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유감]고함20은 기성언론을 향한 비판의 날을 세우고자 한다. 언론에서 쏟아진, 왜곡된 정보와 편견 등을 담고 있는 유감스러운 기사를 파헤치고 지적한다.

 

공정하면 청년, 청년하면 공정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언론은 ‘밀레니얼 세대’, ‘MZ세대’, ‘2030’, ‘이대녀‧이대남’ 등 갖은 이름을 붙여가며 청년들이 공정 담론을 주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언론이 말하는 ‘청년’과 ‘공정’은 매우 단편적일 뿐 아니라, 청년들의 다양한 문제를 비껴가고 있다. 언론에 등장하는 ‘분노하는 청년들’은 과연 누구일까.

 

언론이 주목하는 ‘공정’, 시작부터 잘못됐다

언론이 주목하는 ‘청년들의 공정’은 능력주의와 이기주의에 기반한 가짜 공정이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규칙의 공정’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 요구 담론으로 자주 보도되는 취업 이슈만 해도 그렇다. 현실적 맥락이 배제된 채 대학 입시나 공개채용 시험은 공정한 절차로만 묘사된다. 그러나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청년들이 갖춰야 할 ‘능력’은 결코 개인의 열심으로만 만들어지는 것들이 아니다. 청년은 개인의 노력을 뛰어넘는 경제적인 배경을 요구받고, 장애 여부나 성 정체성 등 사회가 정한 ‘정상의 범주’에 속할 필요에도 직면한다. 시장이 바라는 청년은 매우 획일적이며 여전히 불평등하다.

모든 불평등의 문제를 상쇄할 만큼 ‘완전히 공정한 게임’은 없다.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은 사회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대 언론은 문제 해결보다 분노 감정을 일으키는 보도에만 매몰된 모양새다.

 

공정을 말하는 청년, 그들은 누구인가

언론이 다루는 ‘공정’ 문제의 레퍼토리는 대개 정해져 있고 분노하는 이들 역시 정해져 있다. 최근 언론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과 ‘의료정책 추진을 반대하는 의사 파업’, ‘인천국제공항(이하 인국공) 직고용 이슈’ 등에서 청년을 내세웠다. 조국 자녀 문제에서 언론은 특권층에 분노하는 ‘서울 주요 대학생들’을 취재원으로 활용했고, 의사 파업 이슈에서는 파업 당사자들인 전공의와 의대생의 목소리를 주로 다뤘다. 인국공 사태에서도 보안 검색요원 직고용을 반대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만 앞세웠다. 모든 사안의 내용은 달랐지만, 청년의 모습은 ‘분노하고 있다’라는 점에서 같았다. 언론은 청년들이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도했지만, 일부 청년들은 사회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거나 고용 불안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분노하는 청년들에게 묻혔다. 언론 속 청년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인정받지 못해 억울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계속되는 ‘뻔한’ 프레임

 

 

한국경제 헤드라인은 <사기업 정규직이 건보에 '직고용' 압박...청년 "이게 공정이냐" 또 분노>이며, 오마이뉴스는 <이십대 청년이 건보공단 콜센터 '직영화' 요구한 이유>이다. 상반된 청년의 목소리를 볼 수 있다.

상반된 청년 이미지 활용한 언론 / 좌 ⓒ한국경제, 우 ⓒ오마이뉴스

 

최근에도 비슷한 양상이 펼쳐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고객센터 직원의 직고용 문제를 둘러싸고 노조와 공단과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 보도에서도 청년 중 직고용에 반대하는 공단 직원들의 목소리가 도드라졌다. 한국경제 (사기업 정규직이 건보에 ‘직고용’ 압박…청년 “이게 공정인가” 또 분노(2/1)), 헤럴드경제 (사설/건보 콜센터 파업, ‘인국공 사태’ 재연 우려된다(2/2)) 등의 보도를 보면 특징이 뚜렷하다.

그러나 다른 포인트에서 분노의 목소리를 내는 청년도 있다. ‘건보공단 고객센터 직영화 및 노동권 보장을 위한 시민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에서는 한 청년이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를 지적했다. 그는 청년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비정규직들의 고통받는 모습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자회견의 청년 발언을 깊이 있게 다룬 언론은 오마이뉴스 (이십대 청년이 건보공단 콜센터 ‘직영화’ 요구한 이유(5/3)) 뿐이었다. 같은 ‘청년’의 목소리였지만, 언론은 원하는 청년을 취사선택해 기사를 작성했다.

 

‘그런 공정’밖에 없나요?

대한민국 청년들은 그동안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애써왔다. N번방과 같은 성 착취 범죄의 고리를 끊겠다 외쳐왔고,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어보겠다고 투쟁했으며, 환경 문제를 외면하지 말자며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청년들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연대 모임이 꾸려졌고, 소수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자는 단체도 생겨났다. 게임의 규칙이 아닌, 게임의 판을 바꿔보자고 모인 이들이다. 이와 같은 이슈들도 ‘공정’에 대한 요구다. 성평등한 사회, 정의로운 노동환경, 기후 불평등타파는 근본적으로 공정 사회에 대한 요구와 닿아있다.

언론이 청년을 단편적인 존재로 단정 짓게 되면, 우리 사회는 공정과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청년 목소리를 담았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정해진 ‘공정’ 레퍼토리에 적합한 취재원을 등장시켰다는 게 문제다. 청년은 언론의 프레임을 위해 존재하는 이들이 아니다. 언론은 지금이라도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청년들에 주목하자. 그래야 언론이 입이 닳도록 말하고 있는 ‘공정 사회’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글. 온정(onjung990@gmail.com)

특성이미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