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웹툰에 대한 스포일러와 가정폭력에 대한 트리거 요소가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문 앞에 서 있다. 이 문을 열면 어떤 세상이 나올까. 한참을 망설이다 문고리를 툭 건드려본다. ‘집을 나가야만 해.’ 오랜 시간 외면해 온 당신의 감각을 깨우는 고함의 기획 기사, 〈집 나가는 여자들〉. 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차마 열어보지도 못한 문 너머에 가장 나다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 함께 손잡고 나가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느 평범해 보이는 가정에서 불행이 싹을 틔웠다. 폭력적인 아버지, 가스라이팅이 습관인 어머니, 아들이란 이유로 대접받는 남동생까지. 이는 유별나게 불행한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평범한 불행이다. 단지 평범하단 이유로 그 가정의 불행은 외면당했고 외면당한 불행이 모여서 한 아이를 땅만 보고 걷게 했다. 웹툰 〈땅 보고 걷는 아이〉는 그 아이의 분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분뇨처럼 쏟아지는 가정폭력을 마주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없다

 

이 사진은 웹툰 〈땅 보고 걷는 아이〉의 일부로 자녀들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있다.
ⓒ웹툰 〈땅 보고 걷는 아이〉 11화, 18화 갈무리

 

주인공 ‘겨울’은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아들을 원했던 친할머니와 아버지는 어머니를 구박했고, 어머니는 딸로 태어난 ‘겨울’을 보며 슬퍼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주 집에서 싸우며 자신들을 부모의 이름으로 묶어 헤어질 수 없게 하는 딸을 탓했다. 경제적 책임을 외면하는 아버지로 인해 홀로 가정을 부양했던 어머니는 업무 스트레스를 딸에게 풀었다. 오직 아들이란 이유로 어머니에게 편애받는 남동생은 누나인 ‘겨울’에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다. 집 밖까지 새어 나가는 어머니의 폭언에도 이웃집 사람은 조용했다. 뺨이 부어오른 ‘겨울’에 무슨 일이 있냐고 한 번 물어보는 게 폭력에 대한 타인의 유일한 반응이었다.

웹툰 〈땅 보고 걷는 아이〉에는 유독 공감하는 댓글이 많다. 웹툰은 주인공 겨울의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세상에 ‘개인적’이기만 한 건 없다. 개인이 겪는 폭력은 사회의 구조에서 출발한다. 가정 폭력은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한국의 가부장제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집안의 가장으로 치켜세우고 남동생을 편애한다. 자식을 부모의 소유로 보는 오래된 가치관은 어머니가 ‘겨울’의 인생을 쥐락펴락하게 했다. 양육자로서 당연한 책임은 ‘겨울’에게 갚아야 할 빚이 되었다. 남의 가정사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은 수많은 어른이 ‘겨울’의 불행을 외면하게 했다.

사회의 잘못된 구조는 웹툰 속 ‘겨울’과 웹툰 밖 ‘겨울’들을 만들었다.1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그 시절이 기억난다는 댓글, 그 시절의 나를 도와주고 싶다는 댓글은 웹툰 밖에서도 존재하는 ‘겨울’을 보여준다. 가정폭력의 상처는 아무리 강한 햇살이 내리쬐도 녹지 않는 만년설처럼 ‘겨울’들의 기억에 살아있다.

 

‘나를 때리고 욕하고 무시해도, 그래도 우린 가족인데’

 

이 사진은 웹툰 〈땅 보고 걷는 아이〉의 일부 장면으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자신에 대한 양가감정을 느끼는 주인공의 모습이 담겨있다.
ⓒ웹툰 〈땅 보고 걷는 아이〉 67화 갈무리

 

가정폭력은 고립된 공동체인 ‘가족’ 내에서 발생한 폭력이기에 해결하기 어렵다. 남의 가정사에 끼면 안 된다는 한국의 오래된 관습은 단지 가정 내에 발생한 폭력이라는 이유로 타인과 공권력의 방관을 합리화한다. 또한, 가정폭력에 대한 심판은 법정이 아닌 가족 안에서 이뤄진다. 가해자는 자신의 폭력을 인정하지 않거나 어쩔 수 없었다며 변명하고, 피해자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오히려 가해자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주인공 겨울 또한 ‘나를 때리고 욕하지만, 그래도 우린 가족인데’라고 생각한다. ‘겨울’은 어머니를 미워하는 자신의 마음에 죄책감을 느끼며 이 정도의 폭력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친족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결국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 서로 분리되는 게 어렵고, 피해자는 가족이자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행동을 이해하면 상황이 나아질까. 겉보기에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되찾을지 몰라도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게 아니라며 더 심한 폭력을 행사한다. 피해자는 다시 폭력을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도 피해자가 가해자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집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이 부모에서 자녀로 향할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사회적,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기에 가해자에게 의존하면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또한, 피해자가 가정을 벗어나려 한다면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상대가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라도 결국 ‘가족’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외부의 비난, 가해자와 정서적 유대감으로 얽힌 피해자의 내적 갈등은 피해자를 ‘집’에 갇히게 한다.

 

“너 이제 맞지 마. 누가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이 사진은 웹툰 〈땅 보고 걷는 아이〉의 일부 장면으로 어른이 된 주인공이 심리 상담가를 마주한 장면이 담겨있다.
ⓒ웹툰 〈땅 보고 걷는 아이〉 에필로그 갈무리

 

웹툰의 결말은 독자가 원하는 사이다 엔딩이 아니다. 자신을 괴롭힌 부모님과 남동생에게 복수하거나 가족을 후회하게 할 정도로 성공한 ‘겨울’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웹툰은 집을 벗어난 ‘겨울’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의 응원 속에 새로운 꿈을 찾는 일상. 웹툰은 ‘겨울’이 상담가를 찾아가 그동안의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집을 나온 ‘겨울’은 어쩌면 불행할지도 모른다. 생활비 때문에 회사를 관둘 수 없을 것이고 상담을 받으며 나쁜 기억이 다시 떠오르거나 가족을 져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겨울’은 폭력적인 집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선택했다. 자신도 모르는 상처를 하나씩 꺼내 보고, 소중한 사람들과 일상을 누리며 ‘겨울’은 시린 겨울을 버틸 수 있는 따뜻함을 찾고 있다.

“은희야, 너 이제 맞지 마. 누가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영화 〈벌새〉에서 친오빠에게 맞은 은희를 보고 학원 선생님 영지가 한 말이다. 폭력에 맞선다는 건, 폭력을 견디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나를 사랑해야 하는 가족에게 받은 폭력이라면 그 사실을 인정하기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가족의 폭력으로 땅만 보고 걷는 것보단, 가족을 버렸다는 ‘배신자’ 소리를 듣고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려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낫다. 웹툰 〈땅 보고 걷는 아이〉의 주인공은 겨울이 끝나길 기다리지 않았다. 봄을 찾기 위해 집에서 나갔다. 집을 떠나 마주한 ‘겨울’의 세상은 계속 올려다보고 싶을 만큼 따뜻하지 않을까.

 

[1] 2019년 여성가족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율은 약 2.6%에 불과하다. 심각한 폭력을 겪어도 가해자가 가족이란 이유로 신고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글. 이끼(mossflower0@gmail.com)

특성이미지. ⓒ웹툰〈땅 보고 걷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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