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아 ‘2021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행사가 5월 22일 토요일,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서 진행됐다.

“우리가 여기 있다”를 슬로건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주최인 무지개행동을 비롯해 19개의 단체가 참여했다. 아이다호 공동행동 선포 기자회견으로 막을 연 행사는 오후 1시부터 ▲트랜스해방전선, ▲성소수자부모모임, ▲무지개예수, ▲다움, ▲녹색당이 릴레이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사랑은 증오를 이긴다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서 전시된 프라이드 플래그 전시의 모습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 Biphobia, IDAHOT)푸른 하늘 아래 전시된 프라이드 플래그의 모습 ⓒ고함20

 

“혐오 속에서도 존재하는 우리(트랜스젠더 플래그)”, “성관계보다 고양이가 좋다(무성애자 플래그)”, “서로를 돌보며 한발씩 성큼성큼(프라이드 플래그)”

전날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맑게 갠 신촌의 하늘에 각양각색의 만국기가 힘차게 펄럭였다. 사전에 신청받은 메시지를 담은 프라이드 플래그가 전시된 것. ‘2021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이 신촌에 플래그를 건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아이다호 공동행동은 작년 “성소수자는 당신의 곁에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담아 신촌역에 광고를 냈다. 광고판은 3일 만에 훼손됐다. 명백한 증오범죄였다. 그 이후 신촌역에는 성소수자 당사자들과 활동가, 대중이 모여 광고판을 지켰고, 증오의 흔적은 연대의 목소리가 담긴 포스트잇 메시지로 채워졌다. 그리고 1년 후, 신촌으로 돌아온 성소수자들은 하늘을 수놓는 메시지를 남겼다.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비바람보다 햇볕이라던가. 신촌을 지나는 시민들의 바쁜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도 혐오가 아닌 사랑이 담긴 깃발이었다. 행사에서 만난 시민 보라(가명)는 “지금 만국기가 휘날리고 있는데, 정말 다양한 사랑의 방법, 다양한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 있다. ‘나는 무성애자다’, ’나는 늘 여기에 있었다’ 이런 말들도 있다. 너무 공감하고 있다. 저와는 먼일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내 얘기구나’하는 생각이 든다”며 한참 동안 플래그를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가 여기 있다”

코로나19가 휩쓴 세상 속에서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은 민낯을 드러냈다.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자 언론은 성소수자의 공간을 코로나19의 확진지로 낙인찍었다. 올해 초 세 명의 트랜스젠더가 잇따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정치인들은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무지를 숨기지 않았다. 

이번 행사의 슬로건 “우리가 여기 있다”는 이런 사회에서도 살아남겠다는 절실한 심정을 담았다고 했다. 행사를 주관한 무지개행동은 선포 기자회견에서 “올해 초 성소수자 동료들을 먼저 떠나 보낸 슬픈 경험을 지나고, 서로의 곁을 살피며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드는 슬로건이 무엇일까 고민했다”며 “제1회 인천 퀴어문화 축제에서부터 지금까지 외쳐졌던 너무나도 당연하고 평범하지만 또 강력한, 이 사회의 필요한 메시지가 바로 ‘우리가 여기 있다’라고 생각한다”고 슬로건을 정한 이유를 밝혔다.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는 트랜스해방전선의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의 모습
발언하는 트랜스해방전선의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고함20

 

릴레이 기자회견의 포문을 연 트랜스해방전선의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변희수 하사의 재판 과정에 있어 국방부가 보인 혐오를 지적했다. 그는 “국방부 스스로 만든 심신장애 기준에 트랜스젠더가 장애라고 쓰여있으니 그것이 장애라고 주장한다”며 “재판이 아니라 말장난으로 고인을 능욕하고 있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해놓고 반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국방부의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변희수 하사가 재판에서 승리하여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마음을 모아줄 것을 촉구했다.


부모와 종교라는 미명

뻣뻣하게 굳어있던 한국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어왔다서울시교육청은 2기 학생인권종합계획(2021~2023)’을 통해 소수자 학생을 보호하고 인권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을 교사라고 소개한 노랑(가명)은 행사를 지켜보며 혐오와 차별에 기댄 사랑은 없다는 말이 마음에 와서 남는다라며 울컥한 심정을 내비쳤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은 무지개 문양의 마스크를 쓴 채로 발언문을 읽어내렸다. 발언자들은 역풍을 버텨내는 성소수자들에게 힘을 주듯 단단한 목소리였다.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마이크를 잡고 릴레이 기자회견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발언을 이어가는 모습 ⓒ고함20

 

성소수자부모모임의 대표, 하늘은 추기경의 언어가 교회의 신자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줄지이 담화문을 접한 신자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그리고 성소수자 신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추기경의 생명주일 담화문을 비판했다. 운영위원 지월은 가정의 달에 유난히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인 부모로 운을 뗐다. “정상 가정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부모자식 간을 지배 종속관계로 취급하고 아이들을 억압하는 그들에 의해 다른 생명, 윤리, 그리고 부모라는 표현은 곡해되었다고 발언했다.

참여자들은 부모와 종교라는 미명 하에 행해지고 있는 혐오에 대하여 거듭 강조하였다. 또한 혐오로 가득한 사회에 대한 해결책으로 차별금지법을 제시하며, 변화된 세상을 위한 법안 제정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차별의 시대를 넘어서는 방법, 차별금지법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많이 언급된 주제는 단연 ‘차별금지법’이었다. 릴레이 기자회견을 이어간 단체들은 입을 모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예정은 “차별금지법이 없는 세상은 (광고판 훼손 사건처럼) 물리적 표현으로 이어져야만 차별이라고 생각한다”며 일상 속의 차별을 호소할 데 없는 성소수자의 현실을 지적했다. 이어 “차별금지법은 무엇이 차별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법”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청년정의당의 강민진 대표는 정치권 내 성소수자를 향한 무지와 혐오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특히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국회가 지지부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동시에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 포괄적 차별금지법, 성별정정 특별법 제정, 그리고 성소수자 혐오 행사 공공기관 대관 금지 등을 실현할 때 비로소 정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치권의 변화를 촉구했다.

 

'차별금지법 제정하자! 10만 행동 국민동의청원' 홍보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시민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이번 행사에도 참여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이 5월 24일부터 시작됐다. 목표는 10만명이다.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이내에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돼 심사가 진행된다. 

트랜스해방전선의 활동가 빌리는 기자회견 중 “우리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서 아픈 것이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가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고 말했다. 현장에 함께했던 기자도 체감했다. 신촌 광장에 앉아 우리가 여기 있음을 목이 터져라 외칠 때, 서로의 존재와 지지를 확인하는 동안에는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성소수자를 아프게 만드는 것은 응답 없는 사회다. 성소수자는 이미 “우리가 여기 있다”고 목소리로, 몸짓으로, 존재 그 자체로 끊임없이 외쳐왔다. 이제는 사회가 성소수자가 아프지 않고,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응답을 내놓을 차례다. 

 

글. 구아바(guava.shim@gmail.com), 두두(dudoogoham@gmail.com)

특성이미지. ⓒ고함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