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문 앞에 서 있다. 이 문을 열면 어떤 세상이 나올까. 한참을 망설이다 문고리를 툭 건드려본다. ‘집을 나가야만 해.’ 오랜 시간 외면해 온 당신의 감각을 깨우는 고함의 기획 기사, 〈집 나가는 여자들〉. 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차마 열어보지도 못한 문 너머에 가장 나다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 함께 손잡고 나가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에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불을 끌어 올려 얕은 잠에 들면 당장은 모든 게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문드러진 마음을 외면한 채로 보낸 시간이 야속하게 쌓여만 갔다. ‘아,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집 밖의 삶은 상상조차 어려웠고, 탈집은 늘 생각에서만 멈추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집을 나가야 한다는 소리가 여름 바람과 섞여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캐리어 하나 끌고 집을 나왔다.

 

뭔가 이상했던 ‘사랑하는 우리 가족’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혈육이라는 이유로 한 집에 뭉쳐 살았다. 핏줄이 뭐기에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상처를 후벼 파도 결국, ‘사랑하는 우리 가족’은 유지된다. 하지만 나는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라고 칭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함께 있을수록 외롭기만 한 원가족 대신 길거리의 생명들에게 사랑을 내어주는 편이었다.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집 안의 평안을 위한다는 착각에 빠져 ‘착한 딸’로 살며 자신을 옥죄었다. 사고 한 번 친 적 없고 모부의 사랑만을 갈구하는 그런 착한 딸. 하지만 내가 아무리 착하게 굴어도 집안에는 폭풍 전야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우리 가족은 어딘가 이상했다.

 

아프면 폭력이다

가정에서 겪은 폭력을 사람들 앞에 꺼내 놓기란 쉽지 않다. 다른 폭력에는 공감하면서도 유독 가정 폭력에만 모순적인 잣대로 “가족이잖니”, “다 그렇게 사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가족의 기분만 살피며 살아오다 결국 마음의 병이 커져 버렸다. 지난 6개월간 미술 심리 치료를 진행했지만,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나를 ‘피해망상’이라며 외면했던 그들에게 말을 꺼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탈집을 결심한 이유를 원가족에게 똑똑히 일러주기로 마음먹었다. 고민 끝에 엄마에게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처음으로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한 순간이었다. 다음 날 웅웅 울리는 진동소리에 눈을 떴다.  ‘나도 유년 시절 동안 정서적으로 안정된 적 없어. 그걸 이겨내야지. 너는 가족을 가해자로 만드는 것 같네’ 라는 이기적인 답장이었다. 엄마에게 딸의 감정은 여전히 뒷전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원가족의 기분이 중요하지 않다. 나의 감정에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다. 내가 아프다면, 그게 바로 폭력이다.

 

집 밖의 세상, 그 모호함 

단 한 번도 자라온 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던 나는 해가 지날수록 다른 곳에서의 삶이 더 궁금해졌다. 대학을 졸업한 것도,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덜컥 짐을 챙겨 고향을 떠났다. 돈과 거처가 마땅치 않았지만 집을 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언젠가 꼭 집을 떠나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탈집은 어릴 때부터 상상해온 (모든 게 안정적일 것 같았던) ‘독립’보다는 ‘탈출’에 가까웠다. 

십년지기 친구가 내어준 자취방 한구석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원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용기만으로는 집 밖에서의 삶에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모든 게 허상으로만 느껴지는 모호한 느낌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집 나간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허새로미의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다른 여자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허새로미 작가의 ‘탈집 에세이’를 펼쳤다.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혈육에서 떨어져 나온 딸도 혼자 잘 살아남아 제 길을 간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가족을 떠난 뒤 비로소 삶이 시작되었다는 허새로미는 할 말이 많아 보인다. 나와 같은 고민을 거쳐 간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탈집을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폭제였다.

‘집 밖에는 훨씬 넓고 깊고 무섭고 가슴이 뛰는, 그리고 정말 생각보다는 친절한 진짜 세상이 있다’는 그의 문장을 보며 막연하기만 했던 집 밖의 삶이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허구로 느껴지던 것들이 점점 더 선명하게 그려졌다. ‘친구들과 가까이 살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밤에는 요가 학원에 다녀야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한층 뚜렷해진 일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우리가 탈집을 이야기하는 이유

여성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탈집 경험은 실로 그 힘이 크다. 뚜렷하게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실현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생각한 대로 바뀌었다. 막연하게 나중으로 미루어 왔던 탈집은 당장 오늘 일이 된 것이다. 

나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모두 끌어모았다. 탈집을 준비하는 여자들과 부동산 매물을 보러 다니고, 마음이 약해질 때면 서로를 다잡아주었다. “다음 달에 나는 뭐 하고 있을까?” 늘 우리 사이를 맴돌던 질문이었다. “뭘 하긴, 집 나와서 잘살고 있겠지.” 누구든 이렇게 답해주었다. 집을 나가고 싶은 딸들은 함께 모여서 새로운 삶을 상상했다. 그리고 상상했던 일들은 일상이 되어 나를 살렸다. 

나는 다시 여자들에게 탈집에 대해 말한다. 함께 집 밖에서 행복해지자고, 망설이는 이의 마음이 실행까지 닿도록 북돋아 주고 싶다. 우리가 탈집을 이야기할 때, 또 한 명의 여자가 집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백번이고 떠들 것이다. 집 밖의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넌 어디든 갈 수 있어.","네가 조금만 더 크면..네가 집도,동네도.. 같이 살 사람도 고를 수 있어",청소년 여성에게 어른 여성이 말한다.
친구가 보내준 웹툰의 한 장면 / ⓒ네이버 웹툰 〈집이 없어〉

 

글. 두두(dudoogoham@gmail.com)

특성이미지. ⓒ고함20 

기획[집 나가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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