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겨털이 있어요?”

여성은 허락된 털이 머리카락과 눈썹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털 한 올 없이 매끈한 존재로 만들어졌다. 고대에서부터 이어진 털 없는 여성에 대한 선망 탓인지 여자도 겨털이 있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여자를 도자기 인형쯤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헛웃음이 나오다가, 정말 궁금해서 묻는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여성의 깨끗한 겨드랑이에 대한 통념과 거뭇한 털이 자라는 겨드랑이 사이에는 깊은 괴리가 있다. 그 괴리감에서 2차 성징을 겪는 여자 청소년들은 거뭇하게 변하는 몸에 초조함을 느낀다. 털이 난 소녀들에게 주어진 코드네임, 깨끗한 겨드랑이를 사수하라! 그 누구에게도 겨털을 들켜서는 안된다.

〈겨털소녀 김붕어〉의 주인공도 자신의 겨털이 너무나 싫었다. 그랬던 그가 윤기나는 겨털을 달고 등교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이 작품은 여성의 털에 대한 혐오를 ‘털털하게’ 털어버린다. N년째 삐죽하게 솟아오르는 털이 아직도 낯설다면, 이번에는 면도기를 내려놓고 〈겨털소녀 김붕어〉를 만나보는 게 어떨까. 당신은 겨털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소녀와 겨털의 첫만남

 

애니메이션 중 주인공 붕어가 가위를 들어 자신의 겨털을 자르려는 장면이다.
〈겨털소녀 김붕어〉 스틸컷 ⓒ퍼플레이

 

주인공 김붕어는 수영장 트랙을 힘차게 누비는 소녀이다. 어느 날, 겨드랑이가 간지러워 팔을 올렸다가 처음 마주한 겨털. 붕어는 이 침입자를 들킬까 봐 이전처럼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잔뜩 움츠리며 숨겼지만, 결국 좋아하는 수혁 앞에서 털이 빼꼼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토록 조심했건만 들키고 말다니! 열이 잔뜩 오른 붕어는 가위로 겨털을 잘라버리려고 했지만,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탓에 이조차도 쉽지 않다. 다가오는 가위를 발로 차 버리는 이 기묘한 겨털을 없앨 수도 가릴 수도 없게 되자 붕어는 자포자기하고 만다. 

 

부정당하는 여성의 털, ‘있는데 없습니다’

여성은 제모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2차 성징을 겪은 모두에게 나타나는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제모 방법도 점점 더 다양해진다. 발전하는 제모 도구 속에서 여성의 털은 더욱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털이 난 여성에게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며 이를 ‘굴욕’이라고 조롱한다. 한 여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는 공연 중 찍힌 겨털 사진으로 한바탕 논란을 겪었다. 털이 아닌 그림자라는 해명에도 그는 한국의 탕웨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는 영화 〈색, 계〉에서 겨털을 보여준 탕웨이에 빗댄 것이다. 여성의 털이 지워진 사회 속에서 여성 연예인은 ‘털 논란’에 발 벗고 해명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겨털을 마주한 소녀들은 털과 친해질 수 있을까? 여성은 털을 들키면 조롱받는 사회에서 자신의 털이 낯설고 이상할 수밖에 없다. ‘털’이 부정당하는 사회 속에서 여성 청소년들은 2차 성징을 자기혐오로 받아들이게 된다.

 

붕어의 겨털이 날개가 되었을 때

 

애니메이션 중 붕어가 긴 겨털을 펼쳐서 날아오르는 장면이다.
〈겨털소녀 김붕어〉 스틸컷 ⓒ퍼플레이

 

붕어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 갑자기 자라난 겨드랑이 털 때문에 풀죽은 붕어에게 엄마가 다가온다. 그리고 딸의 겨털을 단정하게 빗겨주고 에센스도 발라준다. 엉킨 겨털이 찰랑찰랑 윤기가 흐르고 붕어의 표정도 한결 괜찮아졌다. 망설이는 붕어를 수영장으로 이끌어 준 것은 그의 겨털이었다. 탈의실을 나선 붕어는 수혁이 수영장 물에 빠진 것을 보게 된다.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겨털을 모터 삼아 빠르게 수혁을 구해낸다. 수혁에게 붕어의 겨털은 천사의 날개 같아 보인다. 움츠린 겨드랑이 사이로 고개를 내밀던 털과는 다른 당당한 느낌이다.

 

털털한 여자들의 이야기

 

신체 곳곳에서 자라는 여성의 털을 유쾌하게 표현한 일러스트이다.
ⓒ인스타그램 color_leader

 

‘겨털’에 대한 유구한 역사를 떠올려보자. 하루아침에 팔을 들어보니 수북하게 자라난 것이 아니다. 겨드랑이에 슬쩍 올라온 털 하나, 그 녀석을 선두로 우후죽순으로 털이 나기 시작했다. 면도칼로 잘라내고 레이저로 지져도 자꾸만 솟아오르는 겨털과 없애지 못해 안달 내 모습이 마치 앙숙 같았다.

〈겨털소녀 김붕어〉는 붕어가 자기혐오를 극복함으로써 겨털을 수용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이러한 성장은 여성의 털을 부정하는 사회에 던지는 의미 있는 메시지이다. 여성의 제모는 기본매너라는 미명 하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는 자기혐오이기도 하다. 우리는 붕어의 이야기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다.

다가오는 여름, 당신과 겨털의 운명이 궁금해진다. 필자는 겨털과 친해져 볼 생각이다. 가차 없이 뽑힌 날들이 서러웠는지, 털들은 더욱더 억세게 나고 있다. 털 난 겨드랑이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붕어의 겨털처럼 날개가 될 수 있을까.

 

여성의 털에 대한 혐오를 털털하게 풀어내는 애니메이션 〈겨털소녀 김붕어〉는 왓챠, 퍼플레이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글. 두두(dudoogoham@gmail.com)

특성이미지. ⓒ고함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