒ고함20 무지막지 그림

 

초유의 사태로 새내기들의 대학 생활을 도와줄 학생회 선배들마저 우왕좌왕하던 시기였다. 선배, 동기간 친목 자리는 턱없이 부족했고, 당장 같은 학과에 친한 사람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대학 사람들과 친목 다질 일도 없다는 것부터가 서러운데, 당장 학교에 다니면서 필요한 정보 수급도 어려워지니 학내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되어주었다. 지금껏 같은 학교 학생들을 자주 소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그만큼 유익한 정보도 얻어갔지만 매일 같이 소모적인 논쟁으로 가득 찬 게시판을 접할 때마다 머릿속엔 피로감만이 가득했다. 나는 그저 전공 책을 품에 안고 대학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캠퍼스를 누비는 정도의 사소한 일상을 원했을 뿐인데, 현실은 인터넷상에서 같은 학우들끼리 혐오 단어로 서로를 겨냥하는 광경이 학교생활의 전부라니. 그는 이러한 일상 속에서 전공 지식 대신 무기력만을 서서히 학습하게 된 것이었다.

 

줄어드는 알바, 가속화되는 생활고

얼떨결에 서울로 상경한 지도 일 년이 지나 어느 정도 적응이 되기도 했고 올해부터는 대면을 병행하는 수업도 생겼기에 서울에서 계속 지내게 되었다. 다만 서울살이를 강행하다 보니 경제적인 문제가 고질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등록금이나 월세까지는 부담해주셨지만, 생계비까지는 보탤 여력이 되지 않았다. 식비라도 아끼려 평일에는 비교적 저렴한 학교 식당을 방문할 수 있었지만, 코로나 여파로 주말에는 영업하지 않았다. 학교 근처 상권도 낙후된 편인지라 값비싼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었다.

공부하거나 휴식을 취할 시간을 쪼개며 여러 단기 알바를 전전하는 동안 침체한 경제 상황에서 장기 알바 자리는 턱없이 모자랐다. 월세라도 덜어내고 싶어 기숙사 입사 신청을 했으나 지원 인원보다 수용 인원을 대폭 축소해 결국 이번 학기에도 탈락하고 말았다. 쓸데없는 지출은 거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매달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 지출은 언제나 그의 숨통을 옥죄었다.

 

방역 대처마저도 미흡한 학교

온라인 강의는 비교적 안전하지만 수업의 질이 떨어지고, 대면 강의는 불안감을 유발한다. 편의시설 사용에도 크게 지장을 주고 전반적으로 학습권이 떨어진 데에 반해 등록금은 반환 없이 동결을 유지한다는 점이 이해할 수 없었다. B 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계속해서 행정실에 문의 전화를 드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비대면 인프라 구축과 방역으로도 상당한 비용을 쓰고 있어서 반환은 어렵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등록금 사용 명세를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학내 방역에 충실하지도 않았다. 학교는 강의실 건물에 출입할 때마다 비대면 문진표를 작성하게 하고, 입구마다 체온을 확인하는 기기를 설치하는 등 내심 여러 방역 대책을 세운 듯 보였다. 그러나 문진표를 작성하지 않고 몰래 출입을 하거나 허위로 문진표를 작성해도 이를 일일이 확인하고 제재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실상이다.

허울뿐인 방역 체계 아래에서 1년간 축적되어 온 방만함과 불감증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B 씨의 뒤통수를 찔렀다. 중간고사 대면시험에서 의심 증상을 보이던 학생 하나가 문진표를 허위로 작성하고 시험을 치렀는데, 그날 저녁 확진 판정이 받았단다. 시험 보는 내내 마스크를 착용하긴 했으나 당시 시험장은 제대로 통풍을 해두지 않았고 책상별 칸막이도 없었기에 B 씨는 음성이라고 확실히 통보받지 않은 이상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미개봉 중고 새내기

일명 코로나 학번으로 불리며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 번뿐인 새내기 생활을 그대로 날려버린 20학번끼리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스무 살은 이전보다 사회적인 반경이 넓어지며 더욱 심도 있는 사회화를 겪는 나이라 했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금, 대학 생활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회활동이 모니터 너머로만 진행되는 판국이다. 외적으로는 가속화된 생활고 문제, 내적으로는 ‘코로나 블루‘가 B씨와 수많은 스무 살을 옥죄어온다. 청년 빈곤 문제에 한 축을 차지하는 등록금 동결은 이들에게는 커다란 족쇄 중 하나다. 경제적인 부담이라도 덜고자 곳곳에서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건만, 학교는 상세한 명세내역 하나 없이 비대면 인프라 구축이라든지, 방역 비용이 상당하다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B씨와 같이 방역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생존권조차 위협받고 있는 실태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항의 한번을 못한 채 외친다. 이것만 먹고 빨리 공부해야 하는데.

지난 1년을 돌아보니 목이 메 제대로 음식이 넘어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검사 결과 문자는 오지 않는다.

 

글. 무지막지(mujimakji219@gmail.com)

특성이미지. ⓒ고함20 무지막지

기획. [오늘도 무사히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기획. 김개똥, 무지막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