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우리 집’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10분 뒤에 만나 “우리집”으로 가자던 2PM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우리를 계속 불러댔고, 대뜸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오기도 했다 tvN 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그리고 여기, 현실 속에서 안전한 ‘우리 집’을 찾는 성소수자들이 있다. 이들은 폭력 없는 공간에서 온전한 자신으로 거주하기 위한 권리, 성소수자 주거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성소수자 주거권에 관한 두 연구의 결과가 공개됐다. 26일에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주최한 〈청소년 성소수자의 탈가정 고민과 경험 기초조사〉 결과보고회가, 29일에는 《성소수자 주거권 네트워크》에서 주최한 〈성소수자, 주거권을 말하다〉 연구발표회가 진행됐다.

 

왼쪽부터 3개의 사진. 왼쪽. 청소년 성소수자의 탈가정 고민과 경험 기초조사 결과보고회 포스터. 중간. 띵동의 결과보고회 유튜브 생중계 화면에 가정폭력 신고 통계와 발표자의 모습이 떠있다. 오른쪽. 성소수자 주거권 네트워크의 성소수자 주거권을 말하다 연구발표회 포스터.
두 행사 모두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됐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연분홍TV, 성소수자 주거권 네트워크

 

가정폭력을 피해 탈가정한 청소년 성소수자, 선택지는 ‘원가정 복귀’와 ‘쉼터’뿐

〈청소년 성소수자의 탈가정 고민과 경험 기초조사〉 결과보고회는 《띵동》의 대안 주거 공간 프로젝트 ‘홈, 프라이드 홈’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설문조사는 탈가정 경험이 있거나, 탈가정을 고민·계획했던 청소년 성소수자 153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이 중 10명과는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조사 결과,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원가정에서 안전하지 못했고 탈가정 이후에도 보호받지 못했다. 탈가정 경험이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85.5%가 가정폭력을 경험하였으며, 설문 응답자의 60.8%가 자살 및 자해 충동을 느끼거나 시도했다.

위기 상황 속에서도 청소년 지원 시스템은 잘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이나 청소년 상담 기관들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했고, 실제 신고나 상담 이용률도 상당히 낮게 나타났다. 탈가정 청소년을 위한 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로 탈가정한 성소수자 청소년이 쉼터를 이용하는 비율은 33.9%로 전체 가정 밖 청소년(90.9%)보다 현저히 낮았다. 

이와 관련하여 친권자의 동의 없이는 쉼터에 입소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무려 94.7%의 트랜스젠더퀴어[1] 청소년들이 쉼터에 가지 않았(못했)던 이유로 “부모에게 연락할 것 같아서”를 꼽았다. 발언자로 참석한 청소년 성소수자 A는 가족 내 아우팅과 폭력으로 인해 쉼터에 입소하고자 했지만, 양친이 동의하지 않아 본가에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고 밝혔다.

 

두 개의 그래프. 왼쪽. 쉼터에 가지 않았, 못했던 이유 중에서, 중복응답. 성별정체성을 존중받을 수 없거나 입소가 불가능해서 비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 29.7퍼센트,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 47.4퍼센트. 부모에게 연락할 것 같아서 비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 76.7퍼센트,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 94.7퍼센트. 오른쪽.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탈가정 직후에 잠을 청한 곳은. 중복응답. 청소년쉼터 등 시설 33.9퍼센트, 오프라인 지인, 친구 집 54.8퍼센트, 온라인 지인, 친구 집 33.9퍼센트, 24시간 가게 24.2퍼센트, 노숙 24.2 퍼센트.
‘홈, 프라이드 홈’ 홈페이지 갈무리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여성 또는 남성의 지정성별만으로 쉼터가 구분돼 있는 점도 청소년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퀴어들이 쉼터를 이용할 수 없는 요인으로 꼽혔다. 탈가정을 경험하거나 고민한 청소년 성소수자 중 약 40%가 트랜스젠더퀴어였지만, 이들 중 절반은 성별 정체성을 사유로 쉼터에 입소할 수 없었다. 결국 대안적인 공간 없이 남성과 여성으로만 구분된 쉼터 앞에서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었다.

운 좋게 쉼터에 입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B는 탈가정 후 찜질방에서 생활하다가 쉼터에 입소했다. 하지만 B는 처음 들어간 쉼터에서 “뉴스를 보면서 선생님들이 ‘게이들이 어쨌다’느니 말씀하시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고, 이후 쉼터를 옮겨야 했다. 옮겨간 쉼터에서도, 자신이 퀴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혐오 발언을 들을까 항상 긴장한다고 했다.

결국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원가정 복귀’와 ‘성소수자 배제적 쉼터’라는 마뜩잖은 선택지 사이에서 불안정한 잠자리를 선택하게 된다. 탈가정 직후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오프라인 지인·친구 집이나 24시간 가게에서 잠을 청했고, 노숙을 했다는 응답도 24.2%나 됐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새로운 선택지, 대안적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성인이 되어 얻은 나만의 공간, 그 안에서도 ‘나’일 수 없는 성소수자들

그렇다면 성인이 되어 원가정으로부터 ‘독립’한 성소수자들은 안전한 공간에서 살고 있을까? 〈성소수자, 주거권을 말하다〉 연구발표회에는 나만의 공간에서조차 ‘나’일 수 없는 성소수자들의 주거 불안이 고스란히 담겼다.

《성소수자 주거권 네트워크》는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한 만 19세 이상 성소수자 949명에게 설문조사를, 이 중 17명에게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이렇게 진행된 ‘성소수자 주거 불안 조사’ 결과, 성소수자 가구는 월세로 거주하는 비율이 높았으며, 자가로 거주하는 성소수자 가구 비율은 수도권 청년 세대의 절반 수준이었다. (반)지하/옥탑에 사는 비율도 성소수자 가구가 수도권 청년 세대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두 개의 그래프. 왼쪽. 월세 성소수자 수도권 20에서 30대 53퍼센트, 수도권 청년세대 48.1퍼센트. 전세. 성소수자 수도권 20에서 30대 37.4퍼센트, 수도권 청년세대 34.1퍼센트. 자가. 성소수자 수도권 20에서 30대 6.6퍼센트, 수도권 청년세대 12.7퍼센트. 무상. 성소수자 수도권 20에서 30대 0.8퍼센트, 수도권 청년세대 5.2퍼센트. 기타. 성소수자 수도권 20에서 30대 2.2퍼센트, 수도권 청년세대 0.0퍼센트. 오른쪽. 반지하, 옥탑 거주 비율. 성소수자 가구 2.5퍼센트. 수도권 청년세대 3.5퍼센트.
[좌] 수도권 거주 20~30대 대비 성소수자 주거 점유 형태 [우] 수도권 청년 세대 대비 (반)지하/옥탑 거주 비율 (단위: %) ⓒ성소수자 주거권 네트워크

 

트랜스젠더퀴어의 경우 법적 성별과 자신의 성별이 일치하지 않아 구직이 어려웠고, 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그들을 질 낮은 주거 공간으로 내몰았다. 집을 구하더라도,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될 수밖에 없는 집 계약 과정에서 성정체성이 드러나 계약이 파기되는 경우도 있었다.

시스젠더[2] 여성 성소수자들은 성차별로 인한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임금 차별로 인해 불안한 주거 환경에서 독립을 시작하지만, 안전한 주거 환경을 중시할 수밖에 없어 높은 주거비를 부담해야 했다. 그 때문에 동성 파트너와 동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성 신혼부부 중심의 주택 정책 탓에 아파트 분양, 대출 등의 제도적 지원으로부터 배제됐다.

우여곡절 끝에 독립된 공간에 살게 되더라도, 이웃이나 방문객의 의심을 사거나 해코지를 당할까 불안해하며 스스로의 행동을 검열해야 했다. 가족이나 외부인이 집에 방문할 때, 동성의 파트너와 함께 거주하는 성소수자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파트너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었다. 조사에 참여한 한 팬섹슈얼(범성애)[3] 시스젠더 여성은 부모님이 집에 올 때마다 “내가 무슨 잘못도 아닌데 그걸(애인이랑 찍은 사진) 내 손으로 다 떼야 되고. 또 그게 괴로운 거예요”라며 심정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집은 성소수자들의 성소가 된다

2020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원가정으로부터의 적정 독립 시기는 평균 26.1세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의 독립 시기는 22.4세~24.1세로 평균보다 훨씬 빨랐다. 

성소수자들이 적정 독립 시기에 비해 빠르게 독립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 뜻대로 살고 싶어서”였다. 다양한 형태의 주거 불안을 겪으면서도, 연구에 참여한 성소수자들은 입을 모아 독립 이후에야 비로소 “살 것 같다”고 했다. 아우팅과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원가정과 달리, 독립 이후 성소수자들에게 ‘집’은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됐다. 때때로 가려야 했지만 커다란 무지개 깃발과 애인의 사진을 달아 둘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결국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살고 싶은’ 모든 성소수자에게 원가정으로부터의 독립은 일종의 성소를 만드는 일이다. 안전한 ‘우리 집’의 선택지를 박탈당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우리 집’에서도 안전할 수 없는 성소수자들에게 주거권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다.

 

성소수자 주거권에 관심 없는 국가,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대안

연구자들은 입을 모아 이 연구들이 시작임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성소수자의 주거에 관해 진행한 국내연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위기청소년 현황 및 실태조사 기초연구〉를 시행하였으나, 성소수자와 관련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이에 대해 “우리나라의 위기청소년 실태조사가 매우, 대단히 중요한 연구 대상을 일괄적으로 삭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심없는 국가를 대신해 활동가와 연구자들은 성소수자 주거권 보장을 위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띵동》의 활동가 아델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연결될 수 있는 대안적인 주거 공간을 제안했고,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의 활동가 수수는 청소년이 직접 주거 계약을 맺을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해보자고 했다. 《가족구성권연구소》의 김순남 대표도 혈연을 넘어서서 돌봄 실천의 단위를 중심으로 주거권을 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에 참여한 성소수자 당사자들은 동성 파트너십을 인정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 주거권 보장의 시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안전한 주거를 위한 권리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보장될 때 비로소 온전하게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상상해야 한다.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주거할 수 있는 대안적인 미래를 말이다. 그때가 오면 성소수자의 집 현관으로 들어오는 것이 멸망이 아니기를, ‘괜찮으니 우리 집으로 가자’고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1] 트랜스젠더퀴어 : 태어날 때 지정된 지정성별(법적 성별)과 성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와 여성이나 남성에 속하지 않는 ‘젠더퀴어’를 함께 이르는 말

[2] 시스젠더 : 지정성별과 성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3] 팬섹슈얼(범성애) : 모든 성별에게 또는 상대의 성별과 관계없이 끌림을 느끼는 사람

 

글. 나로나옴(naronaom@gmail.com)

특성이미지.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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